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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남경읍은 남경주의 형입니다. 사실 동생의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지만, 동생의 뮤지컬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남경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남경읍은 전수경과 더불어 뮤지컬 1세대로 불리는데, 어떤 노력을 통해서 성공을 하게 되었는지, 남경읍의 젊은 시절이 무척 흥미롭네요.


남경읍 전수경 뮤지컬 1세대로 분류되는

전수경 에릭 스완슨, 주원성 신현아의 4각관계


(스폰서 링크)


# 목차

* 남경읍의 어린 시절은

* 남경필 남경읍 남경주의 관계는?

* 남경읍 어머니 직업은 생선장수로

* 남경읍이 뮤지컬배우가 된 이유는

* 남경읍의 대단한 의지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탤런트 남경읍은 1958년 3월 12일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납니다(남경읍 고향). 올해 58살이죠(남경읍 나이).

(남경읍 학력 학벌)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남경읍 프로필 및 경력) 1978년 뮤지컬 '위대한 전진'으로 데뷔


이후 수많은 뮤지컬 및 연극 결혼 삼중창, 세발 자전거, 가스펠, 레미제라블, 마네킹, 명성황후 등과 드라마 그래도 당신, 못난이 주의보, 트로트의 연인, 미생, 파랑새의 집 등과 영화 아저씨, 런닝맨, 몬스터, 명량, 어우동 주인없는 꽃 등에 출연합니다.

(미생 남경읍 원인터네셔널 사장 역할)

(명량 남경읍 권율 장군 역할)

(파랑새의 집 남경읍 신영환 역할) 풍채가 있고 중후한 연기를 잘 해서인지, 남경읍은 주로 사장이나 장군 역할을 많이 하는 것 같네요.



참고로 1978년 서울시립가무단에 들어갔고, 1983년 계원예고에서 뮤지컬 실기지도를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교육계에서 후배를 양성하기도 합니다.

후에 송원대학 엔터테인먼트 전임교수, 경희예술종합전문학교 교수 및 남뮤지컬아카데미 원장과 예장연극영화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기도 합니다.


또한, 남경읍은 남경주의 형으로 유명합니다.

형제가 모두 주연급 뮤지컬배우인 흔치 않은 경우죠.


남경읍 사진


* 남경읍의 어린 시절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남경읍은 어렸을 때 꽤나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남경읍(이하 남): "중학교 때 마음에 안 드는 선생님을 골탕 먹이기 위하여, 그 선생님이 숙직하는 동안에 학교 유리창 삼백장을 고무총으로 깨버리기도 했어요."


남: "또 한번은 학교 사환을 몰래 꾀어서 시험지를 유출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선생님이 갑자기 성적이 오른 것을 의아하게 여기셨고, 결국 꼬리가 잡혔어요. 당시에 겁이난 나머지 어머니 곗돈을 훔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출을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죠.


남: "호랑이같은 아버지가 피해자와 합의를 본 다음에 제 앞에서 펑펑 우시는 거에요. 전 그런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죠."


이후 남경읍은 철이 들게 됩니다.

참고로 남경읍은 4남 1녀중에서 맏아들이었고, 남경읍 동생 남경주는 셋째아들이었습니다(남경읍 가족관계).


남경읍 과거 사진(남경읍 젊은시절)


* 남경필 남경읍 남경주의 관계는?


참고로 국회의원 남경필이 남경읍 남경주 형제와 이름이 많이 비슷하기에, 이들이 가족이라는 루머가 있습니다.

희귀성에다가 중간의 돌림자까지 똑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은 형제가 아닙니다.

남경필은 경기도 수원시 출생에 아버지가 남평우로 전 국회의원이었죠.

(수원시 팔달구는 원래 남경필의 아버지 지역구였는데, 아버지의 사망 후에 치뤄진 보궐선거에서 아들 남경필이 당선된 것임)


반면에 남경읍 남경주 형제는 경북 문경 출생으로, 어머니가 생선장사를 할 정도로 어렵운 환경속에서 성장했습니다(밑에서 추가 설명).



남경읍 가족 사진(어머니와 남경읍 동생 남경주)


* 남경읍 어머니 직업은 생선장수로


남경주(남경읍 동생):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셨어요. 한번은 제가 중학교때 어머니가 생선 장사를 하는 게 창피해서 어머니 옆에 잘 가지 않았어요. 나중에 고등학교때는 철이 좀 들었는지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는 어머니를 많이 부끄러워했어요."


남경주: "큰형(남경읍)은 동생들의 성적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무서운 큰형님이었어요. 막내 여동생만 빼고는 모두 형한테 맞고 자랐어요. 특히 저랑 남동생은 성적 때문에 큰형한테 정말 많이 혼났어요."


남: "아버지가 일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셨기에 제가 동생들을 관리해야 했어요."


남경주: "아버지는 2002년 12월에 돌아가셨는데, 살아 생전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시와 그림을 벗하는 풍운아처럼 사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집안 경제를 맡으셨고, 형이 우리들을 보살폈죠."


남경읍 남경주 형제 사진


참고로 남경읍이 남경주보다 6살 연상인데, 어릴 때는 6살 차이가 굉장히 큰 법이죠. 실제로 남경읍이 대학생일 때 남경주는 겨우 중학생이었으니까요.


남경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형제들은 같은 방을 쓰면서 자랐어요. 그때 음악을 틀때도 무조건 큰형이 최고잖아요. 큰형은 제가 보기에 매일 재미없는 음악만 들었던 것 같아요."


남경주: "제가 중학교 다닐 때 큰형이 다니는 대학교에 가본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연극동아리에서 형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남경주: "제가 뮤지컬 배우가 된 데는 큰형의 영향이 가장 컸어요. 형(뮤지컬배우 남경읍)은 내가 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자, 언제나 모범을 보여주는 좋은 선배죠."



* 남경읍이 뮤지컬배우가 된 이유는


남경읍이 동생 남경주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그런데 원래 남경읍의 꿈은 성악가였습니다.


남: "원래 제 꿈은 성악과 진학이었는데, 가정 형편상 레슨을 제대로 받지 못해 결국 포기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에게 자퇴를 하고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다가, 당구 큐대로 종아리를 50대나 맞았어요."


남: "결국 나중에 책 외판원과 신문팔이, 채소와 과일 리어카 행상 등 여러 장사를 하면서 겨우 학비를 마련해서 재수를 했어요."


남: "그러다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연한 뮤지컬 가스펠을 보면서 큰 문화적인 충격을 받게 되었어요. 결국 당시 우리나라에 유일했던 뮤지컬 단체 '서울시립가무단'에 입단하기로 결심했어요."



참고로 서울예대의 남경읍 동기가 유동근입니다.


남: "서울예대에 입학을 했는데, 동기 40명이 나하고는 전혀 달랐다. 나는 동기들에게 주눅이 들어 있었고, 그러다가 나처럼 주눅이 든 다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현재도 연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다. 그 친구가 바로 탤런트 유동근이다."


(유동근 새창보기) 유동근 아내 전인화- 남편의 폭행 사건



그리고 남경읍은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면서 '서울시립가무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경읍의 재수와 관련하여 남경주의 재미있는 증언이 있습니다.


남경주: "원래 큰형이 입시 첫해에 중앙대학교 교육학과에 합격했다가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했어요. 아마 대학을 가겠다고 무작정 우겼으면, 우리 집안에서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형은 그러지 않았어요."



남경주: "큰형을 떠올릴 때마다 동생으로서 마음이 짠할 때가 있어요. 이제는 동생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으니, 큰형은 좀 더 편하게 활동했으면 해요."


남경읍이 가족들에게 자기만을 주장하기 않았던 것 같네요.

아마 이런 남경읍의 행동에 큰형, 큰오빠로서 동생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 남경읍의 대단한 의지


그런데 남경읍은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했던 서울시립가무단에 어떻게 입단할 수 있었을까요?


남: "학교 도착시간은 매일 새벽 5시30분이었다. 학교(서울예대)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서울시립 가무단의 입단 시험에 필요한 시창(악보 보고 바로 노래 부르기), 가창, 연기, 무용 등을 공부하는데 받쳤다."


남: "또한 6층 건물인 극장 옥상의 난간에 올라서서 걷기나 조깅을 날마다 했다. 떨어지면 사망이나 중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력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미친 짓을 했다."


남경읍의 연습량이나 '하던 행동'이 무척 대담했던 것 같네요.



남: "결국 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시립가무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가무단에 들어간 후에도 나의 연습량은 줄지 않았다. 당시 이십대의 초중반이었기에, 꽃놀이, 당구치기, 연애하기, 술마시기 등의 유혹을 항상 받았다.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연습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남: "결국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쓰디쓴 ‘마이신’ 가루를 샘플병에 가지고 담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한 병씩 마셨다."


남경읍이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 배우로 분류되면서, 현재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또한 무척 많은 후학들을 양성할 수 있었던 '남경읍의 저력'을 여기서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경읍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남경읍 아내와 딸 남유라- 바쁘지만 자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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