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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은 남자친구와 인생 이야기

가수 겸 변호사 이소은의 성공 스토리가 굉장히 화려합니다.

고등학교때 토플 만점을 받고, 가수로 데뷔해서 여러곡의 히트곡을 남깁니다.

이후 국내 명문대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또 미국의 로스쿨로 들어가서 미국 변호사가 됩니다.


하지만 이소은의 이런 성공 뒤에는 사실 그늘도 있었습니다.

이소은이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소은 부모님의 자녀 교육법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가수 이소은 사진


이소은은 1982년 5월 4일 태어납니다. 올해 33살이죠(이소은 나이).

(이소은 종교) 천주교

(이소은 학력 학벌) 잠실중학교, 서문여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영어영문과, 노스웨스턴 대학교 로스쿨 법무 박사(Juris Doctor)

(이소은 프로필 및 경력) 1998년 서문여고 1학년 시절, 첫 앨범인 《소녀》로 데뷔(윤상과 이승환의 프로듀싱)


이후 서방님, 오래오래, 닮았잖아 등의 히트곡을 남깁니다.

2007년 고려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한 후, 미국 메사추세스 주 보스턴에서 유학했고,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교 로스쿨에 합격해서 법률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현재는 로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가수 겸 변호사 이소은 근황).


(이소은 가족 관계) 이소은의 친언니 이소연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입니다(이소은 언니 직업).

(이소연 프로필) 

줄리어드스쿨 음악학교 학사

줄리어드스쿨 음악대학원 석사


2001년 지나 바카우어 국제 피아노콩쿠르 우승

2002년 제14회 산탄데르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

2003년 클리블랜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모차르트 특별상

2010년 뉴욕 나움버그 국제 피아노콩쿠르 우승


언니 이소연도 대단한 예술가네요.


이소은과 언니 이소연 사진


그런데 이소은은 어릴적부터 재능이 굉장했습니다.

평범한 아이들과는 확연히 달랐죠.


이소은: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서 가족이 5년 반 정도 미국에서 살았거든요. 당시 그 도시에서 열리는 공모전이라는 공모전에는 제가 다 응모해봤어요.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데도 유명 마트에서 여는 포스터 공모전에 나가서 칠면조도 타오고요."


이소은: "하도 약골이라 엄마가 보낸 스포츠 캠프에서는 자전거를 받을 욕심에 악착같이 운동을 해서 그걸 타오기도 했어요. 한번은 ‘베이비시터스 클럽’이란 걸 만들어서 제법 크게 한 적도 있어요. 한인 타운에 사는 아이들을 많이 돌봤죠."


이소은: "그 덕분에 나름 돈도 잘 벌었어요. 그래서 제 용돈도 하고 언니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또 제가 어려서는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당신은 이곳으로 와서 발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했어요. 굉장히 당돌하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했던 거 같아요."


이소은 젊은 시절 과거 사진


아무래도 이소은의 재능이 또래의 여학생보다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무렵의 여자 아이들중에 이소은처럼 다양한 활동(그림, 스포츠 캠프, 사업, 자의식 발현)에서 끝까지 집중력을 보인 사람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에는 이소은의 부모님이 큰 역할을 합니다.


이소은: "저는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친구들에게 제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 “우리 부모님들 같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말씀하셨을 텐데, 부모님이 많이 봐주셨구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부모님께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이소은: "‘하지 마라. 너는 그거 하면 안 된다. 그거 안 했으면 좋겠다. 넌 안 될 거다’ 이런 얘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무리 어이없는 일을 해도요. 솔직히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미국에서) 베이비시터스 클럽 전단지 뿌리고 다닌다고 하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라고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그래? 그럼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물으시고 전단지 붙일 때 필요한 테이프 사다주셨어요. 제게 부모님은 무한 서포터였어요. 그만큼 저를 믿어주셨어요. 제가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을 믿어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이소은 부모님은 이렇게 이소은을 크게 믿어주고, 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지원합니다. 그련데 이소은이 자식이니까 그냥 이렇게 믿어준 걸까요?



이소은: "사실 저는 혼난 기억이 없는데, 언니는 혼나는 거 본 적이 있어요. 부모님께서 같은 자식이라도 교육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걸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아셨대요. 언니는 하지 말라고 말을 해야 듣는 스타일이고, 저는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아이라는 걸요. 그래서 저와는 대화를 많이 나누셨어요. “소은아, 엄마 아빠는 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라는 어조로 얘기하시면 저는 들었죠."


이렇게 이소은 부모님은 자식에게 맞는 교육법을 이소은과 언니 이소연에게 베풉니다. 모든 자녀에게 무턱대고 '무한 믿음'의 교육을 행한 것이 아니죠.

게다가 이소은과 언니의 사이는 무척 좋습니다.



이소은: "언니도 굉장한 예술가지만, 저에게는 한없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에요. 언니가 쇼핑 가서 예쁜 게 있으면 무조건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저를 줬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거의 언니가 챙겨줘서, 저희는 옷도 비슷하고, 신발도 똑같은 게 많았죠. 전 다른 자매들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또 저희는 정말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거든요. 지금은 이메일을 주고받지만, 집에 언니랑 제가 나눈 편지가 사과 박스로 한 가득 있어요."



보통의 평범한 자매들도 이소은 이소연처럼 친하게 지내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둘은 부모로부터 차별 교육(서로 다른 교육)을 받았는데도, 서로에 대한 질투와 질시없이 다정한 자매가 되었네요.


이것이 바로 이소은 부모님의 훌륭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의 특성을 재빨리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교육을 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형제자매로 서로 사랑하게 키우는 것이죠.

아이가 있다면 이소은 부모와 비교해서 자신의 자녀 교육법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소은 집안 참고)

이소은 아버지 정치학과 교수였다가 재단 비리와 맞물려 부당 해고를 당합니다. 결국 직업을 잃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죠. 그리고 이소은은 중학교 2년까지 총 6년을 미국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이소은 어머니는 영어 유치원 원장을 오래했고, 그 전에 신문사에서 글도 씁니다.



이소은 졸업 사진


이소은은 어린 나이에 크게 성공을 합니다.

1996년 EBS 창작 가요제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윤상이 직접 그녀를 스카웃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윤상과 이승환의 지원으로 17살의 어린 나이(서문여고 1학년 재학중)에 첫번째 앨범 '소녀'로 가수 데뷔를 합니다.


이소은: "이것은 부모님이 먼저 권하셨어요. "우리 소은이 나가볼래? 밤마다 이불 뒤집어쓰고 노래 연습하더니 어디 실력 발휘 좀 해봐."라고 하셨죠."



사실 이소은이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닙니다.


이소은: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수업 분위기는 공포스러웠고, 친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힘들고 외로웠죠. 그때만 해도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하면 아이들이 구경 오곤 했거든요.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 모든 게 다 어색했어요. 또 영어시간이면 선생님이 저한테 발음을 많이 시키셨는데, 여학생들의 질투가 심했어요. 그런 것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고요."


이소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전 그냥 교실에 들어갔는데, '싫은 애 또 왔어'라는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는 아이를 보았어요. ‘내가 왜 행복했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친구도 없는 이곳에 와서 이렇게 지내나’ 하는 마음에 유난히 우울하고 힘이 들었어요. 1교시를 마치고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 나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어”라고 했더니 가만히 듣던 엄마가 “그래 소은아, 알았어. 그냥 교실에 들어가 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소은: "그런데 2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담임선생님이 저한테 책가방을 싸서 교무실로 오라는 거예요. 거기에 엄마가 계셨어요. 선생님은 엄마한테 “그럼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셨고. 영문을 모르는 제게 엄마는 윙크를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엄마 손을 잡고 강촌 가는 기차를 탔어요. 옥수수와 고구마도 사 먹고, 도시락도 같이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어요. 그 와중에 엄마는 단 한마디도 학교에 대해 묻지 않으셨어요. 왜 조퇴를 시켰는지에 대한 얘기도 않으시고요. 그냥 정말 편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어요. 그날의 여행 덕분에 저는 1년을 버틸 힘을 얻은 듯했어요. ‘나에게는 이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소은 어머니가 참 지혜로운 것 같네요.

가수 데뷔 이후에도 이소은은 나름 어려운 시기를 견딥니다.



이소은: "제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다행히 인터넷이 그렇게 발달되지 않아서 악성 댓글 같은 게 줄줄이 달리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악플이 있긴 했죠. 그중에 음악에 대해서 비판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그냥 너무 어이없는 걸로 날아드는 비난은 굉장히 상처가 됐어요."


이소은: "‘재수 없는 게 부모 잘 만나서 영어만 잘하고, 노래도 못하는데 괜히 이승환과 윤상의 백을 업고….’ 그런 소리가 들렸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 시기 아이들이 못되려면 되게 못될 수 있잖아요. 저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큰 상처가 됐죠."



이소은: "또 너무 일찍 사회를 경험하다 보니 보기 싫은 면도 보게 됐어요. 이를테면 매니저들이 음반을 홍보하는 그런 과정이요. 저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게 보이더라고요. 오히려 둔해서 모르고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우리 매니저한테 저 나이도 어린 PD가 예의 없이 굴지? 왜 서로 존중하지 않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이소은: "3집 앨범을 내고는 소속사도 옮기고, 음악에도 나름 변신을 시도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댄스 신고식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일부러 편집되지 않으려고 카메라 앞에서 엄청 오버를 하기도 했죠. 그런 방송을 앞둔 날이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요. 솔직히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면 음반 판매량은 쫙 올라가요.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정말 스트레스 받고 괴로웠어요. 가수 이소은, 뮤지션 이소은은 좋은데, 연예인 이소은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았죠. 한창 예민할 때 그런 문제로 힘들었던 거 같아요."



이소은이 이렇게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해결책은 별로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스트레스에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죠.


다만 이소은이 중학교의 어려운 시절에 받았던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가 그녀의 잠재 의식속에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소은은 이것은 그냥 '1년짜리 버틸 힘'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런 가족의 따뜻한 위로는 두고두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우리에게 버틸 힘'을 주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죠.



이소은 가족 사진


이소은 아버지 역시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소은: "제가 (미국 로스쿨에서) 법 공부를 시작한 다음에 아빠와 대화가 부쩍 늘었어요.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1학년 때 어떤 식으로 판례를 읽어야 할지, 어떤 마인드로 분석해야 할지 전혀 개념 정립이 안 돼서 아빠와 통화하다가 “아빠, 난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없는 거 같아”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음날 이메일을 확인해보니까 ‘소은아,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라며 법학 공부를 대하는 마인드부터 시작해서 마치 한 편의 보고서와 같은 글을 보내신 거예요.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아마 이소은과의 통화가 끝난 다음에 이소은 아버지는 밤을 새워서 딸을 위해서 '작은 도움'이 되기 위하여 노력한 것 같네요.

이소은의 말대로 법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보다 가족이 '자신을 이렇게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이소은의 인생에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소은의 성공과 언니 이소연의 성공에는 그들 부모의 자녀 교육법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이소은과 존박은 시카고 노스웨스턴 동문이고, 예전에 김동률이 주선한 술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죠. 현재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네요. 현재 이소은은 뉴욕에에서 소송 전문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소은은 자신의 이상형을 이렇게 밝힙니다.

이소은: "일단 제가 원하는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서, 기왕이면 키도 크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서, 두 딸을 낳고 저만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꿈꾸는 외교 분야 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녀 사랑 많이 하고, 남편 사랑 많이 하고, 부모님과도 잘 지내고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음악회 열어서 저만의 공연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이소은 남편)(이소은 결혼)


이소은: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죠. 클리셰 같은 것도 있지만, 끊임없이 같이 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제대로 볼 줄 알았으면요. 그게 경제 동향이나 돈, 직업 같은 게 아니라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직시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랄까.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서 살고 싶거든요. 그런 남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현재 이소은은 남친(남자친구)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이소은 남자친구, 이소은 미혼).

이소은: "연애는 늘 뭐...노코멘트 할게요."

아마 지금 만나는 애인이 있는 모양이네요.


자신의 이상형과 결혼해서 예전의 바램처럼 사회 문제를 제대로 직사하는 부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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