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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야기/김우중

샐러리맨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김우중

그런데 원래 한성실업은 국내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고, 해외 무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개 사원이었던 김우중이 주도하여 해외 무역 시장을 개척했고, 결국 김우중은 3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성실업에서 이사로까지 승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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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기 사업을 하고 싶었던 김우중은 결국 1967년 퇴사를 한 다음에, 대우실업을 설립하게 되었죠.


이후 불과 7년만인 1974년 1억불의 수출탑을 달성하는 등, 무역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종합상사중에서 대우인터내셔널 (후에 포스코대우로 개명)이 한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켰던 것은, 이런 김우중의 DNA가 대우인터내셔널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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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김우중은 다른 재벌 1세대 총수들과 달리 엘리트 가문의 아들이었고, 영어도 잘하는 편이었음. 무역과 해외 세일즈를 직접 하면서 쌓은 경험과 지식은 다른 재벌총수들에게는 없는 것이었음)


그런데 혹자는 김우중이 이렇게 급격하게 성장한 것은, 바로 박정희로부터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김우중의 아버지 우당이 대구 사범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의 학생이 바로 박정희였고, 이런 인연 덕분에 박정희가 김우중을 편애했다는 주장이죠.


우선, 박정희와 김우중의 인연이 시작된 시점부터 짚을 필요가 있네요.

혹자는 1970년대에 김우중이 기업가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박정희와 만나게 되었다, 처음부터 특혜는 없었다, 라고 주장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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