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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이홍렬이 사망했다는 루머가 한때 돌기도 합니다. 그가 최근에는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이홍렬 근황, 이홍렬 아내(부인)박인규와의 러브스토리와 더불어, 이홍렬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궁금하네요.


이홍렬과 친한 개그맨 김보화 포스팅 (새창보기)

김보화 남편 박병학- 아옹다옹 재밌게 사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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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이홍렬 어머니 이야기

* 이홍렬 아버지 이야기

* 이홍렬 부인 박인규와의 첫만남

* 이홍렬 결혼

* 이홍렬 이혼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코미디언 이홍렬은 1954년 5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이홍렬 고향). 올해 62살이죠(이홍렬 나이).

(이홍렬 종교) 기독교(개신교)

(이홍렬 키 몸무게 혈액형) 163cm, 65kg, A형

(이홍렬 학력 학벌) 서울 삼광초등학교, 한양중학교, 서울공업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참고로 중앙대는 개그맨으로 활동하다가 1987년에 늦은 나이로 입학해서 공부를 했고, 또한 1991년 일본에서 2년간 어학연수를, 1998년에는 미국에서 1년 반동안 어학연수를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합니다.)


한때 토크쇼의 대명사였던 '이홍렬 쇼'를 진행하는 등, 100여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이홍렬 참참참 등).


이홍렬 아내 사진


* 이홍렬 어머니 이야기


1950년대가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이홍렬 역시 무척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이홍렬: "아버지 직업은 산소용접공이셨는데, 일을 거의 안 하셔서 우리 집 형편이 무척 어려웠어요. 결국 어머니가 어깨너머로 배우신 삯바느질로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죠."


이홍렬: "하루는 독에 있는 쌀이 다 떨어져, 어머니가 몇 개 안 되는 폐물을 아버지에게 팔아오라고 시키셨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폐물들을 하나도 팔지 못하고 그대로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셨죠. 그때 어머니가 너무 속상해하시며 ‘엉엉’ 우셨던 모습이 현재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이홍렬: "하루는 아버지의 무책임한 행동에 어머니가 너무나 화가 나서, 우리 삼남매를 데리고 집을 가출하신 적도 있었어요."


이홍렬 사진


이런 집안 형편임에도 이홍렬은 중학교 2학년때부터 개그맨이 되길 희망합니다.

어릴 때부터 수다를 무척 좋아하는 자신의 소질을 일찍부터 파악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고를 졸업한 이홍렬은 공장을 여러군데 다니면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죠.


이홍렬: "군대에서 제대한 뒤에야 어머니께서 자궁암 판정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제가 군대 제대 후 드디어 조그마한 노래모임에서 개그를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비록 방송에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정말 많이 좋아하셨죠."


결국 이홍렬의 어머니는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이홍렬 어머니 사망 이유).


이홍렬 과거사진(이홍렬 젊은시절)


이홍렬: "하늘이 무너진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어머니는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자식들 효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쉰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홍렬: "그때서야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누구나 맞아야 할 죽음이라면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잠시라도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홍렬: "저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요. ‘오늘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라고 생각하고 효도하면, 나중에 후회가 조금 줄어들 수 있어요."


후에 이홍렬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무척 부지런한 인생을 살게 되는데, 아마 그의 가치관에 어머니가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 이홍렬 아버지 이야기


또한 1년 뒤에 이홍렬은 아버지도 잃고 맙니다.


이홍렬: "1년뒤에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돌악셨어요. 어머니를 평생 고생하게 만든 분이라는 생각에 원망도 많이 했지만, 막상 돌아가시니 아버지와 장기도 몇 번 둬 드리지 못한 게 또 한이 되더군요."


이홍렬: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석에 누우셨을 때, 뒤늦게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열심히 어머니를 간호도 하시고, 또 일도 많이 다니셨거든요.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께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이홍렬은 1979년 TBC 라디오 '가요대행진'으로 본격적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일찍 빛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9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홍렬: "1979년에 데뷔를 해서 다른 개그맨 동료들보다 늦게 떴어요. 사실 일찍 출세하는 것보다 뒤늦게 크게 박수를 받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소년급제가 비극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홍렬은 평생동안 노력과 부지런함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개그맨일을 하다가 1987년에 만학도의 나이로 중앙대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죠.


(개그맨 이홍열)


* 이홍렬 부인 박인규와의 첫만남


그리고 이때 박인규(이홍렬 아내 이름)를 만나게 되는데, 사실 첫인연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홍렬 부인 박인규 직업

(학력 및 프로필)

서울여상 졸업

결혼 전에는 ㅈ일보 여직원으로 근무함


이홍렬 부인 박인규 나이

이홍렬보다 8살 연하 (이홍렬 박인규 부부 나이차이)



박인규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3학년의 나이로 방송국에서 실습을 하다가 이홍렬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이홍렬 가족사진(이홍렬 부인 사진)


허참(이홍렬 동료 연예인): "당시는 방송이 끝나면 출연료를 노란봉투에 넣어 현찰로 줬다. 그런데 그때 경리과에서 출연료를 '아름다운 손과 아름다운 미소'로 건네주던 사람이 바로 현재 이홍렬의 부인이다."


이홍렬: "그때 바우처(voucher, 지불을 보증해 내놓은 전표)라고 방송국에서 줬다. 당시 나에게 6장이 생기면, 한꺼번에 갖다내지 않고 한 장씩, 한 장씩 아내에게 갖다주면서 만날 기회를 많이 만들었고 그렇게해서 교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박인규가 고3이었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나이였네요.


이홍렬: "하지만 그녀가 당시 고3이었기에, 나와 만날 때마다 (서로) 만나지 말자고 하더라."


이홍렬: "그래서 한 7년 정도 헤어져 있다가, 다시 아내를 만나게 돼 결혼을 약속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가 나가려고 하는데 현관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격렬하게 첫키스를 했다. 아내를 거실로 데려가서 남은 키스를 마저하고, 신사답게 그녀의 집으로 보내줬다."


이홍렬 가족사진(이홍렬 아들 사진)


* 이홍렬 결혼


이홍렬은 중앙대 1학년에 다니던 1987년 박인규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홍렬 배우자 와이프 박인규)


후에 이홍렬은 아들 이재혁, 이재준(이름)을 낳게 됩니다.

(이홍렬 자녀 자식)(이홍렬 가족 관계)


이홍렬: "큰아들은 키가 176cm이고, 작은 아들은 키가 178cm이다. 내가 숏다리라는 소리를 워낙 많이 들어서 어릴 때부터 신경을 많이 썼다."(이홍렬 아들 키)


이홍렬: "아이들 성장판이 평균적으로 14살까지 열려있다. 그때까지 우유를 많이 먹이고 농구를 무조건 많이 시켜야 한다. 사실 성장판이 열려있을 때 농구를 시키면 (키 크는데) 무지 좋다. 그래서 아이들을 강제로 농구부에 넣었다. 그외에도 성장판 사진도 찍어보고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이홍렬 아들 키 크게 하는 바법)


사실 이홍렬이 작은 키가 컴플렉스였기 때문에, 아들들 키에 신경을 많이 썼네요.


이홍렬 젊은시절 사진

이홍렬의 자녀 교육법에 주목할 점이 있는데,

그것과 별개로 이홍렬은 아내와의 결혼에 후회를 많이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참고로 개그맨 이홍렬 사망 루머가 퍼지는데, 사실 이홍렬은 2014년 6월에도 MBC의 '코미디의 길'로 복귀해서 방송활동을 합니다. 다만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 사람들에게 루머가 잘못 퍼진 거죠.)(이홍렬 근황)



* 이홍렬 이혼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이홍렬: "사실 아내와 연애 시절에, 차분하고 얌전한 줄 알았는데, 같이 살아보니 덜렁대고 산만한 성격이더라. 반면에 나는 성격이 급하고 화도 잘 낸다."


이홍렬: "신혼이 지나고서야 아내의 그런 성격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성격이 좀 바뀔까 기대도 해보고 아내에게 화도 많이 냈는데, 결국 바뀌는 건 없더라. 그냥 (상대를) 이해하고 사는 게 가장 맞는게 아닌가 한다."


이홍렬: "꼼꼼함은 내가 갖고 태어난 성격이고 여기저기 흩트려놓고 사는 것도 그 사람 성격이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그려러니, 한다."


사실 사람의 성격과 천성을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이 엄청난 사건을 겪거나,

뼈를 깎는 수준의 자기 결단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못하죠.



그래서 결국 가장 흔한 이혼 사유로 '성격차이'란 말이 나오죠.

그리고 이홍렬도 이혼할 수 있었겠지만, 이들 부부는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게 됩니다.


바로 이홍렬의 '상대를 그냥 받아들였다, (상대를) 이해하고 사는 게 가장 맞는게 아닌가 한다'라는 말이 그의 행복의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


이홍렬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새창보기)

이홍렬 아들 교육법과 이홍렬 초록어린이재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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