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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오미연 남편 성국현- 성형수술과 행복의 비결

 오미연 신랑 성국현 러브스토리

여배우 오미연과 남편 성국현은 참 행복한 부부입니다.
어느 정도 알려진 것처럼, 이들은 큰 교통사고와 강도 사건 등의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행복한 부부가 되었죠.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었을까요?
보통 고난을 받으면 대개 불행해지는데, 이들이 행복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미연 남편 성국현 부부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오미연은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납니다(오미연 고향). 올해 62살이죠(오미연 나이).

(오미연 종교 여호와의 증인)
(오미연 학력 학벌) 매동초등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배화여고)
(오미연 프로필 및 경력)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신부일기의 여자운전사 역으로 주목을 받았고, 드라마 백년손님, 못 잊어, 한지붕 세가족, 남자의 계절, 사랑이 꽃피는 나무, 해피투게더, 김약국의 딸들, 사랑하기 좋은날, 천일의 약속, 세결여(세번 결혼하는 여자) 등과 영화 사람의 아들, 길소뜸, 기다리다 미쳐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미연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연극을 배우기 위해 극단에 들어갑니다.
오미연: "사실 연극배우 출신이에요. 연극일 배우기 위해 민예 극단에 들어갔어요. 당시 허균 선생님이 단장을 하실 땐데, 단원 모집 전 학생들을 가르치셨죠. 거기서 연극을 배우던 중 선생님께서 방송국이라는 곳에서 배우를 모집하니 시험 삼아 오디션을 보라고 하셨죠."

 

오미연 젊었을때 과거 사진

 

오미연은 그 오디션(MBC 공채 탤런트)에서 수석으로 합격하고,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렇게 활동하던 오미연이 현재의 남편 성국현을 만난 것은 1977년이었고, 당시 성국현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오미연 남편 직업 사업가, 이름).

 

오미연: "친구를 만나러 레스토랑에 갔다가 우연히 (남편을) 보게 됐어요."

오미연은 성국현의 외모에 호감을 품었고, 성국현 역시 오미연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다만 TV를 잘 보지 않았던터라, 당시 오미연이 탤런트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내죠.

그리고 두 사람과 교분이 있던 디자이너가 둘을 소개시켜주면서, 서로 정식으로 사귀게 됩니다.

성국현: "그냥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연예인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아내가 ‘TV도 안 보냐’며 드라마 ‘신부일기’에 나온다고 말하더라고요. 당시 주목받는 스타였는데도 제가 몰라보니 서운한 감정이 들었을 거예요."

 

어쨌든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공개 데이트를 즐깁니다. 성국현이 오미연을 방송국에 데려다주고, 또 연극무대에 설때는 단원들이 먹을 음식도 싸서 보내기도 하죠.
아마 서로에 대한 확신이 일찌감치 있었던 모양이네요.

 

오미연 어렸을때 사진, 젊은시절 비키니 수영복

 

그런데 성국현의 아버지가 둘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성국현 아버지; "딴따라와 결혼하려거든 이 집에서 나가라."

 

성국현: "그랬던 아버지가 막상 아내를 보고는 태도가 달라지셨어요.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꾸미지 않은 아내의 모습에 반해 오히려 서둘러 결혼날짜를 잡으셨죠. 결혼한 뒤에도 아내가 연기와 집안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자 방송생활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해주셨죠."

 

오미연이 시아버지될 어른에게 무척 잘 했는 모양이네요.
결국 둘은 사귄지 2년만인 1979년 4월 22일 결혼식을 올립니다.
(남편이 오미연보다 5살이 많음. 오미연 남편 나이차이)(오미연 배우자)
당시 오미연의 나이가 27살 때였네요.

(오미연이 여러가지 사건 사고를 많이 당해서 현재 남편과 재혼이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사실무근입니다.)

 

그리고 곧 아들 두명을 낳고, 딸을 임신하고 있을 무렵 큰 교통사고가 일어납니다(오미연 자녀 자식)(오미연 교통사고).
오미연; "임신 4개월이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무릎이 부서지는 등 심한 부상을 당했어요. 의사는 다리 수술을 위해 임신 중절을 권유했죠. 당시 셋째는 뱃 속에서 놀고 있는데 그 아이를 버릴 수가 없었어요.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기브스를 하게 되었죠."

 

 

당시 오미연은 600바늘을 꿰맬 정도로 큰 사고였고, 성형 수술 역시 6차례나 해야할 사고였습니다.

(사고 내용 - 1987년 12월 서울 김포공항 인근 도로에서 오미연이 타고 가던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한 승용차와 충돌해 늑골과 다리 등이 부러지고 얼굴을 600바늘 이상 꿰매는 등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음)

 

갑자기 상대방차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돌진해 오면, 사실 별다른 방법이 없죠.
아무튼 오미연은 다리 수술을 하려면 마취제를 맞아야 했고, 그럴려면 낙태를 해야 했습니다. 결국 오미연은 딸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다리 수술(?)을 포기합니다.

 

오미연: "당시 다리를 수술해야 했는데 그러면 아이를 지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건 못 하겠다라며 수술을 거부했죠. 한 의사가 와서 다리를 들어보라고 시켰는데 나는 다리가 아파서 못 들겠더라고요. 그랬더니 그 의사가 만약에 조금이라도 다리를 들면 수술도 안 하고 아이도 안 지우겠다고 해서 죽기 살기로 다리를 들었어요."

 

오미연: "진짜 침대에서 다리를 뜰까 말까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의사선생님이 깁스를 해주셨죠."

 

 

아마 의사가 배속의 딸을 살리겠다는 오미연의 의지를 보고 나중에 재활치료를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 교통사고의 영향으로 오미연은 딸을 조산으로 낳고, 또 딸은 뇌수종(머리에 물이 차는 병)에 걸립니다.

 

오미연: "31주만에 막내딸을 낳았는데 아이가 뇌수종에 걸렸어요. 병 때문에 아이의 머리가 점점 커져 마음이 아팠죠."
다행이 막내딸 성혜원(이름)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납니다.

 

 

오미연 막내딸 성예원 사진


이런 위기속에서 오미연을 지켜준 것은 남편 성국현이었습니다.
오미연: "우리 남편이 나한테 참 잘 했어요. 병원에서 밥 다 해 먹이고 외조를 정말 잘했죠. 말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일 끝나면 꼭 와서 병실에서 같이 먹고 자고 밥 해먹고 다 했어요. 정말 고마웠죠."

 

성국현: "당시엔 멍했어요. 아무 생각도 못햇죠. 아내가 의료진이 제안하는 것을 다 하면 낙태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내가 견딜 수 있다고 했고 결국 아내는 낙태 없이 딸을 낳았죠. 아내가 고마웠어요."

 


이런 큰 교통사고로 오미연은 거의 은퇴를 하게 되는데, 당시 보험사가 정한 여자 탤런트들의 정년은 45세였습니다.
남자와 다르게 2,30대까지만 활동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결국 성국현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1심 재판에서 일부 패소가 됩니다.

재판부: "오미연에게 1억2000만원을 지급하라. 여자 탤런트의 정년을 50세로 하고 40세까지는 사고 당시 평균 소득인 월 219만원, 41세부터 50세까지는 노동부 직종별 임금 실태 조사에 따라 여자 작곡가와 연예인의 일반적 수입인 월 83만원을 지급하라."

 

사실 연예인들만큼 수입이 들쭉날쭉한 직업도 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40세까지는 사고 당시 평균 소득을, 그 이후에는 일반적인 수입으로 보험사가 지급하라는 판결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정년을 50살'까지만 본 판결이었죠.

결국 성국현과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오미연이 다시 항소를 하고, 결국 재판을 이기게 됩니다.

2심 재판부: "탤런트는 정년이 따로 없고 연령 등에 관계없이 계속 일할 수 있다. 오미연의 경력과 인기도 등과 현재 50대 여자 탤런트가 연예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보험사들은 여자 연예인들의 일반적인 정년을 60세로 정하게 됩니다. 아마 성국현과 오미연이 아니었다면, 45세 정년이 몇년 혹은 몇십년을 더 갔을 것 같네요.


그리고 교통사고 후에도 위기는 계속됩니다.
오미연: "가사도우미가 막내딸을 산책시킨다고 나가서 자정까지 오지 않았다. 가사도우미 아줌마가 우리 집에 일하러 온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시기였는데 '좋은 분일거야..' 생각으로 인적 사항도 안 물어봐서 몰랐다. 유괴된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오미연: "연락할 곳이 없었는데 아줌마를 소개 해준 곳에 수소문 해 연락이 닿았다. 그 아주머니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오히려 '곧 들어오려고 했는데 왜 찾았냐'고 말해 당황스러웠다."

 

사실 가능성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 가정부가 실제로 아이를 유괴하려다가 중간에 생각을 바꿨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급한 볼일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온 것일 수도 있죠.

 

(오미연 집공개)


다만, 어린아이와 자정까지 산책을 했다는 변명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네요.

그리고 강도 사건도 벌어집니다. 당시 아들들은 학교에 갔고, 집안에는 오미연과 남편, 막내딸만이 있었죠.

오미연; "도둑들이 줄에 꽁꽁 묶은 다음에 이불을 뒤집어 씌웠어요. 예원이(막내딸)가 ‘엄마 뭐하는 거야?’ 하고 묻더라고요. 몸 약한 아이가 놀랄까봐 ‘아저씨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라고 답했어요."

 

오미연: "강도들이 남편의 목에 칼을 대고 협박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끼쳐요. 다행히 현금만 뺏기고 가족 모두 무사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겁이 났어요."

 

오미연: "강도가 집안을 뒤지다가 사진을 보고 내가 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강도 침입 후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됐죠."

 

사실 이런 두려움과 더불어 오미연의 아들은 아토피, 딸은 수술 후에 천식을 달고 살았기에, 깨끗한 자연환경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겸사겸사 오미연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납니다(1990년).

 


그리고 오미연은 전업주부로 생활하게 되죠.

오미연: "5달러가 아까워 세차를 직접 하고, 아이들에게 패스트푸드를 먹이는 게 싫어서 도시락을 두 개씩 싸줬어요. 8년간 그곳에 살면서 남편 사업이 잘되고 아이들도 잘 자라줬지만 ‘연기자 오미연’은 점점 사라졌어요. 그런 제 쓸쓸함을 가족들이 이해해줬고 때마침 한 방송국에서 드라마 출연을 제의해와 활동을 재개했죠. 남편은 2년 동안 캐나다에 더 머물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했어요."

 

결국 가족들의 이해속에 오미연은 혼자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성현국: "2년 동안 캐나다에서 살림을 하다 보니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었어요. 매일 똑같은 반찬을 만들어주니까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아 찬밥이 자꾸 늘었어요.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 모습에 화가 났죠. 그러다 문득 ‘살면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때가 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내가 다려주는 와이셔츠를 별 생각 없이 입었던 게 미안했죠."

 

그 뒤 남편 역시 2년뒤에 한국으로 들어오고, 아이들은 학업을 마친 뒤에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87년의 교통사고와 강도사건, 그리고 90년의 이민 등 짧은 시간에 작지 않은 사건을 함께 겪은 오미연 가족은 이후 행복을 되찾습니다.

 

오미연: "함께 DVD를 보면서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해요. 남편이 나이가 들수록 ‘수고했다’ ‘당신이 최고다’ 같은 말을 자주 하는데 그때마다 감동을 느끼죠. 오는 결혼기념일에는 골프를 좋아하는 남편과 여행을 좋아하는 제 의견을 반영해 골프여행을 가려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쑥스럽지만 아이들과 함께 작은 파티도 열고요."

 

오미연: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에요. 소통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죠. 예를 들어, 아이에게 무조건 담배 피우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보다는 담배 피우는 것이 왜 안 좋은지 충분히 설명부터 해야 하죠. 그리고 아이의 생각도 들어보고 오랜 대화를 통해 아이 스스로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깨우쳐줘야 해요."

 

오미연: "저는 참 무뚝뚝한 엄마였어요. 이젠 아이들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좀 하고 그러려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오늘은 꼭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지 마음을 먹어도 막상 하려면 안 되더라고요. 언젠가는 말할 수 있겠죠? 저의 미션이에요."

 


오미연 가족이 여러 고난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요?

보통 닥친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대개 이혼을 하는 등, 불행해 집니다.

 

그런데 오미연과 성국현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결코 자기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미연은 뱃속의 아기를 위하여 자신의 다리를 포기했고, 또 남편 목에 칼이 닿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연기 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또한 성국현 역시 교통사고를 누운 부인을 위해서 온갖 외조를 아끼지 않았고, 부인의 연기 인생을 위해서 캐나다에서 잘 나가던 사업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생각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면, 결코 하지 못할 행동들이었죠.

부부 사이가 이래서인지 오미연은 자식들에게 강압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에요.",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 것이죠.
오미연 부부는 나 중심이 아니라, 가족 중심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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