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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김세황 게이 루머가 한때 돌기도 했는데, 동료 가수까지 이에 대하여 언급할 정도로, 가요계에서는 좀 유명한 일이었죠.


또한 김세황의 어린 시절 성장 환경과 더불어, 김세황이 결혼한 다음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가 궁금하네요.


(김세황 신해철)

신해철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신해철 윤원희 부부 엘리트다운 자녀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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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김세황 아버지 직업

* 김세황의 어린 시절

* 김세황 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

* 가요계에 있었던 김세황 게이 루머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겸 기타리스트 김세황(본명)은 1971년 11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김세황 고향 서울). 올해 45살이죠(김세황 나이).

(김세황 국적) 한국

(김세황 종교) 천주교

(김세황 키 몸무게 혈액형) 175cm, 60kg O형

(김세황 학력 학벌) 미국 워싱턴 처칠 초등학교 졸업, 미국 쿠퍼 중학교(전학), 멜릴랜드 대학교 졸업, 뮤지션스 인스티튜트 음악학 명예박사

(김세황 프로필 및 경력) 1993년 다운타운 1집 앨범 [다운타운]으로 데뷔


1994년 넥스트에 합류하여 넥스트의 정식 멤버로 활동(1997년 해체되었다가 2006년부터 재결성됨)

1999년부터 노바소닉으로 2003년까지 활동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Cell로 활동



* 김세황 아버지 직업


김세황 아버지는 직업 외교관이었고, 김세황 어머니가 클래식 기타 연주자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김세황: "제가 네살 때 아버지가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시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16살때까지 미국에서 살았죠. 미국 워싱턴에 처칠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가 있어요. 워싱턴에 주재하는 각국의 외교관들과 고위 관료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인데, 제가 거기 다녔어요."


김세황 사진


김세황: "어머니가 과거에 클래식기타 연주자였는데, 네살된 저에게 작은 기타를 쥐어주셨어요. 원래 아버지는 제가 기타 치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하셔서, 어머니가 몰래 저에게 기타 코드를 가르쳐 주셨죠."


김세황: "초등학교 5학년 때 TV에서, 우드스톡 공연 다큐멘터리(1969년도 작품)를 보고 나도 나중에 저런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김세황: "또한 백인 친구들이 흑인을 무시하면서도 흑인 기타리스트인 지미 헨드릭스는 존경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이중성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황인종인 내가 기타를 치면, (백인들도) 함부로 깔보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기타를 더 열심히 배웠죠."


그러다가 김세황은 중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귀국하게 되면서, 따라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 김세황의 어린 시절


김세황: "중3 때 귀국해서 한국의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당시 나는 적잖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미국의 자유스러운 학교 분위기와는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김세황: "영어가 더 편했다. 한국어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김세황: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싸움으로 제적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교로 옮겼는데, 몇달 안 되어서 그곳에서도 싸움질로 제작당하고 말았다. 학교 2군데서 제적을 당하고 나니까 나를 받아주려는 학교가 없더라."



지금은 김세황이 게이 루머가 돌 정도로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태도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에는 싸움닭이었던 것같네요.


김세황: "(문제아였던 나를) 딱 한 학교가 받아주었다. 그런데 거기는 선생님들이 너무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말썽을 피우면 엄청난 체벌을 했기 때문에, 아에 입도 떼지 않았다."


김세황: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기타를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원래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기타를 배우기는 했지만, 정말 기타가 재미있어서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때부터였다."


김세황: "기타 연주를 위한 기교와 속도는 이미 고2 때쯤 다 완성이 된 것 같다. 당시에 정말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종일 기타만 쳤으니까. 성인이 된 이후로 기타 실력이 늘었다면, 그건 상황에 맞게 하는 연주나 세련미, 연륜 등이 더해진 정도일 것이다."



* 김세황 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


김세황: "고등학교 2학년때 서울로 전학을 갔다. 대구는 도저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서울에서 처음 (아마추어) 밴드를 시작했는데, 서울의 삐삐롱스타킹에서 노래 부르는 고구마와, 유희열(토이), 그리고 이한별 등과 함께 파고다 아마추어 밴드를 시작했다."



이후 김세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밴드(다운타운)을 시작하게 됩니다.


김세황: "처음에 1991년 8월에 시작을 했는데, 데뷔 앨범은 1993년 11월달에 나왔다. 그동안 계속 공연하고 데모 테잎 만들어서 뿌리고, 또 퇴짜맞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김세황: "다운타운으로 활동을 하다가 해연이 형(정해연)이 탈퇴를 했다. (다운타운의 해체 이유가) 해연이 형의 탈퇴가 일단 첫 번째고, 그리고 멤버들도 많이 지쳤던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서 (멤버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은 이대로 못 가겠다'라는 결론이 난 상태였다."


그러다가 김세연은 신해철의 넥스트에 합류하게 됩니다.


김세황: "94년 5월에 정기송씨가 넥스트를 탈퇴했고, 당시에 넥스트에서 기타리스트가 없으니까 신해철씨가 세션맨을 여기저기서 고용을 했다. 그래서 내가 (당시에는 다운타운이었기 때문에) 임창수씨를 소개해 주었다. 창수형은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형이었고, 또한 그 형으로부터 많이 배웠다."


김세황: "하지만 창수형(임창수)도 제작을 위해서 넥스트를 탈퇴했고, 결국 내가 (다운타운이 해체된 다음에) 들어가게 되었다."



* 가요계에 있었던 김세황 게이 루머


이후 김세황은 오랫동안 넥스트에서 활동하면서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참고로 김세황이 넥스트가 해체되고 김진표와 함께 노바소닉을 결성할 때의 일화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김진표(동료 가수): "어느날 세황이형(김세황)이 날 꼬셨다. 여자친구 소개시켜줄께라면서... (중략) 세황이 형을 따라 나간 장소는 신사동의 큰손횟집이라는 곳이었다."


김진표: "얼마후 (소개시켜준다는) 킹카라는 여자들은 온데간데없고, 수용형(드러머 이수용)과 영석형(베이스 김영석)이 나오더라. 그 당시 진짜 황당했다. 세황이형이 게이라고까지 생각했으니까..."(김세황 게이 의혹)


김진표: "그 다음부터는 다 상상할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노바소닉은 탄생하게 된 거다."




이런 노바소닉의 탄생 비화에는 김진표의 농담이 섞여 있습니다.

대체로 남녀관계든 게이들이건 소개팅을 하는데, 횟집은 첫 만남 장소로 거의 선택하지 않죠.



사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김세황의 목소리나 몸짓이 많이 여성스럽기에 게이라는 의혹을 종종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세황이 결혼을 하고, 또 아이들을 낳으면서 이런 의혹들은 사라지게 되죠.


김세황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김세황 이혼, 김세황 부인 정애화와 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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