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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정려원 고려대와 좋은 인연을 맺은 것은 정려원 김삼순 드라마 덕택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


탤런트 정려원은 좀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여린 성격임에도, 악플러들에게는 당당한 태도를 가지고 있죠.

아마 정려원의 과거 시절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탤런트 정려원을 둘러산 여러가지 일들, 그리고 그녀의 개인적인 생각 등이 흥미롭네요.


정려원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정려원은 1981년 1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정려원 고향). 올해 35살이죠(정려원 나이).

(정려원 종교) 개신교(기독교)

(정려원 국적)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정려원 키 몸무게 혈액형) 166cm, 44kg, B형

(정려원 학력 학벌) 맥그리거주립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과정

(정려원 프로필 및 경력) 2000년 샤크라 1집 앨범 [한]으로 데뷔


샤크라로 활동하던 2002년 드라마 섹소폰과 찹쌀떡, 영화 긴급조치 19호로 연기에 데뷔합니다.


이후 샤크라 탈퇴와 연기자 전업을 선언하고,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 내 이름은 김삼순,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자명고, 샐러리맨 초한지, 드라마의 제왕, 메디컬 탑팀 등과 영화 B형 남자친구, 두 얼굴의 여친, 적과의 동침, 통증, 네버엔딩 스토리 등에 출연합니다.


연기에서의 대표작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과 샐러리맨 초한지가 있습니다.


# 목차

* 어린 시절 정려원 사기 사건을 당하고

* 정려원 고려대의 인연

* 정려원 무명의 설움을

* 정려원 한지혜 사건

* 정려원 김삼순으로 갑자기 스타가

* 정려원 고려대 모델로



* 어린 시절 정려원 사기 사건을 당하고


정려원은 본인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1992년 12살의 어린 나이로 가족과 함께 호주로 투자 이민을 갔고, 이후에 사기를 당해서 식구들이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점 등이 잘 알려진 사실이죠.


정려원(이하 정): "제가 13살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정말 안 해본 게 없었을 정도에요. 오빠랑 저랑 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야했죠. (호주에서) 인종차별도 심하게 당했어요. (호주인들이) 저한테 콜라를 던지고 벽돌도 던지고 그랬거든요. 그 때마다 친오빠가 저를 지켜줬죠. (오빠와) 각별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어요."(정려원 오빠 정석원, 호주 브리즈번대학교 대학원 졸업)

(정려원 가족관계 - 아버지, 어머니 슬하에 1남 2녀중 둘째)


정: "그때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저의 가족사를 들으면 사연이 많은 집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일가친척들이 저한테 제 나이에 겪을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겪었다고 할 정도죠. 기이한 인생이라고요."


정: "호주에서 살 때 엄마가 정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먼 거리에 있는 교회를 새벽 기도하러 다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새벽 기도 다니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라고 공격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5살때부터니까, 엄마는 27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새벽 기도를 꾸준히 다니신 것이다."(2012년 인터뷰)


십대 청소년의 입에서 '밥과 돈'이 나올 정도로 당시 상황이 어려웠던 것 같네요.



그리고 이때의 경험으로 정려원은 사람에 대하여 실망을 하기도 합니다.

샤크라 데뷔 초기에 인기를 얻었을 때 정려원은, "사람들이 `왜 날 좋아하지`하는 비뚤어진 마음도 있었어요."라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사람이 누구를 싫어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것, 시큰둥한 반응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도 그래서다."라는 것도 고백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상처가 컸던 모양이네요.



* 정려원 고려대의 인연


이렇게 호주에서 십대 시절을 어렵게 보내던 정려원은 스무살 무렵에 한국행을 결심합니다.


정: "당시 한국은 (부유한) 유학생들이 오는 나라였어요. 그들이 부러워서 한번쯤 한국에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돈을 모아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단 2주간의 계획이었다."


정: "원래 호주에서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어머니는 거기서(호주에서) 대학 1년을 더 다니고 자매학교인 고려대에 편입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1년을 참을 수 없었다. 한국에 내가 9학년부터 계속 가고 싶은 걸 참아왔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나에게 판타지같은 나라였다."



그런데 2주간의 일정으로 한국에서 정려원은 길거래 캐스팅을 당하면서 샤크라로 데뷔하게 됩니다(당시 예명은 려원).

1세대 아이돌로 구분되는 샤크라는 2000년 3월 1집 앨범 '한'이 인기를 얻었을 뿐, 다른 노래들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합니다(샤크라 멤버- 황보 려원 이은 보나).


그리고 정려원은 2004년 샤크라를 탈퇴하고 연기자 전업을 선언합니다.


정: "가수들은 홍보를 위해 예능 프로그램도 많이 해야 해요. 샤크라 하는 4년 내내 그랬어요. 마이크 잡고 내가 뭐 하나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심장이 뛴다’는 걸 아침드라마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정려원이 언급한 아침드라마는 2002년의 섹소폰과 찹쌀떡)


정: "(앨범) 녹음하러 간 날보다 (드라마 촬영하는 날이) 더 좋은거에요. 멤버들에게 미안해 말은 못 했지만요. 당시 같이 출연하시던 주현, 한혜숙 선생님이 어느날 저보고 ‘너는 연기를 해라’고 하시는데, 제 맘이 그대로 들킨 것만 같았어요."


결국 연기가 더 적성에 맞았던 정려원이었지만,

초반 활동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 정려원 무명의 설움을


정: "가수(샤크라)를 할 때는 시간에 쫓겨 무대 위로 오르는 일이 많았지만 연기자가 되니 (촬영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잘 견디는 것이 중요했다. 처음 1년간은 언제 시작될 지 모르는 일 때문에 월, 수, 금요일은 요가학원과 연기학원을, 화, 목, 토요일은 다시 요가학원과 요리학원만 다니는 생활도 해봤다."


정: "지난 1년(2004년 무렵) 동안은 아예 TV를 보지 않았어요. 밤 9시만 되면 자버렸죠. 오디션을 수십 번도 넘게 봤는데 보는 것마다 다 떨어지고…. 배우는 내 길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연예계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정: "오디션의 ‘오’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예요. 미니시리즈를 안보기 위하여 9시만 되면 잠을 잤어요. 아예 연예인을 포기하려고 요리학원에 등록, 요리사를 꿈꾼 적도 있어요. 8개월이나 요리학원을 다녔죠."


일부에서는 정려원이 일부러 주연 자리를 마다하고 단역, 조연을 거쳐서 주연까지 성장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샤크라가 별로 인기가 없었기에, 정려원은 주연이 되고 싶어도 주연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 정려원 한지혜 사건


정려원은 연기자 단역 시절(2004년)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정: "가수 출신 연기자로서 연기자 초창기 시절(2004년) 작품을 할 때, (연기자들로부터) 텃세를 느낀 적 있다. 상대 여배우보다 돋보이지 못하도록 화장도 못하고, 민낯에 까만 판을 대고 연기했다. 급기야 주연 여배우가 나에게 '언니는 욕심이 없나봐요'라고 말하더라. 다음에 내가 주연자리를 맡게 되면, '조연분들께 진짜 잘해줘야지' 라고 다짐했다."


사실 이 시기에 정려원이 나온 작품은 별로 없었고, 단번에 영화 B형 남자친구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상대 여배우는 한지혜였죠.


결국 한지혜는 이렇게 해명을 합니다.



한지혜: "나와 관련된 댓글중에 '네가 정려원에게 연기 욕심 없냐고 말한 사람이냐'는 댓글도 읽은 적 있다. 너무 억울했다."


한지혜: "사실 려원 언니(정려원)가 말은 정확하게 했다. 내가 영화 'B형 남자친구'에서 주인공이었고, 려원 언니는 당시 인지도가 없었다. 그때 려원 언니가 털털하고 못생긴 친구 역할을 맡아서 화장도 덜 하고 꾸미지 않아야 했다. 영화 감독님도 그렇게 주문하셨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언니는 욕심이 없나봐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한지혜: "원래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돌직구를 많이 날리는 편이다. 이후 그 문제는 려원 언니와 잘 풀었다. 한동안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날 교회로 데려간 사람도 바로 언니다. 그런데 그런 (악성) 댓글이 지금도 달려서 개인적으로 너무 억울하다."


(한지혜 새창보기) 2013/09/24 - 한지혜 남편 정혁준검사 프로필과 시아버지 정진화


즉,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이랬네요.

한지혜의 말에 정려원이 상처를 받습니다. 훗날 '조연들에게 잘 해줘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을 정도죠.

다만, 한지혜는 당시 말을 아무런 의도없이 했을 수도 있습니다. 구태여 이런 말로 단역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필요는 없으니까요.


즉, 오디션에 무수히 떨어지던 정려원이 외부의 조그마한 자극에도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쉬운 시기에 벌어졌던 해프닝이었던 것이죠.

아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한창 떴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면, 오히려 웃으면서 '내가 욕심이 없다고? 좋게 봐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했을 수도 있죠.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방의 처지도 헤아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본인은 아무러 생각없이 하는 말이라도, 상대의 처지에 따라서는 그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 정려원 김삼순으로 갑자기 스타가


이후(약 1년 뒤), 정려원은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확' 뜨게 됩니다.

사실 '김삼순'에서도 처음에는 비중이 굉장히 작은 편이었죠.

(드라마 원작 소설에서도 희진(정려원 배역)은 미미한 존재임)


극중 희진의 독특한 캐릭터(여주인공 김삼순과 배치되는 캐릭터인데도 오히려 악역이 아니라 선역임)와 상대역인 다니엘 헤니와의 좋은 호흡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거의 서브 주연급으로 성장하게 되었죠(정려원 김삼순).


김윤철(담당 피디): "나도 희진이가 이렇게 사랑받게 될 줄 미처 몰랐다."


독자들의 반응을 피드백하면서 거의 생방송처럼 찍는 한국 드라마의 단점이자 장점으로 정려원이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죠(2005년).


* 정려원 고려대 모델로


이 작품 하나로 정려원은 주연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정려원의 위상이 바뀌게 되었죠.


결국 당시 정려원은 고려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2005년), 고려대학교 측에서는 정려원에게 '고려대 국제교육원' 화보 모델을 제안합니다.


고려대 관계자: "정려원이 현재 학교를 휴학 중이지만, 고려대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고, 올해(2005년) 정려원이 '내 이름은 김삼순 '가을소나기'등의 출연으로 연기자 변신에 성공한 것을 염두에 두고 화보 모델을 제안했다."


(정려원 이야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정려원 거식과 정려원 남친 경험담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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