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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야기/김영삼

김영삼 실책 외환위기의 원인은 3가지

# 목차

* 외환위기의 원인 3가지

* 초호황 당시의 체질

* 우리 경제의 결정타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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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위기의 원인 3가지


그렇다면, 이제 김영삼의 실책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이 IMF를 불러왔다, 김영삼때 외환위기가 터졌다, 라고 피상적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외환위기는 그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영삼 재임중에 왜 외환위기가 터졌던 걸까요?

그 원인을 제대로 알면, 이것이 과연 김영삼의 잘못인지, 아니면 다른 '구조적인 문제'때문에 일어난 사건인지를 제대로 알 수가 있죠.


우선 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의 부채 비율은 엄청났습니다. 제조업의 부채/자본비율은 396.3%로 다른 나라에 비해서 훨씬 높았죠.

(참고로 4대 재벌의 평균부채비율 295%이었고, 그 아래 11위-30위 재벌들의 평균부채비율은 503.85%이었고,

심지어 1000%가 넘는 기업도 존재했음.)

김영삼 사진

* 초호황 당시의 체질


당시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들은 무작정 돈을 빌려서 투자를 강행했습니다.

80년대의 초고도 성장기와 3저 호황으로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돈을 빌려서 공장을 짓고 물건을 생산만 하면' 그냥 팔리는 시절이었죠.


이게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 역시 호황이었기에, 대우의 김우중 등은 '세계 경영'을 외치면서, 세계 각지와 동유럽 등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되었던 것이죠.


아무튼 기업들의 이런 적극적인 투자 덕분에, 국내 가계의 상황도 무척 좋았습니다.

실업률은 극히 낮았고, 가계의 소비 여력 역시 왕성한 시기였고, 이런 부분이 다시 기업들의 물건을 소비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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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경제의 결정타


아무튼 기업과 정부는 이런 타성에 젖어 있었기에,

3저 호황이후 97년까지 약 10년동안 작은 호황기와 불황기가 번갈아 찾아왔지만, '부채 비율'을 낮추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고, 이것이 외환위기때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죠.


게다가 김영삼 정권의 실책 역시 이런 위기를 막지 못했습니다.

먼저, 김영삼은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외환시장을 개방합니다. OECD 가입을 위하여 외환 자본 거래 시장을 전면적으로 자유화했고, 이 부분은 나중에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 경제에 결정타를 먹이게 됩니다.


김영삼은 '외환 시장의 전면 개방'이 얼마나 위험한 선택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네요.


게다가 김영삼은 외교적인 실책까지 저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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