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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4

김영삼 김대중 분열의 이유 # 목차*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 직선제 도입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의 재분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스폰서 링크) . .*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 하지만 87년 대선을 아니라, 1980년 상황부터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죠. 12.12사태로 신군부가 정면에 등장했을 당시에도, 김영삼과 김대중은 각자의 대권 행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김영삼은 '김대중이 신민당에 입당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고, 김대중은 김영삼의 이런 주장을 거부했죠. 결국 김영삼은 1980년 4월 28일 신민당 당직자들을 거느리고 현충사를 참배했고(거의 대선 출마와 비슷한 효과), 김대중도 같은날 동교동계 의원들과 함께 현충사 부근 윤봉길 생가를 방문하면서 맞불을 놓습니다. 당시 두 사람을 화합시키기 위하여 노력했던 윤보선도, 이 사건 이.. 더보기
김영삼의 예언과 박정희의 사망 # 목차* 김영삼의 예언과 박정희의 사망* 부마항쟁의 시초* 전두환의 등장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스폰서 링크) . .* 김영삼의 예언과 박정희의 사망 이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이 시위 도중에 신민당사 4층에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죠.박정희 정권은 1978년부터 김대중을 가택연금에 처해 놓았는데, YH여공 사건이 발생하자, 김영삼마저도 처리하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김영삼의 국회의원 자리가 제명되었는데,오히려 김영삼은 "나를 제명하면 박정희는 죽는다."라고 예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영삼의 예언대로 실제로 박정희가 사망하게 되었죠.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김영삼에 대한 의원직 제명으로 신민당 의원 66명과 민주통일당 의원 3명이 집단 사퇴서를 제출합니다.김영삼 박정희 사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