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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여가수 이야기

보아 후아유 kiss my lips와 보아의 과거 이야기

가수 보아는 후아유, kiss my lips 등으로 최근 컴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보아의 노래를 들으면서 보아의 과거 생활을 한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확실히 보아는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온갖 루머를 이겨낸 강한 멘탈을 보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움막집(?)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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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보아의 어린 시절

* 보아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

* 보아가 긍정적인 성격을 갖게 된 이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보아(권보아)는 1986년 11월 5일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납니다(보아 고향). 올해 30살이죠(보아 나이)

(보아 종교) 천주교 (세례명 끼아라)

(보아 키 몸무게 혈액형) 162cm, 42kg, AB형 (보아 실제키 158cm로 추정됨)

(보아 학력 학벌 학교) 경기도 양정초등학교, 서울 삼육중학교 (수석 입학 후 중퇴)

(보아 프로필 및 경력) 2000년 1집 앨범 [ID:PEACE B]로 데뷔


보아가 일본에서는 2002년 'LISTEN TO MY HEART'로 정식으로 데뷔

(사실 그 이전인 2001년 싱글 'ID:PEACE B'로 데뷔했음)


2004년 보아는 일본에서 두번째 발매한 정규음반 Valenti와 일본 베스트 음반 Best Of Soul로 큰 인기를얻게 됩니다.


또한 한국에서도 No.1 (2002), Atlantis Princess (2003), My Name (2004)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노래와 춤이 모두 되면서 한일 양국에서 거의 동시에 인기를 얻었던 최초의 여가수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미국에서 데뷔하기도 합니다.

(앨범명 BoA, 보아 데뷔)

이렇게 데뷔만 3번을 한 이례적인 기록을 갖고 있네요.


다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보아는 일본에서 하락세가 시작되었고, ㅎ나국에서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거의 잊혀진 가수가 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컴백을 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보아 컴백).


보아 사진(보아 어린시절 사진)


보아 노래모음듣기 


(보아 후아유) BoA 보아_'Who Are You'_KBS MUSIC BANK_2015.05.29 BoA 보아_'Kiss My Lips'_KBS MUSIC BANK_2015.05.22 150529 보아 BoA - My Name + No.1 @ 유희열의 스케치북 BOA(보아) - NO.1 넘버원 Compilation~~!! 보아 노래모음 듣기(27곡) BoA 보아_그런 너 (Disturbance)_Music Video



* 보아의 어린 시절


그런데 아시아의 별로 불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보아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보아가 대단한 집안 출신이었을까요?


성영자(보아 어머니): "남편이 원래 TBC(현 KBS)에서 연출 일을 하다가, 큰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방송국 PD일을 그만두고, 지인의 권고로 잘 알지 못하는 스포츠용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사업은 결국 실패하고, 4, 5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참고로 보아 가족관계는 아버지, 어머니, 오빠가 두명입니다.

(2남 1녀중 막내)


성영자(보아 어머니): "이후에 남편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목장에서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고, 그 옆에 전원주택을 지어 온 가족이 서울에서 남양주로 이사를 했다."


성영자(보아 어머니): "외딴 곳의 전원주택이었기에,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노래도 부르고, 아무 때나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급기야 노래방 기계도 설치를 하게 되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였다면 이웃집에 대한 피해때문에, 절대 이렇게 할 수가 없죠.


그런데 곧이어 보아 집안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보아 과거 사진


* 보아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


성영자(보아 어머니): "당시 서른여덟이었던 남편이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나선했고, 4년 후에 다시 재출마했다가 또 떨어졌다. 남편의 선거 실패 두번으로 우리 가족은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빚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성영자는 그때까지의 전업주부 생활에서 벗어나, 우유 판촉업을 시작합니다.


성영자(보아 어머니): "아이들이 우유 배달하는 내 모습을 볼까봐, 판촉 지역을 일부러 의정부로 선택했다. 약 70km 떨어진 곳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출근했다."


성영자(보아 어머니):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그 무렵 첫째아들은 대학교에서 전액 면제 장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셋째인 보아는 이미 SM에서 가수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상태였다."


확실히 보아가 전원주택에서 마음껏 뛰어놀면서 자랐지만, 그녀의 집안이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네요.



성영자(보아 어머니): "이후 빚이 점점 늘어났고, 결국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집 아래쪽에 붙어 있던 밭에 작은 창고를 지어 살기 시작했다. 공터에 기둥을 세우고 합판을 덧대어 방을 만들었고, 그 틈새는 신문지나 헌 옷을 이용해 바람을 막았다."


이 당시 보아는 이미 SM 연습생으로 발탁되어서 남양주에서 서울로 약 2시간 거리를 오가면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정 형편이 아마 보아의 멘탈(밑에서 추가 설명)을 크게 강화시켜 주었을 것 같습니다.



* 보아가 긍정적인 성격을 갖게 된 이유


참고로 이후에 성영자는 우유 판촉과 보험설계사 등의 일로 판매왕까지 오르게 되면서 집안 형편이 크게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보아의 경제력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죠.


보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보아: "어릴 때 오빠들에게 하도 매맞고 자라서 내가 항상 밝고 당당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두 오빠들과 어울려 동네 개구쟁이 노릇을 도맡아 했고, 또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서 로봇 조립에도 열중했었다."


보아: "그런데 어릴 때 기억을 되살려 집에 갈 때마다 어릴 때 나를 때린 두 오빠에게 ‘스타 동생’을 때렸다고 짓궂게 추궁하면, 오빠들이 나에게 살살 빈다."


보아가 오빠들로부터 매를 맞았다는 것은 과장이고,

아마 사내아이들과 어울리다보니 남자아이들처럼 거칠고 장난을 많이 치면서 자란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것이 훗날 그녀의 긍정적인 성격 형성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네요.


보아 이야기가 2편으로 계속됩니다. (2편 새창보기)

보아 키- 보아 이수만 루머가 나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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