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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심양홍 아내 부인에게 월수 3백만원 자랑을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탤런트 김혜정 전남편 황청원 이혼사유

 심양홍 아내 부인에게 월수 3백만원 자랑을


탤런트 심양홍의 아내에게 월수 3~4백만원을 준다고 자랑한 사건 (심양홍 부인 이야기), 그리고 심양홍의 과거 삭발 사건 등을 짚어봅니다.


영화배우 탤런트 심양홍은 1944년 1월 14일 강원도 정선군에서 태어납니다. (심양홍 고향 강원 정선)

올해 74살이죠. (탤런트 심양홍 나이)


(심양홍 학력 학교) 서울고등학교 졸업

해군사관학교 중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심양홍 프로필 경력) 1965년 연극배우로 데뷔

1972년 MBC 공채 5기 성우로 데뷔

1981년 MBC 탤런트로 첫 출연


이후 심양홍은 드라마 전원일기, 제1공화국, 야망의 25시, 한지붕 세가족, 제5열, 제2 공화국, 사랑이 뭐길래, 제3공화국, 엄마의 바다, 며느리 삼국지,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식객, 인수대비 등과 영화 맨발에서 벤츠까지, 가문의 영광 등에 출연합니다.


중견배우들은 대개 연기력이 굉장히 좋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연기력이 좋지 않으면 경쟁이 치열한 그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중견배우들중에서도 연기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비난받는 사람이 바로 심양홍입니다.

발성도 그다지 좋지 않으면서, 연기가 굉장히 전형적이고 일정하다는 비판이죠. (심양홍을 발연기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좀 심한 평가이긴 함)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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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양홍의 이미지가 무척 좋고, 또한 중후한 편이기 때문에, 심양홍의 연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팬들 역시 무척 많습니다.


이런 극과 극의 평가속에서, 심양홍의 어린 시절과 인생, 결혼 생활은 어땠는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네요.


우선, 심양홍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이지만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성장합니다. (서울고등학교 졸업)

그리고 어릴 때부터 꿈도 무척 많았네요.


심양홍: "학교 다닐 때는 책을 참 많이 읽었어요. 고등학교 때 읽은 ‘이상전집’이 오래 감동으로 남아 있죠."


심양홍: "또한 당시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시인 브레이크, 헤세, 스타인벡, 헤밍웨이 등의 작품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한때 니체에게 빠지기도 했어요."


심양홍: "가장 오랫동안 읽었던 작품은 <아웃사이더>인데, 1962년 (당시 심양홍 나이가 19살이었음)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 또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어요."


심양홍: "당시에는 그 내용을 이해할 만큼 내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 뒤 1984년에 하와이에 가면서 그 책을 가지고 가서 또 읽었어요."


심양홍: "이제는 이 책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제가 세상을 살았다는 증거일까요? (웃음)"



참고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는 '과연 인간의 존재 의의와 진실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책으로, 역사상 위대한 작가와 사상가들인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니체, 헤세, 사르트르, 고흐, 로렌스, 니진스키 등이 총동원되어서 비교, 분석을 하는 책입니다.


그런 책을 심양홍이 굉장히 어린 나이때부터 읽었고, 몇십년을 두고서 조금씩 의미를 이해해가게 되었네요.


(참고로 콜린 윌슨은 천재 작가중의 한명으로, 제대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혼자 독서 활동에 열중했고, 불과 25살이었던 1956년 '아웃사이더'를 출간하면서, 전세계를 뒤흔들었죠.)


심양홍이 어릴 때부터 콜린 윌슨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네요.


심양홍: "또한, 고등학교 다닐 때는 웅변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소설가가 되는 꿈도 가지고 있었고요. 당시 우리 학교(서울고등학교) 출신 선배들이 예술계 쪽에 많이 있었거든요."


심양홍: "우리 학교 출신으로 연극인 오현경, 이순재, 성우 구민, 시인 황동규, 마종기, 소설가 최인호, 영화감독 이장호, 배창호 씨 등이 있는데, 평소 교분은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그런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의외로 심양홍은 해군사관학교로 진학하게 됩니다.


심양홍: "당시에는 졸업한 선배들이 고등학교로 직접 와서 자기 학교로 오라는 유치활동을 했었요. 전 그때 해군 장교 복장을 한 선배들의 모습에 반했어요."


심양홍: "게다가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바다는 영원한 문학의 보고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사를 가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직접 해사를 다니다보니, 심양홍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해사를 자퇴하고 맙니다.

그리고 약 2년동안 심양홍은 이러저리 방황하게 됩니다.



심양홍: "청계천 건너편 학림다방과 생과부집(선술집)을 드나들며 막걸리 잔에 세상을 담아 마시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어요."


심양홍: "혼자 우미관 (극장)에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영화에 흥미를 느낀 심양홍은 한국배우전문학원에 등록하여 연기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는 서울대 국문학과를 지원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여기서 희곡과 시나리오 쓰는 법을 알려주는 줄 알고 잘못 지원했던 것이죠.


아무튼 서울대에 입학한 뒤,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심양홍은 학문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심양홍: "당시 학술적 수업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희곡이나 시나리오 작성이 아니어서 그랬던 거죠.) 당시 어떤 교수님은 저에게 "자네는 학문에 뜻이 없네"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고요."


그런데 이때부터 심양홍은 학문 공부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총연극회, 서울 문리대 연극회 등의 연극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본인의 관심이 '학술 활동'이 아니라 '연기'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심양홍: "당시 (학과 과정의) 교직 이수도 일부러 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거죠. 졸업한 뒤에 연극을 포기하고 (학교 선생님이 될까봐) 두려웠던 거에요."


심양홍: "그런 아들을 부모님이 좋아할 수 있겠어요? 사실 다른 건 전혀 후회가 안 되는데, (부모님께) 불효한 것은 마음이 아프죠..."


사실 서울대 출신이라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었을텐데, 심양홍 스스로가 그런 조건들을 마다했네요.

스스로 교직 이수를 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결심은 단호했습니다.


그리고 심양홍은 군대 사병 복무와 서울대 졸업 후 국립극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심양홍: "국립극단 봉급은 굉장히 빠듯했어요. 나중에 (TV에 출연한 뒤)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하고서야, 부모님께서 마음을 푸셨죠."


국립극단 당시에 심양홍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약 1975년 경으로, 심양홍이 막내에서 좀 벗어났을 때였을 겁니다.

아직까지 심양홍은 제대로 된 배역으로 연극무대에 올라가지 못했고, 연기력을 갈고 닦으면서 호시탐탐 배역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당시 국립극단에서 '징비록'을 준비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동자승'이라는 배역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심양홍을 생각하면 전혀 맞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심양홍 나이가 30살 전후로, 젊은 시절이었음)


아무튼 이 '동자승'이라는 배역은, 마지막에 짧게 한 장면만 등장하고, 또한 '삭발'을 해야 하는 역할이었지만, 심양홍은 배역을 위하여 기꺼이 '삭발'을 감행합니다.


심양홍: "내가 드디어 그 배역을 맡았다는 기쁨에, 선후배들과 함께 선술집에 가서 술을 대접했다. (처음 연극무대 등장에) 너무 기뻤던 것이다."


결국 그렇게 심양홍은 기쁜 마음으로 삭발을 하지만,

다음날 연출가가 마지막 장면을 취소하고 맙니다.

"(심양홍) 자네가 머리는 아주 멋지게 잘 깎고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간상의 문제도 있고... 또 무대 전환상의 무제도 있고 해서...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은 삭제를 하는 것이 낫겠어."


결국 그날 밤 심양홍은 족발집에서 혼자 소주를 엄청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말았죠.


심양홍: "(너무 실망한 나머지) 장충동 빵집 태극당 옆 담에 기대서 소주를 여러 병 마셨다."


당시 배역과 연기에 대한 심양홍의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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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10년 이상 연극을 하던 심양홍은 1981년 '제1공화국'에 유진산 역할로 브라운관 데뷔를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유진산의 이미지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심양홍은 각종 드라마의 유진산을 모두 맡는 진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1981년 제 1공화국, 1989년의 제 2공화국, 1993년의 제 3공화국, 그리고 1998년의 드라마 삼김시대까지...)


심양홍: "당시 정치인 유진산 역을 맡았는데, 정말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직도 당시 유진산 역을 기억해주는 팬들이 많아요."


사실 이건 연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가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심양홍: "그 이후 (유진산 역할 이후) 정치인이나 기업가 역을 많이 맡았어요. 3대 재벌 총수는 드라마에서 다 해봤죠."


이후 심양홍은 각종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게 됩니다.


심양홍: "국립극단 봉급이 빠듯했기에, 생계유지를 위해서 TV드라마에 부지런히 출연했죠."


심양홍: "무명시절 많이 어려웠지만, 요즘에는 월수 3~4백만원을 부인에게 줄 수 있어요. (웃음)" (심양홍 부인에게 주는 월급 자랑?) (1990년 심양홍 인터뷰에서) (탤런트 심양홍 전처 전부인이라는 루머가 터무니 없는 이유)


심양홍  김혜정 이혼 재혼 루머와 진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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