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슈틸리케의 리더십이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아주 평범한 리더십인데, 왜 우리 사회가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요?


슈틸리케의 선수시절부터 살펴보면,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틸리케 경질'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탐욕은 언제는 슬픈 결과를 낳기 때문이죠.


슈틸리케 과거 사진(슈틸리케 선수시절 사진)


울리 슈틸리케(울리히 슈틸리케, 독일 이름 Uli Stielike(Ulrich Stielike))는 1954년 11월 15일 독일(당시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태어납니다(슈틸리케 고향). 올해 62살이죠(슈틸리케 나이, 한국 나이).


(슈틸리케 국적) 독일

(슈틸리케 선수시절 경력)

묀헨글라트바흐(1972 - 1977)

레알 마드리드(1977 - 1985)

뇌샤텔 크사막스(1985 - 1988)


(슈틸리케 감독 시절 경력)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1989 - 1991)

뇌샤텔 크사막스(1992 - 1994)

발트호프 만하임(1994 - 1995)

알메리아(1996)

독일 (수석 코치)(1998 - 2000)

독일 U-19 / U-20 / U-21(2000 - 2006)

코트디부아르(2006 - 2008)

FC 시옹(2008)

알아라비(2008 - 2010)

알사일리야(2010 - 2012)

알아라비(2013 - 2014)

대한민국(2014 -  )


# 목차

* 슈틸리케 선수시절

* 슈틸리케 차범근 관계

* 슈틸리케 독일에서 백안시 당했던 이유

* 슈틸리케 감독 시절의 거품

* 슈틸리케 아들 사망이유

* 슈틸리케 한국 대표팀을 맡은 이유


슈틸리게 감독 사진


* 슈틸리케 선수시절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당시 서독) 출신의 세계적인 선수입니다.

나중에 감독 커리어에서 별로 빛을 보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유명한 선수였기에 혹자는 '슈틸리케의 선수와 감독 시절은 마치 1부리그와 2부리그와 같다'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먼저 슈틸리케의 선수 초창기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뛰면서 클럽의 최전성기를 이끕니다(1972 - 1977).


당시 슈틸리케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고, 동료들인 유프 하인케스와 베르티 포그츠와 함께 3차례의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거머쥐게 됩니다.

(당시에는 명문 구단인 바이에른 뮌헨조차도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보다는 한수 아래로 취급당함)


참고로 슈틸리케의 선수 초창기 시절은 바로 프란츠 베켄바워의 전성기였습니다.

후에 슈틸리케는 베켄바워의 후임으로 여겨지는데, 사실 처음에는 독일 축구계에서 백안시를 당하기도 했죠.


슈틸리케 젊은 시절 사진(슈틸리케 리즈시절)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슈틸리케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을 했기 때문입니다(1977~1985).

현재는 좀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폐쇄적인 유럽 각국의 리그였고, 자국의 최정상의 선수가 다른 나라 리그로 가는 것을 보고 '배신자'라고 부를 정도였죠.



그런 것과 별개로, 슈틸리케의 레알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주요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와 리베로)


라 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돈 발롱)

1978 - 1979년 시즌

1979 - 1980년 시즌

1980 - 1981년 시즌

1981 - 1982년 시즌


이렇게 4시즌 연속으로 돈 발롱을 수상합니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죠(후에 돈 발롱이 폐지되면서, 앞으로도 영원히 남을 기록이 됨)

(참고로 루이스 피구도 3번 수상했음)



* 슈틸리케 차범근 관계


그런데 묘하게도 슈틸리케가 라리가로 이적한 1978년 한국의 차범근이 군복무를 마치고 다름슈타트로 이적을 합니다. 만약 차범근이 군대 문제를 조금 더 일찍 해결했다면 분데스리가에서 슈틸리케와 차범근이 함께 뛸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은 좀 아쉽네요.


(차범근이 1978년에 분데스리가에는 12월 1경기에만 출전했음.

원래는 공군 참모총장의 약속으로 2년뒤에 전역을 한다는 약속에 차범근은 특별휴가로 독일에서 한 경기를 뛰었는데, 그 후에 1979년 5월 31일 만기 전역을 한 다음에 다시 분데스리가로 복귀함)


(차범근 새창보기) 2014/06/08 - 차범근 부인(아내)오은미- 공처가인 이유


또한 차범근 역시 분데스리가에서 '외국인 선수 최다 골 기록'을 세웁니다.

(후에 스위스의 스테판 샤퓌자가 경신함)


슈틸리케와 차범근 둘다 동시대에 외국의 리그에서 주목받는 선수라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지만, 주 포지션은 달랐습니다(나이 차이는 1살, 차범근은 53년생, 슈틸리케는 54년생).


차범근이 주로 스트라이커와 윙어로 뛰었던 반면에, 슈틸리케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리베로로 뛰었죠.)



* 슈틸리케 독일에서 백안시 당했던 이유


이런 슈틸리케의 활약으로 당시 레알마드리는 77-78, 778-79, 79-80년 3시즌 연속으로 라리가 우승을 하고, UEFA컵 1회 우승, 코파 델레이 2회 우승, 유러피언 컵 준우승 1회를 하게 됩니다.

(물론 슈틸리케가 다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는 카마초, 비센테 델 보스케, 가르시아 레몬, 산틸랴나, 후아니토 등이 있었음. 그래도 슈틸리케의 활약은 손꼽을 정도였음)



이렇게 라리가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던 슈틸리케이지만, 독일 대표팀으로는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다가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A매치에 나가게 됩니다.

(최초의 A매치는 1975년 평가전때였음)

(그래서 국가대표 기록은 총 42경기 3골에 그침)


슈틸리케: "내가 지난 1977년 독일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떠나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면서 (내 조국) 독일에선 '탈영병'으로 간주됐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물 둘이었다."


즉, 22살의 젊은 슈틸리케는 당시 '전차 군단'의 유망주였는데, '독일'을 떠나 '스페인'에서 뛰게 되었기에, 당시 독일인들이 그를 '탈영병'에 비유하면서 비난을 했던 것이죠.



이후 슈틸리케는 스페인에서 8년을 뛴 다음에 스위스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약 9년간 뛰게 됩니다. 결국 독일에서는 거의 잊혀진 사람처럼 취급을 당했죠.

(결국 나중에 독일반응이 좀 재미있습니다.)


슈틸리케 사진


* 슈틸리케 감독 실력의 거품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슈틸리케의 선수시절과 감독시절은 마치 1부리그와 2부리그처럼 차이가 큽니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스위스에서도 별다른 빛을 보지 못했고, 한국 대표팀을 맡기전까지 25년 감독 생활동안 12개 팀을 전전했죠.


(결국 슈틸리케는 후일에도 공식석상 인터뷰로는 독일어보다 스페인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스페인은 자기를 인정해준 나라이고, 또 조국 독일에는 애증을 갖고 있는 것 같네요. 참고로 영어 역시 질문을 주고 받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능통한 편임)



그런 슈틸리케가 처음으로 독일 대표팀의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은 1998년 수석코치로서였습니다. 그것도 전임 감독이었던 포그츠 감독이 그를 지명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죠.


확실히 독일 축구계도 배타성이 강한 것 같네요.



참고로 2000년대 전후를 독일 축구계의 암흑기라고 합니다.

독일은 1998년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0-3으로 패하면서 몰락을 시작했고, 2000년 유럽축구대회에서는 아예 무승으로 조별리그를 탈락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위기'가 아니었다면 슈틸리케가 독일 대표팀과 관계를 맺기는 더 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런 시기에 슈틸리케는 '팀 2006'의 감독이 되어서 유망주들을 발굴합니다.

이때 나온 선수들이 바로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주역들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31), 필립 람(32), 페어 메르데사커(31), 루카스 포돌스키(30) 등이죠.

(2000년 5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독일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


결국 이 시기에 슈틸리케는 독일 축구계가 원했던 '유망주 발굴과 훈련'에 착수했고, 그 결과로 독일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3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슈틸리케가 다 한 것은 아니지만, 슈틸리케가 기존 독일팀의 '힘과 조직력'에 '속도와 기술'을 추가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슈틸리케 아들 사망이유


이후 슈틸리케는 코트디부아르 감독이 되지만, 여기서도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합니다(2006 - 2008년).


사실 코트디부아르의 예선 성적을 보면 슈틸리케의 감독 자질이 막 꽃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경기 13득점 무실점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죠.

(후일 한국 대표팀 역시 아시안컵에서 결승전을 제외하고는 무실점 승리를 기록하는데, 이를 봐서는 슈틸리케의 지도 스타일을 알 수 있습니다.)(슈틸리케 전술)



하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의 예선을 마치고 본선을 시작하기 전에 슈틸리케에게 개인적인 아픔이 생깁니다. 그의 막내 아들 미하엘 슈틸리케(이름, 당시 나이 23살)가 폐섬유증으로 2008년 초까지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죠.

결국 슈틸리케는  2008 아프리카 컵 오브 네이션스 본선을 약 열흘 앞두고 감독직을 사임하고 유럽으로 돌아갑니다.


슈틸리케: "나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노버의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아들은 의식불명 상태였다. 그런 아들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새로운 장기 기증자를 학수고대했지만, 아이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슈틸리케: "빨리 수술을 해야 하지만 시간이 없다. 가슴이 찢어진다. 아내 도리스와 의논해야 할 것 같다."(슈틸리케 아내(부인) 도리스 슈틸리케)



그리고 아들 병간호를 하지만 결국 한달만에 아들은 사망하게 됩니다.

(슈틸리케 아들 사망원인 폐섬유, 슈틸리케 막내아들 사망이유)


슈틸리케: "아들의 사망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후 나는 많이 변했다. 이제는 아무리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주변 환경이 어렵더라도 이젠 두렵지 않다. 그때(아들의 사암) 이후로 많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슈틸리케 다큐)


가까운 이의 죽음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부는 자녀(자식)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슈틸리케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내와 의논'을 하면서 모든 일을 극복합니다(슈틸리케 이혼 위기 극복).

(밑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슈틸리케는 부인과 함께 여가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이런 슬픔을 슈틸리케는 잘 극복했고, 결과론적으로 아들의 사망이 그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후일 슈틸리케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다소 생소한 자리를 맡는 것에도, 아들의 죽음 이후의 '대범함'이 작용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슈틸리케는 막내 아들의 사망 이후에 다시 코트디부아르로 돌아갑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컵 오브 네이션스 4위에 오른 상황이었죠. 하지만 슈틸리케는 결국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슈틸리케 경질 이유).


* 슈틸리케 한국 대표팀을 맡은 이유


코트디부아르 이후에도 슈틸리케의 '감독 인생'은 예전과 비슷하게 별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FC 시옹(2008), 알아라비(2008-2010), 알사일리야(2010-2012), 알아라비(2013-2014) 등 대부분 중동의 클럽팀 감독을 전전하다가, 2014년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죠.



이렇게 슈틸리케는 독일 청소년 대표팀 감독 기간을 제외하고는 맡았던 팀에서 1~2년만에 경질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특히 중동에서는 별다른 열정도 찾아볼 수가 없었죠.


슈틸리케: "내가 과거에 일했던 카타르는 고작 관중 200명 앞에서 경기하는 게 전부였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열정이 없었다."


슈틸리케: "과거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 축구협회에서 일하며 월드컵 준비 기간 전후로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슈틸리케는 한국에 와서 폴란드전을 직접 관람하기도 합니다.


슈틸리케: "한국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했다. 내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일하기 좋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내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곳이다."


후일 슈틸리케가 한국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했던 인터뷰의 한 구절입니다.

아마 이때의 한국 국민들의 엄청난 열정도 슈틸리케의 결심의 한 이유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슈틸리케 감독 이야기 2편이 이어집니다.)

슈틸리케 경질 위기와 연봉


(스폰서 링크)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