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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양미경 남편 허성룡- 안좋아했던 사람과

 양미경 허성룡 러브스토리

연예인이고 미인이라고 항상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양미경 역시 삶에 크나큰 위기를 겪지만 결연하게 대응했고, 이제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양미경에게 있어서 삶의 선택, 그리고 대응이 의미심장하네요.

 

 

탤런트 겸 영화배우 양미경은 1961년 7월 25일 제주도에서 태어납니다(양미경 고향). 올해 54살이죠(양미경 나이).
(양미경 학력 학벌) 휘경초등학교, 창덕여자중학교(창덕여중), 창덕여자고등학교(창덕여고), 숭의여자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숭의여전),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 석사

 

(양미경 프로필 몇 경력) 1983년 KBS 1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1984년 드라마 미망인의 지나가는 사람 역으로 처음 등장했으며, '바람 바람 바람', 제 2공화국, 사랑이 꽃피는 나무, 여자의 시간, 두자매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로 단역을 맡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드라마 대장금의 한상궁 역으로 크게 인지도를 올립니다. 단번에 한류 스타 반열에 올랐죠.

그 이후에도 왕과 나, 민들레 가족, 미스 리플리, 해를 품은 달, 예쁜 남자, 왔다 장보리 등에 꾸준히 출연합니다.

(사실 그 전에 악역 연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방울이에서 얄미운 계모 역할을 맡았죠)

 

 

특이 사항으로 아버지 양상우(이름)가 해병대 출신으로 국가유공자입니다(625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 1급, 총상으로 다리를 잃은 상이용사임).
(참고로 가수 양수경과는 가족관계가 아닙니다. 양수경의 친동생과 동명이인이어서 많이 헷갈려 하죠.)


어린 시절 양미경의 성격은 내성적이었습니다.
양미경: "학창시절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성적은 중간 정도였고요. 당시에는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목표로 공부했는데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림을 전공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그림을 좋아하셔서 따로 습작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실력은 됐거든요. 연기자가 된 후에도 시간 나면 화실에 가서 스케치를 하고, 뜨개질이나 십자수를 즐겨왔어요."

 

숭의여전(현재는 숭의여대)을 졸업하고 국제그룹 비서로 1년 정도 일하는 등의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탤런트가 된 다음에도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습니다.

 

양미경: "미혼일 때는 촬영장에서 대사 외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을 정도로 내성적이고 겁이 많았어요.
선배 탤런트 정한용이 놀림 삼아 “틀니 빠질까 봐 얘기 안하냐”며 ‘틀니’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죠."

 

(물론 훗날 아줌마가 된 후에는 수다를 좋아하는 성격으로 변하죠.)

 

그러다가 1987년 운명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KBS 가요드라마 ‘바람 바람 바람’을 찍는데, 한강에 빠졌던 것이죠.
양미경: "자전거 타는 장면을 촬영 중 페달을 잘못 밟는 바람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한강에 빠지고 말았어요. 시집도 가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양미경: "그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이 당시 드라마 조연출이었던 지금의 남편이에요.
원래 살집이 있어(뚱뚱해서) 안 좋아했는데, 그 이후로 그 사람이 너무 멋져 보이더군요."

이때 만난 사람이 바로 남편 허성룡(간혹 이름을 허성용으로 표기하기도 함)입니다.
허성룡 역시 1983에 kbs에 입사했던, 조연출이었습니다(양미경 남편 허성룡 직업).

 

양미경 남편 허성룡 사진


확실히 지금 사진에서도 좀 뚱뚱한데, 당시 양미영의 말처럼 '살집'이 있고 미남은 아니었죠. 게다가 양미경은 동료 미남 탤런트들을 많이 봤으니 더욱더 비교가 되었을 겁니다.


이 '한강 사건'으로 둘은 좋은 기억을 가진채 헤어집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연이 아니었죠.
그러다가 둘은 6개월 후에 다시 우연히 방송국 로비에서 촬영대기를 하다가 만나게 됩니다.

 

허성룡: "이상하게 그날 둘 다 촬영이 계속 지연되더라고요. 기다리면서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 이 배우가 작품을 보는 나름의 시각과 눈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 뒤 매일 만나다시피하다 6개월 만에 결혼했죠."

 

허성룡은 양미경의 외모가 아니라 대화를 오래 나눠보고 서로 통하는 것이 있으니까 사귀기 시작한 것이죠.
양미경 역시 이때 허성룡의 성격을 파악했고, 또 그전 사건(단역이었던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서슴없이 몸을 날렸던 일)으로 그 마음가짐에 반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끌렸고, 6개월 연애 후인 1988년 5월 2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허성룡 나이는 양미경보다 4살 연상)

허성룡은 이후 KBS 예능국 PD를 그만두고 대경대 방송연예과에서 강의를 하다가 모 선박회사 임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후에는 국회방송에서도 일함.)


양미경은 남편을 성격을 보고 선택을 했고, 그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양미경: "야외촬영 하다 쉬는 시간에 잠시 집에 들르면 (남편이) 왜 거기서 쉬지 않고 집에 왔느냐고 그래요. 제가 식사 준비를 하면 진석 아빠(남편)가 빨래하고 진석이(아들)는 걸레질을 해요.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런 것들을 일하는 아내와 엄마의 몫으로 미뤄 놓으면 더없이 힘들어지잖아요."

 

양미경: "진석이(아들)는 운동화가 작아지면 사달라고 조르는 게 아니라 자기 발가락을 구부려 거기에 맞춰 신을 정도로 착해요. 성격이 원만해서 교우관계도 좋고, 부모 말도 잘 따라주고요. 또 두 남자 모두 집안일을 잘 거들어요. 제가 없을 때도 청소나 설거지를 나눠서 하더라고요. 덕분에 저는 일주일에 한번씩 장만 보면 돼요."

 

아마 아들 허진석 역시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 같네요(양미경 자녀 자식, 가족관계).

 

양미경: "‘한상궁’으로 인기가 치솟고 인터넷에 팬 카페가 생겼을 때 남편이 “팬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빡빡한 촬영 일정 탓에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부리면 “배우가 감수하고 이해해야 하는 부분을 잊지 말라”고 전직 연출자답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고요."

 


양미경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와 시 읽기입니다.
양미경: "시집을 즐겨 봐요. 류시화 시인의 시를 특히 좋아하고, 최근 읽은 책 가운데서 좋았던 것은 곽재구 시인의 ‘새벽기차’와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예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책이 늘어나는데, 아들도 저를 닮은 것 같아요.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어릴 적부터 잠들기 전에는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 영향인지 책을 좋아해요."

 

이때문인지 양미경의 감성이 무척 풍부하죠.
이병훈(대장금 감독): "감성이 풍부하고 지극히 순수하며 진정성이 있는 배우다. 감성 연기는 대한민국에 양미경을 따라올 배우가 없다. 넘치는 감성을 자제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한 상궁은 장금의 스승이면서 어머니면서 동시에 친구이며 어른이었다. 그 모든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 낼 적임자는 양미경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매사 역할마다 어찌나 진지하게 임하던지 연기할 때는 감독인 나조차 숨을 죽일 정도였다."


아마 평소에 양미경이 시를 즐겨 읽고, 내면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가꾼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 영향이 양미경 연기에도 나타나고, 더 나아기 직접 에세이와 시집을 내기도 했었죠.

양미경 저서
1997년 『당신이 진실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에세이집
2004년 『양미경의 가슴으로 읽는 시』
2008년 『愛する心で(사랑하는마음으로)』… 일본 수필집 출간

 


물론 양미경의 인생에도 고난과 역경이 있습니다. 보통의 여배우처럼 이혼과 재혼이 아니라 친동생과의 문제였죠.

허성룡: "처남(양미경 친동생)이 9억원에 달하는 연예 활동 수익을 횡령했고 이번 고소와 관련해선 모든 것을 거짓으로 꾸몄다. 횡령과 계약 불이행 건도 본인이 속여서 계약한 부분을 누나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누나는 계약서 내용도 모르는데 뭘 이행하겠나."

 

원래 양미경의 친 남동생이 양미경의 매니저 일을 합니다. 이에 대해 양미경 측이 존속 폭행과 횡령 등을 이유로 남동생을 고소하고, A(양미경 친 남동생)가 반박합니다.

A(양미경 남동생): "누나(양미경)가 존속 폭행과 횡령 건 등으로 나를 고소해 이미 두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폭행과 횡령, 손해배상 등을 이유로 2일 오후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할 것이다(맞고소할 것이다)."

 

양미경: "동생으로부터 최근 수년간 수익금 대부분을 전달받지 못했으며 수익 배분 계약 조건은 8대 2이다."

 

A: "수익 배분 비율은 5대5이이다. 그리고 전속 계약서가 존재하고 초상권 관련 사업 손해 등에 대한 근거 등 증거 자료를 모두 준비해 놓았다."

A(친동생)의 주장은 확실히 무리가 있네요. 양미경이 갓 데뷔한 신인도 아닌데,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중견탤런트가 5대 5 배분을 하는 것은 연예계 생리에 맞지 않죠.

 

 

결국 재판 결과는 양미경의 승소로 끝나고, A는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됩니다.
재판부: "누나의 출연료를 횡령하고, 가족에게 행패를 부렸음에도 오히려 누나를 무고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
(양미경은 무혐의, 동생은 사문서 위조, 횡령,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됨)


그리고 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장금 이후에 중국의 한 생수업체가 양미경을 광고전속 모델로 고용했는데, 이 재판을 빌미로 이미지 추락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5억원을 청구합니다.
결국 재판 결과 양미경은 4천만원을 배상하게 됩니다(재판부에서는 피고의 일부 책임이 인정되어서 이런 배상 판결을 내림).


남편이 문제를 안 일으키니, 남동생이 문제가 되네요. 그래도 이런 위기에 남편이 든든하게 뒷받침이 되었고, 양미경은 재판에서 불합리한 점을 밝혀 냅니다. 어쩌면 가족이라고 너무 믿고 처음부터 매니저를 맡기고 수입 관리까지 맡긴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자칫하면 이때 이미지 추락으로 양미경은 연예계에서 은퇴할 뻔했죠. 이런 위기에 남편은 양미경에게 큰 힘이 되고, 또 지금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마 젊었을 때 외모가 아니라 성격과 사람됨을 보고 결혼한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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