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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들

쇼를 사랑한 남자 실화 내용- 영화의 바탕이 된 회고록 내용

 

 
영화 제목: 쇼를 사랑한 남자

감독: 스티븐 서더버그

출연: 마이클 더글라스, 맷 데이먼, 로브 로우 등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쇼를 사랑한 남자'는 철저하게 실화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1970년대 미국 최고의 스타 피아니스트 리버라치라는 실존 인물의 인생을 그린 것이죠. 그리고 그 바탕이 된 기록은 바로 리버라치의 연인이었던 스콧 소손이 작성한 회고록 (제목) '화려한 촛대 뒤에서: 리버라치와 함께한 나의 삶'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리버라치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하고 친숙한 이름입니다.

현재는 마돈나, 레이디 가가 등이 화려한 퍼포먼스와 현란한 쇼맨십 등으로 유명한데, 그들의 원조가 되었던 인물이 바로 리버라치였습니다.

가히 쇼맨십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죠.

(화려한 퍼포먼스는 그의 등장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국 공연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죠.)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최초로 열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보석 달린 화려한 모피를 착용하며 피아노 한대로 전 미국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리버라치의 생애(일대기)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영화의 줄거리와도 거의 비슷하죠)

리 리버라치(Lee Liberace 리버라치의 성과 이름)1919년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폴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네 살때 음악을 듣고 곧장 피아노로 연주했던 신동이었습니다. 그의 첫무대는 14살 때 바이올리니스트인 형 조지와 함께 살롱에서 연주하는 무대였습니다.

리버라치가 남자에게 관심을 보인 건 이 즈음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그는 16세 때 프로 풋볼 선수로부터 유혹을 받습니다. 그때부터 남성과 모종의 썸씽이 있게 됩니다.

 

 

1940년대 리버라치는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으로 선회하면서 승승장구합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시작된 '리버라치 쇼'는 미국 전역에 방송되면서 그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듭니다.

팝과 클래식의 명곡들을 화려한 스타일로 연주하던 그의 모습은 특히 중년 이상의 아줌마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히 구름떼 같은 아줌마부대를 몰고 다녔죠.

 

그런 리버라치를 남자들은 싫어했습니다. 슬슬 게이설도 흘러나왔습니다. 결국 리버라치의 에이전트는 코러스 걸이었던 조앤 리오를 가짜 연인으로 만들어서 결혼발표까지 합니다. 조앤 리오 다음에는 중년의 스케이팅 스타였던 소니아 헤니를 연인으로 만들죠.

 

하지만 리버라치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은 그치지 않았고, 마침내 리버라치는 소송을 겁니다. 1956년 영국의 '데일리미러'에 미국에서는 '컨피덴셜'과 소송이 붙어서 둘 다 이깁니다.

리버라치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지만, 법정에서 이런 증언을 해야 했습니다.

재판관: “동성애적 행위에 끌린 적이 있느냐

리버라치: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동성애에 반대합니다. 그것은 관습에 어긋나는 반사회적 행동입니다

 

보통 미국인 굉장히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굉장히 보수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결국 리버라치는 자신의 명예와 부를 지키기 위하여 재판정에서 거짓말을 한 셈이죠.

물론 그의 저택에서는 계속 게이 파티를 하면서 말이죠.

 

 

이 무렵 리버라치는 한명의 진짜 연인을 사귑니다. 바로 영화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스콧 토슨입니다. (나이는 리버라치보다 39살 연하)

스콧 토슨은 리버라치의 재산과 화려한 생활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모든 것을 리버라치를 닮으려고 애씁니다. 심지어 성형수술까지 하죠.

(영화에도 이러한 점이 잘 나와 있습니다. 실제 성형수술은 아니고, 분장으로 점점 닮아가는 거죠. 그런 외모의 변화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점점 일체화가 되어 갑니다.)

 

하지만 스콧에 대한 리버라치의 사랑은 곧 식고, 스콧은 리버라치에 대하여 11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별거 수당을 요구합니다. 이번에도 리버라치는 재판정에서 자신과 스콧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재판 결과(1986년) 리버라치는 스콧에게 9만 5천 달러의 정착금만 지불하는 것으로 재판이 마무리가 됩니다. 그리고 스콧은 위에서 언급한 회고록을 작성하게 되고요.

(실제 영화는 이 회고록을 주축으로 만들어졌지만, 리버라치의 그 이전의 생애는 여러가지 자료를 사용해서 만듭니다.)

 

이때까지만해도 리버라치는 자신이 에이즈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니, 에이즈라는 병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죠. (실제로 에이즈는 1985년 록 허드슨이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죠.)

 

결국 리버라치는 1987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중에게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습니다.

동성애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두 남자의 섬세한 심리를 잘 묘사한 '쇼를 사랑한 남자'2005년에 나왔던 브로크백 마운틴을 뛰어넘는 게이 영화가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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