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타 -깨달음과 함께 하는

송재호 아내(부인) 송재호 아들과 사채빚 50년, 자살시도

송재호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보통 탤런트 송재호의 선한 인상과 여전히 연기 활동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 순탄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정말 파란만장하네요.


또한 송재호가 아내와의 사랑과, 그가 말하는 노년의 사랑이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노년의 사랑은 젊은이들의 사랑과 닮은 듯하면서도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잇네요.


송재호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송재호는 1937년 3월 10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납니다(송재호 고향). 올해 78살이죠(송재호 나이).

(포털사이트에 1939년생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한데, 이것은 잘못 알려진 나이임)

(송재호 종교) 개신교

(송재호 학력 학벌)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송재호 프로필 및 경력) 1959년 부산 KBS 성우로 데뷔


이후 드라마와 영화 태양은 가득히, 우리가 남인가요, 투명인간 최장수, 화려한 휴가, 그림자 살인, 그때 그사람들, 그대사(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에 출연합니다.



손이 귀한 집안에 태어난 송재호는 굉장히 일찍 결혼합니다. 1958년에 한살 연하의 신부와 결혼식을 올리죠.


송재호: "아내가 첫사랑이다. 결혼한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정확하게는 올해로 57년째). 아내는 한 살 연하로 친구처럼 지내지만 사실 내가 죽고 못산다. 아내가 뭐라 그러면 무조건 알았다고 말을 잘 들으려고 한다."


송재호 젊은 시절 과거 사진


몇개월 살다가 이혼을 하는 부부도 많은 요즘, 거의 60년을 함께 살았다라...

정말 한평생을 같이 해로한 부부이네요(송재호 가족 관계 4남 1녀)(송재호 자녀 자식)(송재호 부인 배우자).

(워낙 오래 함께한 부부이기에 송재호 이혼 후 재혼이라는 루머도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소문임)


송재호는 자신의 부인과 가족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연유가 따로 있죠.




송재호 부부가 거의 60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이들 부부가 항상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송재호가 사채빚때문에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경제적인 문제가 항상 있었죠.



부산에서 성우 생활을 하던 송재호는 탤런트가 되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고,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1974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굉장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참고로 송재호의 큰아들 송영춘 역시 1982년 '속 영자의 전성시대'에 주연으로 출연했기에, 부자가 같은 배역을 소화한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재호 아들 사진 송영춘 전도사


사실 70, 80년대가 송재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죠.


송재호: "그때는 항상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거죠. 지금은 나이 들어 주글주글해졌지만 그 시절 내 우상은 제임스 딘이었어요."


송재호: "하루에 담배를 세 갑씩 피우고, 양주를 두 손에 들고 병나발을 불고, 술 마시고 운전한다고 객기도 부리고…"


성격도 호방하고 적극적이었습니다. 73년부터 취미로 시작했던 사격의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전국체전에 4번이나 출전할 정도였죠.


송재호: "사격은 마라톤과 같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스포츠입니다. 정확도와 순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한한 정신집중 훈련과 연습이 요구디니까요."


송재호: "사격은 연기와도 전혀 무관한게 아닙니다. 맡은 역을 잘 해내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고 여유를 가지는데는 정시닙중 훈련이 꼭 필요하거든요."



이렇게 남들이 보기에 매우 호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을 것 같은 송재호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곪고 있었습니다.



혈기왕성하고 성공가도를 달리던 송재호는 삼십대 초반에 영화제작자로 나섰지만, 곧바로 망해서 1억원이 넘는 빚을 지게 됩니다.


송재호: "30대 초반에 영화제작사를 차렸지만, 곧바로 망했어요. 엄청난 빚 때문에 은행을 이용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사채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사채로 빚을 갚는 등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 됐죠."


송재호: "한번은 사채업자에게 하도 시달려 칼을 내 배에 대고 '오지마, 한 발자국만 더 오면 확 그어버릴 거야'하고 위협을 가해 사채업자들의 봉변을 모면할 수 있었어요."


송재호: "너무 괴로웠고 삶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어요. 늘 쫓기듯 찌들어 사는 인생이 너무 힘든 나머지 자살하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었죠. 약을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


송재호 장로 사진


이럴 때 송재호는 1980년 고정출연하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패널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송재호 원래 종교는 불교였음, 송재호 개종 이유).



하지만 송재호에게 시련은 그치지 않습니다.

다시 영화제작자로 재기를 시도했던 2000년 영화사를 차렸지만,  9.11 테러로 인해 뉴욕 로케 영화가 무산되면서 다시 경제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게다가 막내 아들까지 교통사고로 잃게 되었죠.

송재호: "교통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히 강릉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리 막내가 죽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더라고. 스물여덟, 다 키워놓은 장성한 아들, 다섯 자식 가운데서도 막내라서 유난히 정이 많이 가는 아이였는데…."



그리고 송재호는 2005년이 되어서야 겨우 빚과 이자를 모두 갚게 됩니다.

50년을 이자를 갚기 위한 인생이었던 셈이죠.


송재호: "한 50년 일해 빚만 갚았다. 내가 지나온 세상을 돌아보면 참 희한하게 산 것 같다. 내가 한 50억쯤 벌어놓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던데, 실제론 50억이 아니라 5억도 없고, 50만원도 없어. 다 빚 갚고 이자까지 주고 하다보니 나한테 남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



송재호의 인생이 정말 다사다난했던 것 같네요.

물론 이 모든 일을 송재호 혼자 견딘 것은 아닙니다.

일찍 결혼했기 때문에 부인이 항상 옆에 있었죠.


송재호: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모른 척하고 있고 집사람이 알아서 다 해결했어요. 아이들도 모두 사회에서 제 몫을 하게끔 반듯하게 키워주었고. 아내가 세상을 뜨면 나는 울음이 그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먼저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하죠. 내가 집사람에게 해준 게 없어서, 그 어떤 말로도 고마움을 대신할 수 없어서 미안해요."



송재호가 부인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말합니다.

송재호: "집사람이 젊었을 때 고생한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해서 지금도 토크쇼에 일절 나가지 않아요."


송재호 부인의 심정이 이해가 되네요.

얼마나 어려웠으면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기 싫어할까요.


송재호 본인은 직접적으로 자살 시도를 세번이나 했지만, 부인 역시 그 못지 않게 괴로웠던 시절이었을 것 같네요.


이들 부부는 정말 백년을 함께 해로할 부부같습니다.


송재호가 자기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 비추어, 노년의 사랑을 정의합니다.


송재호: "사랑에 핵심은 나이와 상관없이 똑같다. 그 중 노인들의 사랑은 더 갈데 없는 사랑이다. 젊은이들과 다르게 더 애절하고 절박한 것 같다."



보통 부부가 오랫동안 함께 살면 서로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기 쉽상입니다.

늘 사랑하고 사랑받기 때문에 배우자가 항상 있는 존재라고 여기게 되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알게 될수록, 그 사랑이 더 애절하고 절박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