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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문/사/철

아기부처(한강) - 눈물 흘리는 법을 잊어버린 여자

 

한강 씀

이 작품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눈물없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심지어 눈물 흘릴 줄도 몰랐다. 어쩌다가 내가 눈물을 보이면 두껍고 거친 손바닥이 날아오곤 했다. 나는 어머니 이상 손때가 매운 사람을 알지 못한다. 매를 맞으며 아파서 울면 더 세차게 손바닥이 날아왔다. 어깨에, 등짝에, 허리에.
눈물로 세상을 버티려고 하지 마라.
(87p)


자식이 눈물로 세상을 버티지 않게 하기 위한 어머니의 교육이었겠지만, 결과론적으로 딸은 상처를 받았다. 어쩌면 눈물을 흘리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오롯이 감싸주지 못하는 냉정한 여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표면적으로 보면 간단하다. 전신에 화상자국이 있는 남자를 마음씨 따뜻한 여자가 감싸 안고 결혼을 했다가 성격차이로 헤어지는 내용이다. 더구나 세상이 모르는 비밀인 화상자국을 가진 남자는 9시 뉴스의 인기 있는 미남 앵커이고, 여자는 평범한 일러스트 디자이너이기에 주위에서는 너무나 기울어지는 이 결혼생활에 대하여 호기심이 왕성하다.
물론 여자는 세상이 모르는 남자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희생하면서 살고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여자와 남자 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강한 성품의 어머니들이었다. 남자의 어머니는 누구나 싫어할 아들의 화상자국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수 어루만지며 씻겼고, 여자의 어머니는 다감했던 여자를 일부러 엄하게 키웠다.

결국 여자는 무감하게 자랐고 결혼하고는 남자를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잠자리에서는 화상자국에 닿지 않기 위하여 윗옷을 벗지 않았고 끝내는 그런 잠자리마저도 피하고 말았다.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자신의 감정이 깨지고 남자에 대한 징그러움만 감돌뿐이다.
그에 반하여 어릴 적부터 화상이라는 컴플렉스 때문에 완벽주의자이자 애정결핍증으로 자란 남자는 여자의 행동에 크게 상처를 받고 새로운 여자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 새로운 여자 역시 남자의 화상자국을 보고는 그를 버린다.


여기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남자의 치명적인 화상자국 - 보기에는 무척 징그러우나 사실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는 이미 아문 흉터 - 을 현대인의 소외와 상실감으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여자의 무감을 현대인이 본능적으로 가지게 된 무정과 경계심으로 해석한다면.
사실 누구나 요즘 자기 자식들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보다는 경계심부터 먼저 키운다.
(물론 이 교육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흉악한 세상이고 조금의 틈만으로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범죄자들이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마저 비정한 교육으로 다시 악순환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어쨌든 누구보다도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던 남자는 연달은 배반의 삭풍속에 던져지고,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여자는 크게 앓게 된다.
그리고 여자는 꿈에서 다시 아기부처를 본다.
이미 눈초리가 날카롭고 입 꼬리가 음흉하기까지 했던 그 아기부처였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보일까?
과연 다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여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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