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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수(40대)결혼생활

강원래 김송 러브스토리 남편 외도와 아내의 간증

 

강원래와 김송 부부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인생에 수많은 사건과 사고,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남편은 최고의 스타에서 불의의 사고로 반신 불수의 장애인이 되고, 아내는 오랫동안 쫓아다니던 남편과 꿈에 그리던 결혼을 했지만 남편의 불륜(외도)으로 굉장한 실망감을 갖게 되고, 마지막으로 여러 차례 실패했던 시험과 아기를 드디어 성공하는 등, 평범한 사람들은 일생동안 한 두가지도 겪기 힘든 일을 이들 부부는 불과 몇년만에 겪게 됩니다.

  

강원래는 19691221일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46살이죠.

(강원래 학력, 학벌) 논현초등학교, 언북중학교, 경기고등학교, 강릉대학교 산업공예학과(중퇴), 디지털서울 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

(강원래 프로필)

 

강원래는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춤꾼중의 한명이었죠. 그리고 1996년에 고등학교 동창이자 와와의 동료였던 구준엽과 함께 클론이라는 댄스 그룹을 결성하면서 한국과 대만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당시 강원래와 구준엽이 댄스 유행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강원래의 배우자 김송은 19721222일생입니다. 올해 나이가 43살이죠.

(김송 프로필)

1996년 콜라 1집 앨범 [모기야]로 데뷔

김송 종교; 기독교

 

두 사람은 첫만남부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김송이 겨우 중학교 3학년의 미성년자였을 때 나이트클럽에서 만나게 되니까요.

강원래: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송이를 처음 클럽에서 봤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왔다."

 

김송의 어머니가 김송을 데리고 나이트클럽에 갔던 모양이네요.

구준엽 역시 당시의 강렬했던 김송의 첫인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준엽: "김송이 외국인 친구인줄 알았다. 마치 할배리 같았고 너무 괜찮았다. 감히 말 못 걸 듯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강원래가 군대를 간 1991년 무렵에 강원래와 김송은 연애를 시작합니다.

강원래: "아내 김송과 1991년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군대 가기 전에 아내에게 고백을 사랑고백을 하고 떠났다. 군시절 아내에게 보낸 편지만 500통이 넘는다. 그때부터 이미 편지 말머리에는 '내 사랑 송이', '내 아내 송이'라고 썼다."

 

여기서 강원래와 김송 둘의 기억력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김송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죠.

"편지를 먼저 보낸 건 나였다. 강원래의 주소를 알기 위해 당시 강원래의 소속사를 찾아갔었다. 괜히 안들키려고 구준엽의 주소도 함께 알아낸 뒤 구준엽 주소는 버려뒀다."

 

김송의 기억이 좀 더 구체적이네요. 아마 김송의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강원래가 아내의 체면을 위해서 하얀 거짓말을 한 것인지도 모르고요.

 

 

어쨌든 강원래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둘은 엄청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김송: "한 통을 써서 보냈는데 답장이 왔다. 그런데 편지 1통에 10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가 무려 750여통이나 됩니다.

강원래: "그 중 내가 쓴 편지가 500통은 될거다. 당시 편지의 시작은 늘 '내 마누라 송이' '내 사랑 송이'였다. 그래서 나중에 송이를 위한 노래의 제목도 이것을 따서 지은거다."

 

아마 무료한 군생활이기에 강원래가 더욱더 김송을 떠올렸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강원래는 제대 이후에 다시 가요계에 복귀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1996년 구준엽과 클론을 결성하고 가요계의 정상에 서게 되었죠.

 

 

하지만 강원래는 꾸준하게 바람을 피웁니다.(혹은 김송과 정식으로 사귀기 전이라고도 할 수 있죠.)

김송이 구준엽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토로한 적도 있었죠.

김송: "어떤 여자분이 구준엽에게 강원래를 만나고 싶다고 조르자 준엽이 소개시켜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 화가 난 적이 있었다."

 

구준엽: "15년도 더 지난 일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김송이 이니셜을 말하자마자 구준엽은 그 일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때 상대 여자는 연예인이었던 거 같네요. 당시 잘 나가던 클론이 일반인을 만날 환경이 되지 않고, 김송과 구준엽 사이에 서로 이니셜로 통하는 인물이니까요.

 

사실 여자라도 남자의 예전 여친(여자친구)의 이름을 15년 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일 뿐더러, 남자가 친구에게 소개시켜준 여자의 이름을 그때까지 기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 유명 가수나 탤런트이기에 항상 TV를 통해서 되샘김질 할만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강원래와 이하늘과의 삼각관계는 아주 유명하죠.

나중에 강원래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과거 이하늘의 여자친구와 삼각관계였다.

(DJ DOC 멤버와) 사귀고 있는 와중인 줄 몰랐고 여자 분이 굉장히 세게 대시했다. 현진영과도 친분이 있었다더라. 나보고 현진영이 왔다고 숨어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하늘이 7'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곡으로 강원래를 정면으로 디스합니다.

 

노래 가사: "창문을 깼어 들어갔어 순간 쫄아있는 네 얼굴을 봤어 깼어 난 순간 돌았고 넌 튀었어 그때 넌 정말 칼 루이스보다 더 빨랐어."

 

"내가 형이라 부르던 사람 그 사람과 이 세상 하나뿐인 내 사랑이 한 방에서 뒤엉켜 있는 그 모습을 그 더러운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해."

 

"네가 좀 잘나갈 때 마치 놀이동산에 놀러온 정신 못 차리는 꼬마처럼 이 여자 저 여자를 놀이기구처럼 갈아 타 그랬던 네가 방송에 나와 그녀가 양다리였다라고 다시 상처를 주네."

 

 

가사의 내용을 보면 이하늘이 강원래와 애인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거 같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이하늘은 해당 여자와 3년을 더 사귀지만, 어쨌든 당시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강원래가 이런저런 사건사고를 일으키지만, 결국은 김송에게 프러포즈를 합니다.

김송: "어느 날 스포츠신문 1면에 우리의 결혼설 기사가 났다.

당시 기사를 보고 '나는 이제 결혼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들떴는데 강원래는 부인했다. 그리고 2개월간 연락이 안 됐다.

그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이 당시가 바로 클론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2000년 여름 경이었습니다. 당시 4New World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죠.

 

김송: "너무 마음이 힘들어 술을 마시고 연락을 해 강원래에게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며칠뒤 김송은 강원래로부터 뜻밖의 대답을 듣게됩니다.

"결혼하자."고 김송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것이죠.

 

김송: "강원래가 그때 '짐 챙겨 우리 집으로 와 같이 살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로 짐을 챙겨 결혼 전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김송의 작은 행복은 불과 3개월만에 부서집니다.

바로 강원래가 사고가 난 것이죠. 강원래는 2000119일 낮 1시경 오토바이(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던 중, 불법 유턴하는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결국 강원래는 하반신 마비가 되는데, 한때 정신적으로 무너질 뻔도 했지만, 후에 재활에 성공했고, 20055집 앨범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김송이 있었죠. 김송은 강원래가 반신불수가 되었음에도 그를 버리지 않고 항상 그의 옆에서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당시 김송 직업 안무가)

집안 일을 하면서 동시에 바깥일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오죠.

 

 

결국 둘은 20018월 혼인신고를 했고, 20031012일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김송은 시험관 아이를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김송의 엄마가 마지막 소원을 남긴 것이죠(김송 시험관 아기 이유).

"시험관 아기가 성공하는 걸 보고 눈을 감고 싶다."

 

결국 김송은 어머니(강원래의 장모님)의 소원을 들어들이기 위하여 배란을 유도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는 쉽게 성공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김송은 7번 실패하고 8번 시도해서, 임신에 성공하게 됩니다. 78기의 도전 정신으로 저세상에 있는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준 것이죠.

 

초음파 사진을 보며 기뻐하는 강원래 김송 부부(태명은 똘똘이)

 

그런데 김송과 강원래의 러브스토리는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사고를 당한 강원래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된 신랑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부인인 김송의 마음은 이미 피멍이 든 상태이죠.

 

 

김송 간증'장애인된 남편이 내 친구와 성관계를 했다'

 

- 말레이시아에 사는 저의 쌍둥이 남동생은 바람 사건으로 자책하며 칼로 자해를 하고 자살한다고 차로 전봇대를 들이받는 등 사고를 쳤고, 알콜중독에 빠져 한국에 나와서도 가족들을 칼로 위협하며 힘들게 했습니다. 공동체의 중보 기도로 조금씩 길을 열어주셔서 생각지도 못한 입원 치료를 받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갔고,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생이 한국에 있을 동안 올케는 "치료가 안되면 어떡하나, 그동안 무능력한 남편의 뒷바라지에 딸을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바람을 피우는 것이 억울해 이혼하겠다"고 하며 매일 지옥을 살며 두려워했습니다.

 

- 남편(강원래)도 저와 연애할 때 "내가 믿는 건 내 사랑 송이와 돈 밖에 없다"고 했는데 제대 이후부터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에 서기까지, 그리고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 7년 내내 바람을 피웠습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도 제가 지방에 가 있는 동안 저와 친했던 동생을 집으로 불러 들여 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포기하고 네 똥 치워주고 살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고액의 위자료를 청구하며 이혼을 요구했지만 돈을 주지 않아서 분하고 억울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혼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이혼하신 부모님 밑에서 언니와 오빠도 이혼했는데 나마저 가족들에게 이혼의 상처를 안겨줄 수 없었기에, 빠져 나갈 길이 없어서 매일 이혼과 도피, 죽음만 묵상하며 옥에 같혀야 했습니다.

(원래 이 동영상이 존재했지만, 나중에 삭제됩니다.)

 

 

 

강원래가 결혼전에 여자관계가 무척 복잡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 후 장애인이 된 다음에도 이런 불륜을 저질렀는지는 몰랐네요.

김송으로부터 이혼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하반신이 마비된 강원래가 성관계를 갖을 수 있을까요?

좀 뒤져보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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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부족한 답변 드립니다.

발기는 우선 약물로 먼저 시도해 봅니다.

비아그라 100밀리, 혹은 시알리스 20밀리

그래도 안될시에는 비아그라와 시알리스를 같이 복용해보기도 하는데,

약물 시도는 무조건 재활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상담하고 용량이나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요도로 철심은 삽입하는 방법인데, 물론 빼고 끼우는 방법입니다.

 

물론 성관계시 성기에 느낌이 없기 때문에 정신적인 흥분으로 성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또 사정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아기를 못갖는 것은 아니며 인공수정을 통해 충분히 아기를 가질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요즘은 멀정한 사람도 인공수정 하니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국립재활원이 성재활 프로그램이 잘되어 있으니 이용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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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강원래가 장애인이 된 다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재기한 것은 박수 받아야 할만한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그의 도덕성까지 함께 포장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아마 김송이 없었다면 강원래는 영영 쓰레기처럼 살았을 거 같습니다.

그런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 같이 사는 김송이 대단한 여자 같네요. 

앞으로는 좀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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