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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규 인생 이야기

영화배우 임지규의 결혼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가 최대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죠.


또한 임지규의 깨달음이 의미심장하네요.

한명은 그렇게 깨달았지만, 또 다른 한명은 그렇지를 못했죠.


임지규 사진


영화배우 겸 탤런트 임지규는 1978년 3월 7일 부산에서 태어납니다(임지규 고향). 올해 38살이죠(임지규 나이).

(임지규 종교) 기독교(개신교)

(임지규 가족관계)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단, 임지규 여동생은 사망)

(임지규 키 몸무게 혈액형) 175cm, 60kg, A형

(임지규 학력 학벌) 고신대학교 수학과 중퇴

(임지규 프로필 및 경력) 2004년 단편 영화 핑거프린트로 데뷔


이후 영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은하해방전선, 과속 스캔들, 요술, 봄 눈, 완전 소중한 사랑 등과 드라마 타짜, 역전의 여왕, 최고의 사랑, 신의 선물 14일, 왕의 얼굴 등에 출연합니다.


# 목차

* 어린 시절

* 임지규 데뷔 계기

* 임지규 군대 이후에 마인드 변화

* 임지규의 하얀 거짓말

* 임지규의 깨달음

* 임지규 아내와 결혼

* 임지규 여동생 사망 사건

* 임지규의 성찰



* 어린 시절


임지규는 자신의 어린 시절 가난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임지규: "제 부모님은 부산에서 노점상을 하셨어요. 겨울에는 배추, 여름에는 과일 같은 걸 파시는데, 동네가 작아 시장도 작아요."


결국 임지규는 부모님이 손수레를 끌고 다닐 때 같이 도우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비록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지만, 집안에는 문제가 좀 있었죠.



임지규: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성품이 착하세요. 다만 술만 안 드신다면…. 조절을 못 하세요. 어머니가 네 살 연상이신데, 평소에는 눌려 살다가 술만 드시면 누구 한 분이 다쳐야 싸움이 끝나는 거예요."


임지규: "그래서 어릴 때, 안 좋은 방법인데 부모님 술을 끊게 하려고 자해를 해봤어요. 제 의도는, 제가 죽겠다는 게 아니라, 장사하고 돌아와 그런 저를 보시면 놀라실 거 아니에요? 엄마 아빠 술 먹어서 속상해서 그랬다고 하면 미안하다며 다시 안 하실까봐. 한 번 큰마음 먹고 손목에 피를 냈어요."


어린 나이에 대단한 결심을 했네요.

아마 어린 임지규가 부모님의 부부싸움으로 굉장히 괴로워했던 것 같습니다.


임지규: "그런데 그날따라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 사이 지혈이 돼버렸어요. 보여드려야 하는데, 다시 하자니 겁이 나 못하겠더라고요. 지금은 웃어가며 말씀드립니다만, 그때는 어린 마음에 너무 아프고 힘든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당연히 공부에 재미없었고요, ‘내가 과연 뭐가 될 수 있을까?’ 꿈도, 희망도 없었어요."



* 임지규 군대 이후에 마인드 변화


하지만 이런 생활이었지만, 임지규는 착한 심성을 잃지 않습니다.


임지규: "그렇게 가난해서 불편한 건 있었지만 가난하다고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았어요."



임지규는 고등학교때 우연히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그 이후 열렬한 크리스천이 되었죠.


임지규 간증: "어릴 때 제 삶은 배우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은 삶이었죠. 꿈이 없던 저에게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저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매 순간 놀랍고 감사합니다."



임지규는 고신대학교 수학과에 다니던 중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에 바로 서울로 상경해서 모델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임지규: "원래는 모델이 되려 했어요. 저는 지금도 마른 편이지만 군대 다녀오기 전에는 너무 말랐었거든요. 그나마 군대 가서 좀 보기 좋아졌다고 대학 동기가 모델 한번 해보라 권하더군요."


임지규: "옛날 같으면 ‘내가 그걸 어떻게 해’ 하고 말았을 텐데, 군대에서 “포크레인 오려면 일주일 걸린다니 병사들이 저 산 치워봐” 그러니까 진짜 산이 없어지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안 해보고 못한다고 말하는 게 거짓말이구나, 생각이 바뀌었더라고요. 안 되더라도 까짓 거 도전해보자 했죠."


확실히 군대를 갔다오면, 못하는 것이 없을 것 같이 변하게 되죠.

이 점은 군대의 좋은 점이 아닌가 합니다.



* 임지규의 하얀 거짓말


임지규: "가족들도 큰 힘이 되었어요. 여동생에게 “오빠는 모델 되고 싶다” 하니까 “해봐라” 그랬어요. 부산에선 그거 하기 힘드니까 서울 올라가겠다고, 부모님께 허락 받아야 해서 모처럼 일찍 들어오신 날 말씀 드렸죠. 그랬더니 “해봐라. 대신 우리집이 힘든데 할 수 있겠나? 도와주진 못한다” 하셨죠."


보통 같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구박이나 줬을 텐데,

임지규의 가족들은 달랐네요.



이렇게 임지규는 서울로 상경해서 모델이 되려고 했지만,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모델 일을 맡기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죠.


사실 이 시기에 임지규는 방송국 카메라 보조, 호프집 매니저, 음식점 배달 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부모님이 노점 채소가게에서 버는 돈을 자신이 쓸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결국 임지규는 '혹시'라는 생각에 단편영화 오디션에 지원하게 됩니다.

여러번의 오디션 낙방 후에 그는 2004년 드디어 첫 데뷔작인 핑거프린터에 합격하게 되었죠.


임지규: "원래 조규선 감독님이 23세 이하의 배우를 원한다고 오디션 공고를 냈는데, 당시 제가 26살이었거든요. 나중에 뒷풀이 할 때 커밍아웃을 했어요. 감독님이 ‘어쩐지 눈가에 주름이 많더라’며 웃어 넘기셨죠."


거짓말은 나쁜 일이지만, 아마 임지규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이후 임지규는 독립 장편영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에 주인공으로 낙점이 되는데, 여기서 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임지규: "한번은 이랬어요. 촬영 중간에 살짝 잠이 들었는데 양해훈 감독님이랑 촬영 감독님 두분이 ‘임지규 괜히 뽑은거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잠결에 그 말을 들어던 임지규가 크게 낙심을 했을 것 같네요.


임지규: "그 당시 촬영을 반이나 소화한 시점이었어요. 그만 둘 수도 없었죠. 결론은 끝까지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고 달려들었고 완성했죠."


임지규: "나중에 감독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부러 그러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작품을 위해, 임지규를 위해 뭔가가 더 필요했다라고…”



결국 이 경험때문에 임지규는 '죽을만큼 힘'을 내서 연기를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껍질을 깨고 한단계 더 성장하게 되었네요.



* 임지규의 깨달음


이후 임지규는 역전의 여왕과 최고의 사랑으로 인지도를 서서히 알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최고의 사랑으로 처음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하기도 했죠.


임지규: "차승원 선배가 '우리 연기 정말 제대로하자' 그런 느낌으로 말씀해주셨어요. 하루 이틀 지나고 나니깐 제 스스로 '혼자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연기했구나' 느껴졌어요. '아 이건 아니구나' 진짜 매니저가 되자고 마음 먹었거든요."


임지규: "그 전에는 아침마다 미용실가서 머리 세팅하고 갔는데 머리도 집에서 말린 뒤에 바로 현장에 갔어요. 옷도 튀지 않게 입고 주변에 있는 실제 매니저들을 가만히 지켜봤죠. 초반부터 그렇게 해야되는데 욕심이 생겼던거죠."



확실히 극중 매니저 역이 연기자 역보다 더 세련되고 옷을 입고 깔끔하게 보이면, 그것은 매니저가 아니죠.

임지규는 뒤늦게 사실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배역에 몰입하게 됩니다.


임지규: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니깐 차승원 선배도 극중 제 이름 재석이를 부르는 장면이 없는데도 불러주시더라고요. 이 장면은 누가봐도 독고진이 주인공인 장면인데 제가 연기할 수 있게 만들어주셨어요."


임지규: "전 단지 옷, 머리만 포기하고 매니저가 됐는데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승원 선배가 돌려주셨어요. '최고의 사랑'을 하면서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 준 이유가 정말 매니저 같아서 더 좋게 봐주신건데 늦게 알아차린거죠."




* 임지규 아내와 결혼


이렇게 임지규는 서서히 인기를 얻게 되고, 마침내 2014년 5월 17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임지규 아내는 임지규와 같은 교회에서 처음 만나 인연이 시작되었고, 법학을 전공했습니다(임지규 부인 직업).


둘은 4년동안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게 되었네요.

다만 임지규 배우자(와이프)는 일반인이기에 이름과 사진 등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둘 사이에는 아직 자녀(자식)은 없습니다.



임지규 소속사: "시국이 좋지 않아 간소하게 식을 올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가까운 지인과 가족만 초대할 것이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었을 때였습니다.

정말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안되는 비극이었죠.



* 임지규 여동생 사망 사건


임지규는 개인적으로도 큰 슬픔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2009년 그의 여동생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죠.


임지규: "애교도 많고 사교성도 좋은 아이였는데, 개인적인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셨고 저도 힘들었고요."


임지규: "동생이 안 좋은 선택을 했어요. 저보다 쾌활하고 외향적인데, 저랑 함께 있지 못하니까 교회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치과조무사로 일했는데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했고, 많이 힘들었나 봐요."


결국 임지규 여동생이 자살하게 되었던 거죠.



임지규: "동생은…조금만 더 버텨줬더라면. 오빠인 제가 동생의 고민을 거의 들어주질 못했더라고요. 나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친절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밉고 미안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동생은 못 듣겠지만 항상 미안해요."



임지규 동생이 임지규보다 더 외향적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사실 자살은 내성적인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향적이고 쾌활한 사람중에서도 좌절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죠.


또한,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고,

특히 치과조무사 같은 비정규직들은 그 삶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지규: "이제는 동생이 없으니까 그 몫까지 해야하잖아요. 다급해졌어요. 결혼해서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무엇보다 좋은 연기 많이 해서 부모님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고, 동생에게도 자랑스러운 오빠가 되고 싶어요."


결국 임지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4년 결혼식을 올렸죠.



* 임지규의 성찰


어쨌든 이런 경험 덕분인지, 임지규는 삶의 성찰이 묻어나는 말을 종종 합니다.


임지규: "나에게 필요 없는 것들은 하나도 없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나를 괴롭혔던 하나하나가 실은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내가 이겨내야 할 것이었던 것 같아요."


임지규: "어렸을 때 경험부터 때로는 거부하고 싶었던 경험들 하나하나가 실은 제가 연기하는 데 좋은 소재가 됐고, 좋은 연기 수업이 됐더라고요. 연기하고 싶은 친구들이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서 연기한다'는 말을 참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임지규: "결국 연기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다시 기억하는 일 같아요. 그게 가장 내 것이니까. 그런데 굳이 남의 것을 가져오면 그게 거짓인 게 들키는 것 같아요. 잊고 싶었던 기억, 상처받았던 기억들이 오히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아서 이젠 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확실히 노점상의 아들로 태어나 별볼일 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임지규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은 임지규 같은 사람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이죠.


다만 개인적인 입자에서는 이렇게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표현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것을 개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즉, 현재의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들에게 "지금의 고난과 역경을 참고 극복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라는 감언이설을 해서는 안되죠.


임지규 여동생이 세상을 떠난 것 같은 비극이 발생하기 전에,

사회가 먼저 청년들과 비정규직에게 다가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임지규의 가족에 대한 생각입니다.

임지규: "늘 곁에 있을 것 같은 여동생과 예고 없이 이별을 하면서 가족은 다투고 싸워도 곁에 있을 때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았어요. 가족 서로가 미움과 상처를 주기보다 아껴야 하죠."



소중한 것이 너무 익숙해지면, 그 소중함을 모르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은 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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