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바리톤 김동규는 세계적인 음악가입니다.
성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어떻게 성장해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또한 김동규 아내 역시 음악가 집안 출신인데, 안타깝게 김동규와 이혼을 하게 되었죠.
당시 김동규의 이혼 사유가 무엇이었는지, 유럽에서 촉망받던 '세계적인 성악가 바리톤 김동규'가 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네요.
성악가 김동규 사진
성악가 김동규는 196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김동규 고향).
올해 51살이죠(바리톤 김동규 나이).
(김동규 학력 학벌) 연세대학교 성악과 졸업,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
(바리톤 김동규 프로필 및 경력) 1989년 서울 리틀엔젤스 예술회관(현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곡’에서 ‘피가로’역으로 데뷔
이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고,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주역가수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강남대학교 석좌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1991년 베르디 국제성악 콩쿠르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2013년부터 '매일 그대와, 김동규입니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 목차
* 성악가 김동규 부모와 어린 시절
* 성악가 김동규 성장과정
* 촉망받던 젊은 성악도
* 성악가 김동규 부인과 함께
* 인종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하여
* 미국 스카웃을 거절하며
* 바리톤 김동규 이혼 사유
* 바리톤 김동규 전부인과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 유럽 생활 포기 이유와 재기
* 바리톤 김동규 재혼 생각
* 성악가 김동규 부모와 어린 시절
김동규는 음악가 집안 출신입니다.
아버지 김한준이 작곡가이고, 어머니 박성련이 소프라노 출신이죠.
다만 원래부터 집안 형편이 넉넉했던 것은 아닙니다.
김동규 어머니 박성련은 전라북도 무주 출신이었습니다. 원래는 중학교를 갈 형편이 되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했죠.
박성련: "교복을 입은 또래들이 부러워 중학교를 보내 달라며 한 달 동안 밥까지 굶는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들어간 중학교에서 처음 성악을 접하게 되었죠."
이후 박성련은 학비와 기숙사비를 벌기 위하여 식모와 교회 청소 등을 하면서 어렵게 고학을 합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때 우리나라 초연 오페라였던 ‘일트로바토레’의 주역인 레오노라 역할로 성악가가 되었죠.
그런 후에도 소프라노 성악가, 중학교 음악 선생, 레슨 교사 등을 하면서 돈을 벌게 됩니다.
김동규의 경제 관념이 투철한 정신은 이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네요.
(밑에서 추가 설명)
김동규 어머니 박성련 사진
김동규: "음악은 스스로 미쳐서 시작을 했어요. 연습을 거듭하면서 부모님께 배우지 않은 곡들을 소화해내니까 대견해 하셨어요. 부모님께서 속으로 ‘이것봐라?’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요?"
김동규: "어머니는 음악을 들려주시고 이게 누구의 음악이고 특징이 어떻다라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으셨어요. 예를 들면 베토벤의 음악을 틀어놓으시고 설명이 없어요. 그러면 제가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게 교육을 하신거죠."
우리나라 음악 수업은 작곡가의 이름과 음악적인 특성을 외워야 하는 단순 암기식인데, 김동규는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네요.
이렇게 양친이 모두 음악인이었기에 김동규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자라게 됩니다.
* 성악가 김동규 성장과정
김동규: "중학생 때부터 오페라를 좋아했어요. 듣기 싫어도 집안에서는 음악이 계속 들려왔으니까요. 또 어머니 제자들이 부르는 노래도 자연스럽게 들어야 했고. 집에 오페라 관련 책과 자료들이 시대별로 집대성되어서 아주 많이 있었죠."
김동규: "그 당시 부모님의 친구분 집(직업 사업가)에 가보면, 음악 관련 책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 전 공짜로 얻은 게 많았죠."
하지만 김동규 어머니는 아들에게 강제로 성악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그저 음악적인 환경에 아들을 놓아둔 채 기다릴 뿐이었죠.
김동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이후 박성련은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아파트를 구해 바로 직접 레슨을 시작합니다.
불과 3개월만에 김동규가 연대 성악과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죠.
사실 여기에는 김동규와 박성련의 재능과 노력외에도, 김동규가 어릴 때부터 접했던 음악적인 환경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네요.
* 촉망받던 젊은 성악도
김동규는 연세대 재학 시절(1989년 3월) 중앙일보사가 주최했던 '중앙 음악 콩쿨'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성악가였습니다.
김동규는 바리톤인데, 테너가 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김동규: "(테너나 바리톤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제 성대가 바리톤으로 타고난 거죠.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나 테너를 하려고 하겠죠. 테너가 돈도 많이 벌고 빨리 유명해지니까요."
참고로 성악에서 테너, 바리톤,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는 각자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주로 테너는 착한 주인공 역할을, 바리톤은 주인공에게 반대되는 악당 역할,
소프라노는 착한 여주인공 역할을, 메조 소프라노는 자유분방하고 악녀 역할 등.
완전히 이렇지는 않지만 굳이 도식화하면, 이렇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김동규: "하지만 바리톤이 테너보다 좋은 점이 있어요. 테너보다 노래와 연기의 폭이 넓죠. 또 목소리 때문에 노심초사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고요."
김동규: "테너는 누구 앞이건 간에 일단 내질렀을 때 관객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의 무아지경의 소리가 나야 해요. 소리 하나로 승부를 내야 하는 거죠. 반면에 바리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로 승부를 내지 않아도 돼요. 주로 캐릭터가 강한 역을 주로 맡기 때문에 연기의 비중이 높죠."
* 성악가 김동규 부인과 함께
아무튼 김동규는 부인(아내)과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을 같이 떠납니다.
(김동규 아내 역시 음악가 집안 출신인데,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밑에서 추가 설명)
이 당시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의 만점 입학(수석 입학)으로도 유명했죠.
김동규: "한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했는데 ‘너는 왜 유학을 왔니? 극장에서 노래해야지’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유학 간 지 한 달 만에 무대에서 노래를 했어요. 이후 오디션 의뢰가 이어지고 공연도 했고요."
김동규: "혈혈단신으로 떠난 이탈리아에서 왜 힘든 게 없었겠어요. 하지만 난 생활력이 무척 강한 편입니다. 이탈리아 입성 한 달 만에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이탈리아어로 공연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죠. 그 경험이 날 강하게 만들었어요."
김동규의 재능도 뛰어났지만, 그의 노력 역시 대단했습니다.
김동규: "그렇게 공연을 해서 번 돈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학교에서도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서 1년밖에 안 다녔죠. 저는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묻는 곡마다 미리 연습해간 곡들이었죠.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김동규: "서양에서 한국인이 인정받으려면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페라 리허설을 하는 데 굉장히 어색하더라고요. 다른 배우들이 나를 우습게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외국인이 춘향전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설픈 흉내로 비치기 싫었죠."
김동규: "또 오페라는 노래만으로 안 되고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손짓 발짓이 자연스러워야 해요. 그래서 생활 자체를 이탈리아식으로 바꿨어요. 한국인을 만나도 이탈리아 식의 제스처를 했어요. 무대에서 거리낌없이 행동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결국 동료들로부터 이탈리아인이 아니면서 가장 이탈리아인답다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에요."
결국 김동규는 성악가로서의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생활 방식까지도 바꾸어 버렸네요.
이런 김동규의 노력 덕분일까요.
김동규는 이탈리아로 간지 불과 2년만인 1991년 베르디 국제성악콩쿠르 대회에서 1위를 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게 됩니다.
* 인종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하여
또한, 한국인 최초로 라 스칼라 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당시 유럽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와 더불어 굉장히 높게 평가를 받았음.
참고로 유럽에서 활동 당시 김동규의 이름은 '에토레 김'이었음.)
그런데 여기에 좀 서글픈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1995년 1월 29일, 원래 김동규가 '리골레토' 주연으로 라 스칼라 무대에 설 예정이었는데, 극장의 음악 감독 리카르도 무티가 돌연 '출연 취소' 결정을 내렸던 것이죠.
김동규가 '나이 어린 동양인'이라는, 인종차별적인 이유때문이었습니다.
김동규: "공연 이틀 전에 리카르도 무티에게서 '출연취소' 통보가 날아왔어요. 무티의 거절에 가슴이 찢어졌어요."
이에 주 이탈리아 한국 대사관이 나섰지만, 무티의 결정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 이후 김동규는 '스티펠리오'의 바리톤 주역 스탕까르 역할로 라 스칼라 무대에 서게 됩니다.
김동규: "당시 비참한 기분이 들었지만, 우리 「춘향전」에 서양인이 이도령역을 맡으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스스로 달랬어요."
보통 김동규의 처지에 놓이면 좌절감과 적개심으로 스스로를 해치기 마련인데,
김동규는 긍정적으로 이를 극복했네요.
김동규: "유럽 생활을 하면 많이 부러운 점이 있어요. 일본인 가수가 오페라에 주연이라도 맡아 무대에 서면 기업이 20만원 짜리 표를 사서 2만원에 팝니다. 극장을 꽉 차게 하려는 의도죠. 그럴 땐 참 속상했어요."
김동규가 이래저래 차별을 좀 받았던 것 같네요.
그런 상황에서 실력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한 김동규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김동규의 콧수염은 이탈리아에 있을 때부터 기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동규: "이탈리아에 있을 때 영국인 매니저의 조언으로 콧수염을 길렀어요. 저는 주로 왕이나 장군 같은 역할을 많이 맡는데, 제 얼굴이 동안이어서 너무 앳되게 보였어요. 그래서 하루는 수염을 아교로 붙이는 분장을 하고 있었는데, 매니저가 그럴 바에는 콧수염을 길러보라고 권하더군요. 지금도 배역을 소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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