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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총 8개의 글중 일곱번째 글


가수 한영애 가창력이 호불호가 나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목차

* 한영애 가창력 평가

* 한영애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 한영애 명반들의 탄생 비화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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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여가수 이야기] - 가수 한영애 나이와 재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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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애 가창력 평가


이때 한영애 가창력이 소문이 나게 됩니다.

정확하게는 '이상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 있다'라는 소문이 났고, 결국 이정선이 이 소문을 듣고, 한영애에게 해바라기 합류를 제안한 것이죠.


사실 한영애 가창력은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나뉩니다.

그녀의 별명인 '소리의 마녀'처럼 굉장히 허스키하면서 특이한 소리를 내는데,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죠.


아무튼 한영애는 해바라기 1, 2집에서 활동을 했는데, 한영애가 가수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모 음반사에서 한영애의 음반을 무단으로 내버리는 사건이었는데, 저작권의 개념이 철저하게 확립되지 않은 당시에도 '절도'에 가까운 큰 사건이었죠.


결국 이 사건으로 한영애는 연극배우 생활을 시작했는데, 사실 원래 한영애는 대학 시절에 연극 전공을 하기도 했었죠.

가수 한영애 사진

* 한영애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한영애: "해바라기 2집 이후에 전 록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해바라기는 통기타 그룹이기 때문에 불가능했어요. 그때 제게 세미뮤지컬 작품 섭외가 들어왔고, (무대에서) 록을 부를 수 있다는 말에, 연극에 무섭게 빠져 들기 시작했어요."


한영애: "제 속에 어떤 응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해바라기 시절에도 마구 소리를 질러대고 싶었지만, 포크 음악이어서 그것이 불가능했어요. 그러다가 뮤지컬 배우를 한 것도 그런 욕구를 풀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한영애는 1986년 다시 솔로 가수로 컴백하게 됩니다.

한영애: "연극하던 시절도 참 좋았지만, (연기가) 내 평생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러다가 솔로 데뷔를 하게 되면서, 어떤 형태가 됐든 죽을 때까지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어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명반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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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애 명반들의 탄생 비화


한영애: "1집은 노래를 오래 쉬었다가 복귀했기 때문에(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복귀했기 때문에), 프로듀서가 하자는 데로 많이 따라갔어요. 나중에 1집을 들어보니, '아, 이 앨범은 날 닮은 것 같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영애: "그때 나 스스로 기획을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집에서) 내가 직접 기획을 했어요. 속이 후련한 앨범이었죠."


참고로 솔로 앨범을 내면서 한영애가 신촌블루스로도 활동을 하게 됩니다.

한영애: "당시 김현식은 언더그라운드의 왕자였고, 이광조 역시 최고의 인기를 얻을 때였다. 나만 무명이었는데, 공연에 온 사람들이 처음에는 "한영애가 누구야?"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아, 저 가수가 바로 한영애구나"라면서 돌아갔다."


솔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한영애는 무척 다양한 변신을 시도합니다.

원래 포크로 시작을 한 다음에, 블루스와 록, 테크노, 트로트 심지어 나중에는 케이팝 장르의 노래까지 부를 정도죠.


아마 이처럼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는 여가수는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지 않은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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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여가수 이야기] - 한영애 남편 결혼 X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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