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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아들은 결혼 적령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손석희 아들이 태어날 때 아픈 기억이 있었고, 이 부분으로 손석희 신현숙 부부가 가슴을 많이 졸였죠.


또한 손석희의 어린 시절과 더불어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라는 점이 무척 이채로운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글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새창보기)

손석희 부인 신현숙 에피소드와 과거일화


(스폰서 링크)


# 목차

* 손석희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 손석희가 버스를 타지 않았던 이유는

* 손석희와 허무주의

* 손석희 아들 이야기

* 손석희 신현숙의 걱정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손석희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


손석희 집안은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편에 가까웠죠.

원래 손석희 아버지의 직업은 직업군인이었습니다.

(참고로 손석희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3남매중에 둘째로 태어남. 손석희 가족관계)


그러다가 손석희가 6살 때 아버지가 제대를 한뒤 사업을 하는데, 결국 사업에 실패하게 됩니다(손석희 집안 집업군인의 자녀. 참고로 손석희 집안 이야기는 밑에서 추가 설명). 


손석희(이하 손): "아버지가 비록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많이 겪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버지는 저에게 "법(法)이 물 수(水)변에 갈 거(去)자다. 그러니 물이 흘러가는 대로 우리 이치에 따르는 것이 '법'이 아니냐."라고 하셨어요."


아마 이 말이 손석희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신현숙 손석희 아들 사진(손석희 가족 사진)


* 손석희가 버스를 타지 않았던 이유는


또한, 손석희에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손: "1973년,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전축을 샀어요. 그 당시 돈으로 5만 5천원 주고 샀죠. 아주 비싼 제품은 아니었고, 청계천에서 조립한 제품이었어요. 그런데 그 돈을 모으기 위하여, 중학교 내내 집에서 차비 준 것을 따로 모아 두고 걸어 다녔어요."


손: "당시 버스 정류장으로 일곱 정류장이었는데, 그 길을 걸어다닌 거죠. 그렇게 해서 3년을 모으니까 5만원이 모이더라고요. 그렇게 전축을 샀는데, 그게 참 신기했어요. 스테레오라는 것도 처음으로 접했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걸어놓고 누워서 들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가난이란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손석희가 어릴 때부터 가난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노력해서 누릴 것은 누리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네요.


참고로 손석희는 휘문고등학교때 선배들에 의하여 방송반에 들어가게 되는데, 훗날 다른 직업을 가졌다가 아나운서가 되는 계기가 되게 됩니다.


손석희 사진


* 손석희와 허무주의


이후 손석희는 197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재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또 다시 대입에 실패하고, 결국 국민대 국문과에 입학하게 되었죠(손석희 학력 학벌).



손: "내 20대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의 고난을 겪었기 때문일까, 손석희는 허무주의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1982년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유력 일간지의 총무부 사원으로 입사했다가,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하게 됩니다.


손: "그 당시에 친구들이 권했다. "넌 방송반도 했고 그 쪽에 잘 어울리니 (시험) 한번 봐 보라."라고. 결국 (나에 의한) 주체적이지 못한 선택이었다."


손: "사실 1980년대 중반의 상황에서 방송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문제의식 따위는 전혀 없었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



손석희에게 아나운서 일은 정말 잘 맞았지만, 이런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1980년대란 시대적인 상황(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방송국)에 대한 원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손석희의 고민과 방황과 달리 손석희는 불과 3년만에 MBC의 간판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손석희의 매끄러운 진행 뿐만 아니라 그의 깔끔한 이미지(외모)도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죠.



* 손석희 아들 이야기


이후 손석희는 신현숙과 결혼해서 아들 2명을 낳게 됩니다.

(손석희 배우자 와이프 신현숙)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위의 글을 참조)


그런데 손석희 부인 신현숙이 둘째 아들을 낳을 때, 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손석희 첫째아들 이름은 손구용 1988년 7월 14일생. 올해 나이는 28살)

(손석희 아들 결혼 적령기)

(손석희 둘째아들 이름은 손구민, 1992년 10월 29일생. 올해 나이는 24살)


바로 손석희 둘째아들이 1992년 10월생입니다.

당시 손석희가 파업을 하다가 정권에 찍혀서 옥살이를 하기 전후였죠.



그때의 손석희의 심경고백이 흥미롭네요.


손: "이번 파업으로 MBC 파업 애초의 목표인 '노조사수'에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물론 주요쟁점이었던 '3국장 추천제' 확보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 대신에 공정방송의 실질적 장치인 '공정방송협의회'의 활성화에 노사가 합의한 성과를 이룩했습니다."


손: "저에게 왜 노조를 하는가라고 묻지 마십이오.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할 수 있는 명분이 없으니까요. 제가 운동가까지는 못 되더라도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 그리고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고만 해도 노조활동은 불가피 합니다."


손: "노조활동으로 인한 불이익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불이익이 뭐겠습니까. 프로그램을 못하는 것, 시청자와 만나지 못하는 것이죠. (이것 역시 크기는) 하지만 프로를 많이 한다고 대수는 아니지요. 아무리 적은 프로를 하더라도 바르고 좋은 방송을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실제로 파업과 동시에 손석희는 MBC의 대표 아나운서(한창때는 5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음)에서 물러나서 아예 화면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참고로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및 업무방해죄 등으로 불구속 기소를 당함)



* 손석희 신현숙의 걱정


이때 손석희 부인 신현숙은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만삭).


손: "닭장차를 타고 구치소에 들어갔어요. 창문의 창살 틈새로 내다보니 예전에 용인자연농원 사파리에 첫째 아들 구용이하고 놀러 갔던 기억이 나더라구요."


손: "구치소내의 방에 들어간 건 새벽 4시였습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시공간이어서 아주 막막했어요. 또한 제가 1년 반 전에 김철수 선배(KBS 전 노조위원장)를 면회했었는데, 그때 사용했던 1호실에서 이번에는 제가 역으로 면회를 당하려니 좀 묘하더군요."


손석희 아들 사진


손: "아내가 당시 만삭이었는데, 둘째아이라 사실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어요. 그런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구치소에 들락거렸으니, 마음이 좀 안됐어요. 게다가 집사람이 당시에 마음 고생을 워낙 심하게 해서,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정상인지부터 확인까지 했어요. 물론 지금은 잘 자라고 있죠."


사실 손석희도 손석희지만, 손석희 아내 신현숙의 마음고생도 무척 심했을 것 같네요.



훗날 손석희는 와이프 신현숙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합니다.


손석희: "아내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가난한 남편이 내놓은 텅 빈 통장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내 살림을 꾸렸다. 그리고 단벌신사인 내게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잔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내가 파업 등 중대한 결정을 할 때마다 언제나 아내는 말없이 나를 지지해줬다. 이런 아내가 늘 고맙다."


손석희의 인생에서 신현숙이 정말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손석희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새창보기)

손석희 경찰소환 이유와 손석희의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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