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인 이야기/정주영

정주영 아버지와 집안 사정

반면에 정주영 회장은 그의 고백처럼 '막노동자' 출신이었죠.


정주영은 농사꾼의 맏아들로 태어나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고된 농사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 가난이 싫어서 가출을 감행했는데, 무려 4번의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정주영의 아버지가 집나간 아들을 잡아서 집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스폰서 링크)
. .

정주영: "가난이 싫어요. 전 외지에서 돈을 벌거에요."


정주영 아버지: "넌 우리 집안의 장남이다. 농사꾼이 농사를 지어야지, 외지에서 무엇을 한단 말이냐?"



사실 정주영 아버지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7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농사일을 해서 여섯명의 동생들을 분가시킨, 나름의 '성공 철학'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정주영 역시 자신을 도와서 농사일을 하면서 동생들을 성공적으로 분가시키기를 바랬던 겁니다. 


농경 시대에 맏아들들은 대부분 집안의 중요한 노동력으로, 일찍부터 농사일을 시작했고, 이것과 더불어 유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장남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강조되었죠.


그런데 정주영에게는 첫사랑이 있었습니다.


. .


당시 2살 연상의 통천 이장집 딸을 사랑했던 17살의 정주영은, 이광수의 소설 '흙'에 큰 영향을 받아서 '공부해서 변호사'가 될 꿈을 갖게 됩니다.


자신이 변호사가 되면, 통천 최고 부잣집의 딸도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결국 정주영은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서 서울로 갔지만 기껏 경성실천부기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다시 아버지에게 잡혀서 고향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실제로 일제시대에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현재의 사법고시)에 2번이나 응시를 했지만, 2번 모두 떨어지기도 했죠.


확실히 십대의 젊은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사랑'이 아닌가 하네요.


(스폰서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