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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강부자 남편 이묵원/강부자 정주영 신애라 루머의 진실

강부자 이묵원 러브스토리와 인생이야기

연예인들중에서 강부자는 루머가 많습니다. 일명 '마담뚜' 루머로, 여자 연예계인들을 재벌 회장에게 소개시켜주어서 소개비를 받는다는 소문이죠.

여기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지만, 사실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뿐이죠.


또한 강부자와 남편 이묵원간의 결혼 생활도 흥미롭습니다.


강부자 이묵원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강부자는 1941년 2월 8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납니다(강부자 고향). 올해 74살이죠(강부자 나이).

(강부자 종교 불교)

(강부자 학력 학벌) 강경여자고등학교, 충남대학교 국문학과(중퇴)

(강부자 프로필 및 경력) 1962년 KBS 탤런트 2기생에 합격


그리고 구두창과 트위스트라는 드라마로 데뷔하는데, 여기서 맡은 역할이 바로 '중매쟁이' 역할이었습니다. 이후 다모기담, 연화, 야망의 세월, 배반의 장미, 넝쿨째 굴러온 당신, 세번 결혼하는 여자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좋은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특이한 것은 위에서도 '중매쟁이'로 언급했지만, 데뷔초부터 강부자는 중년 부인 역할을 맡습니다. 그래서 당시 PD들이 좋아하는 연기자 중의 한명이었죠. 당시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예쁘고 좋은 역할만 하려고 했기에, 강부자같은 연기자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강부자 경력중에 굉장히 특이한 것이 바로 1971년도에 지냈던 한국방송연기자협회 부회장 직책이었죠. 이후 약 12년동안 맡는데, 당시 31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직책이었습니다.


강부자 젊은시절 과거 사진


강부자의 연기자 경력외에 특이한 점으로 정치인생이 있습니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소속 제14대 국회의원이 된 것이죠(1992년 6월 ~ 1996년 5월, 여자연예인 최초의 국회의원, 실제적으로는 지역구 선거에서 떨어지고, 정주영의 대통령 출마로 공석이 된 전국구 자리를 이어받음.)



아무튼 강부자는 남편 이묵원과 4년간 비밀연애 끝에 1967년에 결혼식을 올립니다(강부자 배우자 이묵원, 강부자 남편 직업).

이묵원은 1938년 4월 26일생으로, 1962년 KBS 2기 공채탤런트로 데뷔합니다(원래 1961년 MBC 라디오 방송 특채 성우 연기자로 데뷔했다가, KBS로 옮김. 이묵원이 강부자보다 3살 연상이지만, 데뷔 동기임)


강부자 이묵원 부부는 아들과 딸 한명씩을 낳습니다(강부자 자녀 자식)(강부자 아들 이름은 이헌주, 딸은 이승하)(강부자 가족 관계 1남 1녀).


(이묵원 프로필 및 경력)

수사반장과 제1공화국 등에 출연했지만, 별다른 빛은 보지 못합니다.


강부자 결혼 사진


강부자: "당시 그 사람이 너무 가난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끌렸다. 나보다 3살 윈데 해군 의장대 출신이라 몸도 반듯했다."


강부자: "항상 '강부자 남편'으로 불리는 남편에게, 아내로서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강부자: "내가 7남매 중 맏며느린데 물론 고부갈등을 겪을 시간도 없었지만 우리 어머님은 한번도 내게 거슬리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이 며느리보다 활동이 적었기에 늘 그거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에미야 너 볼 면목이 없다’ 그러셨지."


강부자: "그리고 내가 뭘 해다 드리면 “에미야 너 잠도 잘 못 잘 텐데 이런 거 해오지 마라” 그러시구. 남편이랑 4년간 연애하다 결혼했는데 결혼 전에도 내 생일 때 꼭 동대문 시장에서 천 떠다가 잠옷 만들어서 보내시곤 했어. 84세에 돌아가셨는데 돋보기 한번 안쓰시고 바느질을 하셨는데 드라마에 필요한 의상도 어머니가 다 만들어주셨지."


강부자: "돌아가실 때 유서를 써놓았는데, ‘제사를 절대 큰형수한테 맡기지 말라’고 하신 거야. 내가 바쁘고 힘든 걸 아니시까 마지막 가시는 순간에도 그렇게 배려를 하신 거지. 어떤 집안에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 그 며느리로 인해서 집안이 평화롭게 되느냐 아니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 아니겠어? 그렇기 때문에 난 고부간의 관계는 특히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잘 다독거리면서 내 집안 사람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옛날에 고부간의 갈등은 결국 일종의 헤게모니 쟁탈이었지 뭐. 광 열쇠를 누가 쥐느냐 하는 거…."


확실히 강부자의 말처럼 예전에는 고부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광 열쇠 쟁탈(헤게모니 쟁탈)이었죠. 요즘은 같이 살게 되면, 아들의 월급 봉투가 누구에게 가느냐로 신경전을 많이 펼치는 것 같습니다.


강부자 가족 사진


어쨌든 이렇게 결혼 생활을 시작한 강부자는 곧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됩니다.

강부자: "나는 남편이 나가서 사흘씩이나 어떤 여자하고 호텔에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 때가 우리 아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다. 근데 남편은 사흘을 나가 지금의 S 호텔에 있었다. 그 여자가 누군지 난 다 안다."(강부자 남편 외도 불륜)


강부자: "남편이 방송국에 와서 저녁 5시만 되면 그 여자와 사라지고 그러는데도, '난 이 남자하고 끝까지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참았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겐 또 아이가 있었다. 남자가 정말 바람둥이로 도저히 구제불능이면 헤어져야겠지만, 어쩌다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호적의 자기 이름 옆에 엄연히 내 이름이 있고 그 밑에 아들도 있는데, 그래봤자 다시 돌아오지 뭐하겠나. 난 그렇게 생각했다."


강부자: "(바람피운 남자가) 불결하긴 뭐가 불결하겠나? 씻으면 되지. 사실 쥐를 쫓아갈 때 막다른 골목에 쥐가 부딪치면 노려보며 뒤돌아선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줘야 하는데 남편이 바람피운대서 바람 피웠냐고 몰아세우면 안된다."


강부자 젊었을 때 사진


강부자 여고생 사진


오늘날의 세태와는 맞지 않은 말이네요. 어쨌든 강부자 본인의 입장에서는 당시에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사는 것에 행복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사고방식은 강부자 세대때는 흔했습니다. 이혼하는 과정이 본인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큰 괴로움이 되었고, 재혼 역시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람피운 남편에 대해서 토로하면, "자식 생각해서라도 그냥 참고 살아."라는 충고를 많이 듣게 되죠.



강부자: "난 남자가 부엌에 들어와서 얼쩡거리는 게 아주 꼴보기 싫어. 우리 남편은 지금껏 물 한잔도 자기 손으로 떠먹어 본 적이 없어. 지금은 아이들이 다 결혼해서 우리 둘만 있잖아. 그래서 가끔 녹화 끝나고 나면 피곤하니까 그냥 밖에서 사 먹고 들어가자고 할 때 남편이 ‘아니 나는 집에서 먹는 게 좋아’ 그러면 아무 소리 않고 집으로 가. 근데 자기는 앉아서 신문 보고 있지만 난 들어가자마자 부엌에서 밥해. 그래도 설거지까지 다 내가 하지, 안 시켜."


그러면서 노년의 부부애를 과시합니다.


강부자: "남편이 화백(화려한 백수) 노릇을 했지만, 너무 건강하게 자기 건강을 체크해 전혀 내 속을 안썩인다."


강부자: "아직도 남편은 나를 아기같다고 한다. 남편과 함께, 한날 죽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죽음을 준비할 나이잖아? 우리가 따로, 아빠 엄마가 따로 죽으면 남겨진 애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그러니 같이 죽으면 좋을 것 같다. 난 남편 없으면 꼼짝을 못한다. 남편 없이는 이날 이때껏 아무 것도 못했어. 퓨즈가 나가도 이묵원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지. 부엌에서 하는 일은 잘 해도 바깥일은 그렇지가 않잖아. 생의 마지막을 남편과 함께 보내고 싶은 게 내 꿈이다."


강부자 남편 사진


뭐, 남편에 대한 강부자의 생각은 오늘날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것으로 강부자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구세대의 사랑 방식중의 하나일 뿐이니까요.



그외에 강부자는 대단한 루머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자 연예인들과 재벌 총수를 연결시키는 '마담뚜'였다는 소문이었죠. 여기에는 정주영 회장이 자주 나오는데, 원래 그전부터 둘의 친분이 막역했고, 게다가 강부자가 국민당의 국회의원까지 되었기 때문에 그 소문이 더 증폭되었죠.


여기에 대해 강부자는 이렇게 해명합니다.

강부자: "예전부터 내가 여자 후배들을 재벌 총수에게 소개시켜주고 돈을 챙긴다는 소문이 돌더라. 이런 악성루머가 도는 것은 아마 내 생김새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강부자: "겉으로는 웃었지만 뒤에서 많이 울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어떻게 했기에 그런 소문이 돌까 생각하며 얼굴도 못 들고 다니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과연 강부자의 말이 사실일까요?

대부분의 대중들은 강부자의 말이 거짓말이고, 막연하게나마 루머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강부자: "나와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연기자가 나를 매장시키려고 루머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랬다는 증언이 나와야 할 텐데, 한 사람도 없지 않느냐."



보통의 사건인 경우는 강부자의 말처럼 증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상납의 경우는 양쪽 모두 끝까지 비밀을 지키죠.



사실 연예계의 루머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번째, 진실이 루머로 퍼진 경우입니다. 오늘날 휴대폰에 카메라와 동영상 기능이 첨가되고 sns가 발달하면서 루머가 사실로 판명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두번째, 강부자의 말처럼, 라이벌의 이미지를 더럽히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사고를 쳤을 경우에 다른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우기 위하여 일부러 악성 루머를 만드는 경우입니다. 경쟁이 심한 연예계에 특히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세번째, 연예계 기자들이 접대(?)를 시원찮게 받을 경우, 앙심을 품고 보복성 루머 기사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때는 진실을 가지고 기사를 쓸 수도 있고, 기자 마음대로 소설을 쓸 수도 있죠.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예전에 기자들의 수준은 정말 한심할 정도였죠.)



어쨌든 강부자의 루머에 대하여 강부자의 해명을 더 들어보죠.

강부자: "나는 강남에 땅 한 평도 없고, 증권, 펀드, 주식 그런 걸 해본 적도 없고, 은행에서 돈 찾는 법을 몰라 남편이 찾아다준 돈을 쓰고 있다. 28년 전에 1억500만 원을 주고 (강남에)빌라를 구입한 이후 땅값이 올랐을 뿐 부동산 투기는 한 적도 없고, 그후로 한번도 이사간 적도, 부풀린 적도 없다. (내가)증권가의 큰손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것도 루머다."


강부자: "돈 요만큼 벌어서 그거 불리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파트를 샀다 팔았다 하면서 돈 버는 거 난 너무 싫어. 내가 복부인도 아니고 누가 뭐래도 난 예술가고 문화인인데 내가 왜 부동산 투기, 땅투기를 해야 돼, 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강부자는 문화 예술인에 대한 자긍심을 내보이면서, 부동산 투기나 뚜쟁이 역할은 하지 않는다고 항변합니다.


사실 여기에는 거짓말이 들어 있습니다.

먼저 강부자는 우리나라의 최초의 고급 아파트라고 불렸던 '한강맨션'아파트의 계약 1호자이자, 입주 1호자였습니다. 60년대에 아파트붐이 생겼고, 69년, 70년에 한강맨션이 분양이 되었는데, 당시 최초로 관리비 수납 제도를 도입해서 여기에는 고소득자와 고학력자들만이 입주할 수 있게 됩니다(역으로 이런 부자들만 입주하게 되자, 아파트값이 더 뛰게 됩니다.)  



그리고 강부자가 1993년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마침 우리나라는 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하는 제도가 도입됩니다.


당시 강부자가 신고한 재산은 총 12억 92백만원이었는데(배우자와 아들, 딸까지 포함), 상당수 부동산이 포함되어 있었죠.


(본인)

임야 경기도 성남시 운중동산 6-5(3306제곱미터)외 3건, 5천 49만원

점포 영등포구 여의도동 36-2 여의도백화점지하(7.8평) 6천 2백만원

예금 3천만원

회원권 6천 9백 4십만원

그외 귀금속과 자동차


배우자(이재호) 강남구 청담동 102-1 효성빌라 (건물 231제곱미터) (대지 201제곱미터) 5억 12백만원

대지 인천시 남구 만수동 888-3 (3992제곱미터) 4억 4천만원

임야 경기도 광주읍목리 산29-1 (1055제곱미터) 3백 49만원

그외 약간의 부동산과 예금, 미술품, 회원권, 자동차 등


아들 이헌주, 예금 5천 6백만원

딸 이승하 예금 4천 9백만원


좀 더 자세하게 언급하면, 강부자는 경기도 성남과 가평, 제주도 북제주군과 남제주군 등 총 4곳에 5천 9백여평의 임야를 가지고 있고, 그외에 남편의 이름으로 인천시 남구 만수동의 4억 4천만원(공시지가)짜리 대지와 경기도 광주군 광주읍의 임야 3백여평 등을 분산 소유하고 있었죠.



강부자 역시 상당수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의 변명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설령 남편이 전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했다고 하더라도, 강부자 본인이 부동산 투자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죠.



다만, 강부자가 했다는 '뚜쟁이 루머'와는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루머가 강부자 정주영 신애라 사건이었죠.

- 강부자가 정주영에게 신애라를 소개시켜주고, 신애라는 정주영으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음. 이에 신애라가 비서실장에 얼마를 쓰냐고 물어서 3억원을 씀. 하지만 나중에 입금된 돈은 1억원이었고, 신애라는 비서실장으로부터 강부자가 소개비(수수료)로 2억원을 뗐다는 걸 들음.

나중에 신애라는 정주영과의 식사 자리에서 1억원에 대한 감사 인사를 했고, 연유를 알게 된 정주영이 열 받아서 MBC로 찾아가서 강부자를 재떨이로 때리고 관계를 끊었음(정주영 신애라 백지수표 사건). 


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봉사 모습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강부자 인생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강부자 정주영 신애라 루머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루머에는 헛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강부자가 이렇게 한건에 2억원씩 벌었다면, 그녀의 재산은 이것보다 몇십배는 더 많아야 합니다.


게다가 신애라는 1989년에 데뷔하고(실질적인 데뷔는 1987년), 1995년 차인표와 결혼합니다. 만약 위의 루머가 사실이라면 1990년대 초반에 일이 벌어졌어야 하죠.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강부자는 정주영의 구애로 통일국민당에 입당했고, 후에 정주영의 전국구 의원 자리를 물려받을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당시 국회의원들의 재산 신고에 대해서 좀 더 언급하면, 제도의 초창기 시절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고, 대부분이 축소신고를 하려고 합니다(이 모습은 지금도 비슷합니다만).

그런 와중에도 강부자는 귀금속(다이어반지와 비취브로치)까지 일일이 신고하는 등의 성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정주영이라면 그 성향상 여자들과 질퍽하게 놀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죽은 이후에 연예인 출신의 모 여인이 친자 확인 소송을 낸 적도 있죠.

다만, 후일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애라의 경우는 그 가치관이 돈에 매몰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줍니다. 어쩌면 이 루머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신애라와 차인표 부부가 아닌가 하네요.


어쨌든 이 루머로 고통 당한 강부자가 이렇게 주장합니다.

강부자: "마담뚜라는 소문에 사실이 아니라 말해도 이미 믿는 사람들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근거 없는 소문들은 생사람을 죽이는 행위다."


강부자: "어쨌든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존엄하고 경건한 일인데, 고 최진실은 너무 어리석은 죽음을 선택했다. 아무리 악성 루머가 있더라도 꿋꿋하게 이겨나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위의 두 말들은 서로 별개의 말 같지만, 사실 하나입니다.

대중들에게는 근거없는 루머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고, 또 그 루머의 대상자가 되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세상을 살라는 뜻이죠.

강부자의 인간성이나 결혼 생활에 대한 가치관을 떠나서, 이 말만은 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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