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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김부선 딸 이미소 김부선 남편의 정체- 혼자 자위하면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김부선의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김부선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김부선 혼자 딸 이미소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대마초 구속과 더불어 최근의 난방비 투사까지...

김부선은 왜 이런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요?



김부선은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대학교 입학 재수를 하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옵니다(김부선 본명 김근희).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패션 모델 일을 하는데, 1983년 23살의 어린 나이에 영화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라'로 데뷔하게 됩니다.


김부선(이하 김): "원래는 연기를 못해서 영화에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 감독이 “모델 역할이니 연기를 못해도 된다”라는 말에 속아서 출연하게 되었다."(김부선 나이 55살, 1961년생)


김부선 사진


# 목차

* 김부선 애마부인3에 출연하면서

* 김부선 딸 이미소를 낳지만

* 김부선 남편 바람처럼 사라져

* 김부선 대마초 헌법소원을 내지만


김부선 과거 사진

(김부선 애마부인3 사진)


* 김부선 애마부인3에 출연하면서


김부선은 이 한편의 영화로 은막의 스타가 됩니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 특히 애마부인3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1986년 10월 21일 필로폰 상습복용자로 적발됩니다.


김: "1986년 여름, 청와대 파티에 초대받았지만, 나는 “내가 기생이냐”며 초대를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었다."


김: "그 시절에 여배우들의 생활은 굉장히 고단했다. 주변에 수많은 유혹이 있어서 영화사나 매니저들에 의해 ‘관리’를 받았다. 영화 촬영 외에는 늘 집에만 처박혀 있었기에, 바깥에 대한 동경이 강했고, 그러다가 ‘노는’ 친구들을 만나 대마초를 접하게 됐었다."


김: "어쨌든 당시 내가 재벌가의 파티에는 몇 차례 갔지만, 청와대에 안갔기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밉보여서 밀고를 당했던 것 같다."


김부선 젊은시절(김부선 리즈시절 사진)


* 김부선 딸 이미소를 낳지만


이후 김부선은 전남편을 만나서 딸 이미소를 낳게 됩니다.

(김부선은 미혼모이므로, 전남편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음)


김: "원래 그 남자는 내가 제주도에서 올라와 모델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에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5년만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당시 대마초 사건으로 김부선은 영화 관련 일도 끊어지고 영화계 지인들과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두들 김부선과 엮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죠.


김: "그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혹시 나 기억해요?’라는 거에요. 순간 깨달았죠. '나를 사랑해줄 남자는 바로 이 남자구나' 라고요."


대마초 사건 이후 외롭게 살아가던 김부선은 그 남자에게 푹 빠지게 됩니다.


김: "늘 저를 닮은 딸을 낳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정작 제가 임신을 하자(김부선 딸 이미소), 오히려 저를 피하는 거였어요. 알고보니 원래 ‘이혼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고, 본처가 있는 유부남이었죠."


김: "열아홉 섬소녀가 서울 올라와 세속적인 것에 눈을 떴어요. 그리고 돈 많은 남자와 잘 살아 보겠다고 하다가 깨진 거죠. 그런 달콤한 유혹, 그걸 싫어할 사람 어디 있을까요?"



일각에서는 김부선 남편이 재벌이라는 설이 있지만, 그는 과거에 단성사 대표였고, 현재는 사업이 망한 상태입니다.



(김부선 딸 아빠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2014/01/22 - 김부선 남편 이미소 아버지의 죄와 이정길의 피해



김부선 가족 사진


김부선 딸 이미소 사진




(김부선 딸 이미소 생부)(김부선 딸 친부)



* 김부선 남편 바람처럼 사라져


김부선이 딸 이미소를 낳자 그 남자는 바람같이 사라졌고, 결국 김부선은 홀로 딸을 키우게 됩니다.


김: "당시 의사 선생님은 제가 심장병으로 아이를 낳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나는 아이를 낳겠다고 했어요. 그 와중에 남자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져서 혼자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는데, 제 친정 엄마가 그동안 숨겨왔더 비밀을 고백했어요."


김부선: "친정 엄마는 원래 첫번째 남편과 아들들이 제주 4.3사건때 총살되었고, 그후 새로운 남자(김부선 생부)를 만나 결혼하면서, 이제까지 과거를 숨기며 살았다고 했어요."


김: "그때 엄마의 고백을 듣고, '내가 스물여덟 살이나 먹었는데, 애 하나 못 키울까?'라는 용기를 얻었어요. 엄마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결국 김부선은 친정 어머니 덕분에 미혼모로 살아가게 될 용기를 얻게 되었네요(현재까지 김부선은 결혼하지 않음).

그리고 어머니가 겪었던 제주 4.3사건으로 김부선은 훗날 더 투쟁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실 김부선에게는 친정 어머니외에도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습니다.


김: "대마초로 교도소에 갇혔을 때 건대 사태로 구속된 운동권 학생들과 같은 교도소에 있었다. 그 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웠다. 나는 재벌가의 파티에서 희희낙락 놀고 있는 동안, 그 학생들은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으니까."


또한, 김부선은 출소 후에 단칸방에 수배중이던 운동권 학생을 3개월 동안 숨겨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큰일이지만, 당시에는 '운동권 학생을 숨겨주는 범인은닉죄'는 아주 중범죄에 속하는 행동이었죠.

(참고로 김부선은 교도소에 복역할 당시에 임수경 국회의원과 알게 되는데, 이때의 인연으로 후에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동반 출연하게 됩니다.)



확실히 김부선은 본인의 이익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하여 행동하는 스타일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혼모로서의 굴곡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김부선의 취미 생활입니다.


김: "X나게 후지다. 너무 찌질하다. 한양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민낯이 이거였어? 에이 후진 새끼들, 혼자 이러면서 자위하고 논다."


서울에서 아무리 돈 많고 성공한 사람이라도, 김부선의 입장에서는 그저 '찌질한 범생'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김부선 대마초 헌법소원을 내지만


또한 김부선은 위에서 언급되었던 대마초외에도 1989년 7월 7일과 1994년 11월 18일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 수감됩니다.


이후 영화계 일을 거의 하지 못하다가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4년 다시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이 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이전까지의 행동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바로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는 대신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제청 신청'을 제기하게 되었죠.


김: "대마초가 술이나 담배보다 중독성이 적은데도, 오랜 세월 사회적인 금기로 작용하면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 따라서 대마초 관련 조항이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및 과잉처벌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재판관 전원 일치로 마약류 관리 법률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내린다."


사실 김부선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김: "대마초는 술, 담배 등의 약물보다 결코 위험하지 않고 중독성도 없다. 그런데 중독성이 강한 마약류인 코카인 등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또한, 김부선의 생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김: "대마초란 정치권력이 대중문화 예술인을 옭아매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확실히 김부선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문화예술인들이 '비합리적인 마약정책을 은폐하고 마약에 대한 일방적인 공포 조성을 위하여 대마초를 시범 케이스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죠.


실제로 대마초는 미국의 많은 주와 유럽의 각국에서는 처벌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한국 역시 많은 사람들이 '대마초는 합법화되어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시기상조'로 보고 있습니다.


몇년 뒤에는 대마초가 마약과는 분리되어서 따로 관리가 될 것 같습니다.


김부선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새창보기)

김부선 관리비와 노무현 지지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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