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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떠올린 다음 단계는 '치약'이었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미제 '콜게이트'가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때 구인회는 치약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고,

장남 구자경이 튜브 제조 기술을 겨우 알아내는 것은 성공했지만, 제일 중요한 '치약 만드는 기술'은 확보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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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구인회는 동생 구평회를 직접 미국으로 보내서 콜게이트사의 치약 제조 기술을 알아오게 시킵니다.

(오늘날로 치면 산업스파이나 다름이 없는) 구평회는 미국 콜게이트사의 주변 회사를 통하여 마침내 치약 제조 기술을 파악하고 국내로 귀국하게 되었죠.

(사실 치약 제조 기술이란 것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미국 회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보통의 기술들은 많이 알려진 상황이었음)




그리고 구인회를 비롯한 락희화학에서는 여러차례의 시도끝에 콜게이트와 비슷한 품질의 치약을 생산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구인회는 곧바로 대량생산을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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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미제를 베낀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런 치약 말고, 우리 입맛에 맞는 치약! 김치 먹는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치약을 만들어야지요."


아마 구인회는 평소에 콜게이트 치약을 사용하면서 느낀 점을 자신의 경영 철학에 반영한 것 같습니다.

이 덕분에 락희화학의 개발진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스피아민트(박하향의 종류)'가 깃든 약간 쓴 맛의 새로운 치약이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하나도 팔리지 않았죠.


당시만해도 '국산보다는 미제나 일제가 훨씬 좋다'라는 선입견(대부분이 사실이기도 하고)이 널리 퍼져 있었고, 사람들이 국산 치약을 아예 취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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