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봉주 김미순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마라토너 이봉주의 인생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해줍니다.

재능이 없고 조건(?)이 없는 사람도, 노력과 열정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죠.


또한 이봉주 아내 김미순과의 사랑 이야기는 흥미롭네요.

처음에는 이봉주가 기다렸다가, 나중에는 김미순이 기다리는 연애사가 펼쳐집니다.

또한 이봉주의 거부로 결혼식이 한번 연기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봉주에게는 본인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얼짱 아들들이 있는데, 이것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네요.


이봉주 아내 사진


마라톤 선수 겸 스포츠해설가 이봉주는 1970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납니다(이봉주 고향). 올해 45살이죠(이봉주 나이).

(이봉주 학력 학벌) 성거초등학교, 천성중학교, 광천고등학교,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

(이봉주 프로필 및 경력) 1990년 제71회 전국체육대회 2위로 데뷔


이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4회 대회 연속 국가대표로 출전합니다.


애틀랜타 올림픽때 은메달을, 1998년 방콕 아시아게임, 2002년 부산 아시아게임에서 2연속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보스턴 마라톤과 서울 국제 마라톤 등의 여러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국민 마라토너'라는 애칭을 얻게 됩니다.


2009년 10월 21일 제 90회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서 1위로 완주하면서 은퇴를 합니다(생애 41번째 완주).

(이봉주 별명은 봉주르, 가끔 이름을 이봉조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음)



# 목차

* 이봉주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

* 이봉주의 신체적인 결험

* 이봉주와 황영조의 차이점

* 이봉주의 정신적인 방황

* 이봉주의 전성기

* 이봉주 은퇴

* 이봉주와 아내 김미순의 만남

* 이봉주 결혼식 연기

* 이봉주 자녀(자식)


이봉주 사진


* 이봉주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


이봉주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과 경제적인 문제때문이었습니다.

이봉주: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30분이 걸렸는데 아침 먹고 동네 아이들끼리 모여 학교까지 달리기 시합을 했죠. 그때 제가 나이 많은 형들을 제치고 이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지구력 하나는 타고난 것 같아요."


운동을 좋아했던 이봉주는 축구, 야구, 복싱 등을 하려고 했지만, 가난했던 그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없었습니다. 결국 천안농고(이봉주가 처음 들어간 고등학교)에서 육상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봉주: "고등학교 육상부 생활이 의외로 할만했어요. 사실 그때도 버스비도 아낄 겸 집에서 학교까지 대략 12km 되는 거리를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한 시간 반이 걸렸는데 1년 지나고 보니 40분대로 줄더라고요."


이봉주: "예산에 사는 삽교고등학교 선배가 저를 보고 자기 학교 육상부로 오라는 거예요. 장학생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1년 꿇고(재수하고) 입학했죠. 집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형이 레슬링을 하다가 형편상 그만두고 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했기 때문에 저마저 그렇게 될까봐 걱정하셨던 거죠. 다행히 형이 제 편이 돼줬어요."


이렇게 들어간 삽교고등학교이지만, 곧 육상부가 해체되면서 이봉주는 광천고등학교로 전학가게 됩니다.


* 이봉주의 신체적인 결험


사실 이봉주의 신체조건은 마라톤을 하기에 적합하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척 불리한 조건이었죠.


이봉주: "사실 제가 짝발에 평발이에요. 특히 ‘단거리 달리기’에는 약해서 초·중·고 통틀어 운동회에서 3등까지 주는 공책 한 권조차 받아본 적이 없어요."


공옥희(이봉주 어머니): "중학생 때까지 운동을 잘하지도 못한 막내가 달리기를 하겠다고 해서 많이 반대했다."



하지만 이봉주는 이 모든 것을 오직 노력으로 극복해냅니다.

"이봉주는 비가 오면 장화를 신은 채 우산을 쓰고 뛴다."는 말이 마라톤 지도자들 사이에서 돌 정도였죠.


오재도 감독(이봉주 스승): "한겨울에도 새벽 5시30분이면 일어나 혼자 달리는 이봉주에게 적당히 하라고 말릴 정도였다."


이성주(이봉주 형): "하루도 훈련을 거른 날이 없어 명절에도 가족들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봉주 발 사진



* 이봉주와 황영조의 차이점


결국 이봉주는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와 동갑내기 친구이면서 라이벌이었던 황영조가 일찌감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몬주익의 영웅'이 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궤적이었죠.


황영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게임 금메달 등을 수상하고, 곧 은퇴를 합니다. 


정봉수 감독(황영조의 스승): "황영조의 신체는 100년만에 나올까 말까한 마라톤을 하기에 가장 완벽한 신체구조를 가졌다."


참고로 황영조의 어머니가 해녀이기에 황영조는 엄청난 폐활량을 물려받았죠.

이런 황영조가 너무 일찍 은퇴를 한 것은 많이 아쉽네요.

노력으로 재능을 극복하고 뒤늦게 전성기를 가진 이봉주와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면, 둘 다 더 좋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봉주 과거 사진 황영조와의 경쟁


* 이봉주의 정신적인 방황


황영조가 최고의 생애를 보내던 1992년, 이봉주는 평범한 선수중의 한명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


이봉주: "아무런 희망도, 자신감도 없었고, 한없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그 당시 뛰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이봉주: "결국 동료 한 명은 결국 돌로 자기 발을 찍어 상처를 냈고, 운동을 포기했다. 6~7개월의 기나긴 슬럼프 동안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못했고, 결국 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 내 스스로 이겨내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을 혹독하게 깨달았다."


아마 이때 이봉주는 정신적인 자립,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1993년 코오롱 육상단에 입단한 이봉주는 1996년 3월 동아마라톤에서 2위를 하면서 올림픽 대표로 선발됩니다. 이때부터 이봉주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죠.



* 이봉주의 전성기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때 이봉주는 은메달을 차지하는데, 금메달의 조시아 투과니와는 불과 3초 차이였습니다. 역대 올림픽 최단 격차였죠.


이봉주: "당시에는 군대 면제 기쁨이 컸기 때문에 메달 색깔에 연연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약간 아쉬운 건 있었어요. ‘전략을 좀 더 치밀하게 짰다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싶죠."


이때 금메달을 땄다면 황영조에 이어서 한국이 올림픽을 2연패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네요.


어쨌든 노력으로 재능을 극복한 이봉주였기에, 그의 전성기는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1998년 4월 19일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 7분 44초로, 2000년 2월 13일 도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7분 20초로 대한민국 신기록을 세우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불과 24위에 그치고 맙니다.


19km 지점에서 앞서 달리던 네댓명의 선수들이 무더기로 넘어지는 바람에 이봉주 역시 같이 넘어지고 말았죠. 들것에 실려 나갈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한 선수도 있었고, 이봉주 역시 허벅지 통증이 심했지만, 이봉주는 끝내 완주를 합니다.


이봉주: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가장 아쉬워요. 바로 몇 달 전에 출전한 도쿄마라톤대회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 자신감도 있었거든요. 처음으로 어머니, 형님, 매형까지 시드니로 날아와 응원해줬는데 앞에서 선수들이 무더기로 넘어지는 바람에…. 암 투병하며 고향에서 아들을 응원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대회였죠."


이봉주: "시드니올림픽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어요. 이후부터 약간씩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음을 느꼈죠."


사실 2000년에 이봉주의 나이는 31살이었습니다. 마라토너로서는 거의 장년층의 나이였죠.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봉주는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과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마라톤, 2007년 서울 국제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등,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네요.


또한 시드니 올림픽때는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바로 이봉주가 팀을 탈퇴해서 무적(소속 팀이 없는) 상태였었죠.


사건의 발단은 1999년 로테르담 마라톤 대회로 올라갑니다.

이봉주의 후배 김이용이 역대 2위 기록(2시간 07분 49초)의 좋은 성적을 내지만, 코오롱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합니다. 결국 이봉주와 당시 임상규 감독, 오인환 코치 등이 집단 탈퇴를 했고, 충남 보령 여관방에서 무소속으로 훈련을 하게 되었죠.


실업팀의 아무런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의 훈련이라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네요.

그래도 2000년 2월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07분20초(2위)의 한국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봉주: "그날 오인환 당시 코치님과 껴안고 울었는데, 내 평생 그렇게 많이 운 적이 없었어요."


* 이봉주 은퇴


그리고 이봉주는 2009년 10월 21일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서 1위로 완주하면서 은퇴를 하는데, 생애 44번의 마라톤 도전이었고, 총 41번의 완주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이는 적도를 기준으로 지구를 5바퀴 도는 거리이고, 또한 세계적인 마라토너 어느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죠.


(재능으로 인해)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기록은 없지만, (노력으로 인해) 은은하게 빛나는 기록은 이봉주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아마 이런 끈기어린 노력에는 이봉주의 겸손한 성격이 밑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이봉주: "전형적인 시골아이였던 제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마라톤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죠. 어린 시절 꿈보다 더 많은 걸 이루고, 얻었다고 생각해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기에, 이봉주는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이봉주와 아내 김미순의 만남


황영조가 아쉽게 이봉주와 함께 전성기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이봉주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줍니다. 바로 이봉주 부인 김미순을 소개시켜준 것이죠.


황영조: "94년에 봉주가 코오롱팀에 입단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동료들과 좀 서먹할 때였어요. 저랑은 동갑내기 친구고 또 전국체육대회를 통해 알고 지냈죠. 결국 이봉주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코치에게 허락을 구해 저의 고향인 강원도로 휴가를 떠났어요."


이봉주: "영조의 중학교 동창 친구를 소개받았는데, 처음 보는 순간 반해버렸죠. 이상형이 청순하고 순박한 간호사였는데 딱 들어맞았거든요. 그때 전국체전 두 차례 우승, 호놀룰루국제마라톤 우승 등으로 얼굴이 조금 알려진 상태였는데 아내는 절 모르더라고요.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어요."(이봉주 아내 김미순 직업 간호사)


김미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영조에게 전화가 왔어요. 무조건 나오라고 해서 싫다고 하니까, 집으로 찾아왔어요. 세수하고 막 나오는데 딱 마주쳤죠."


김미순: "남편 첫인상은 별로였어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모습이었죠. 얼굴도 작고 체격도 왜소한데다 말도 별로 하지 않고 미소만 짓고 있어서 관심이 없었어요."


이봉주 부인 사진


결국 첫눈에 반한 이봉주가 애정 공세를 펼칩니다.

이봉주: "운전면허를 딴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어요. 첫만남 다음날이 아내 생일이라는 정보를 듣고 차를 몰고 강원도로 갔죠."


김미순: "장미꽃 25송이를 가지고 와서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데려갔어요. 하지만 전 그런 이벤트들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첫인상이 너무 왜소해 보였거든요. 원래 얼굴이랑 몸집이 작은데다가 딱 맞는 트레이닝복을 입으니 더욱 작아 보여서…. 원래 제 이상형은 좀 남자답고 체격도 있는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마라톤도 그렇듯이, 이봉주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김미순: "(남편이) 무조건 와서 기다리고, 친구들 모임에 가면 봉주씨가 있고, 그런데도 마음이 열리지 않았어요. 어떤 날은 봉주씨가 제가 일하는 병원 앞에서 5시간을 기다리다가 간 적도 있었죠."


결국 다음해 김미순의 생일날까지 이봉주는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김미순에게 구애를 합니다.


김미순: "당시 봉주씨가 훈련을 마치고 5시간넘게 운전해서 삼척까지 온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이라면 정말 평생을 같이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보다 한송이가 늘어난 26송이의 장미꽃다발을 받으면서 저도 그이를 좋아하게 됐죠."


김미순: "그때부턴 역할이 바뀌었어요. 봉주씨는 연습을 해야 되니까 제가 서울로 올라갔지요. 처음 제가 서울에 가서 기다리던 날, 그때의 봉주씨 표정은 잊을 수가 없어요."


김미순: "서울에 올라와서 하는 일은 기다리는 거였어요. 그때 책도 참 많이 읽었지요. 차에서 자기도 하고, 지루하면 상가를 구경하기도 하고…. 하지만 봉주씨도 날 이렇게 기다렸겠구나, 생각하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더라고요."



* 이봉주 결혼식 연기


이렇게 연애를 하던 두 사람은 곧 결혼을 할 예정이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공옥희(이봉주 어머니): "봉주가 친구 황영조의 소개로 동갑내기인 김미순을 만나 사귀어왔는데, 선수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가을께 결혼시킬 예정이다."



이때가 바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때였는데, 이봉주는 무적 상태에서 도쿄마라톤(2000년 2월)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웠지만,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앞의 선수들이 넘어지는 사건'때문에 24위를 하고 말았고, 이봉주 본인은 이를 불명예로 생각했던 것이죠.


김미순: "정말 아득하더라고요. 봉주씨가 소속사 없이 혼자서 훈련하면서 시드니올림픽에 모든 걸 걸었거든요.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까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결국 이봉주는 결혼식 연기를 제안하고, 김미순 역시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봉주는 후쿠오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서 2위를 차지하면서 명예를 회복합니다.



김미순: "기다린 보람이 있어요. 그때 그냥 우겨서 결혼했으면 이렇게 훌륭한 결혼식은 하지 못했을 거잖아요."

(결혼식이 연기되었기에, 이봉주 이혼 재혼 결별 등의 루머가 퍼지기도 했지만, 사실무근이었죠)



이봉주: "저도 아내가 첫사랑이지만 아내에게도 제가 첫사랑이에요. 매우 드문 케이스죠. 제일 고마운 순간이요? 지금까지 늘 한결같이 제 옆에 있어준 것. 그리고 두 아이를 낳아 잘 키워준 게 너무 고마워요."


이봉주가 아내를 처음 만나 1994년이면 25살인데, 다른 사람보다는 첫사랑이 좀 늦은 편이네요. 사실 첫사랑이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늦게 시작하면서 평생을 사랑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황영조에게 마라톤뿐만 아니라 중매쟁이로서도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 이봉주 자녀(자식)


결국 2002년 4월 이봉주 김미순은 결혼식을 올립니다(이봉주 배우자 김미순).

그리고 둘은 아들(이름은 이우석, 이승진)을 두명 둡니다(이봉주 가족 관계).

(이봉주 딸은 없는데, 아들들이 마치 딸처럼 예쁘게 생겼네요.)


그리고 이봉주 아들 이우석과 승진은 얼짱 아기로 무척 유명합니다.

다들 이봉주와는 닮지 않았다고 우스개 소리르 하죠.


이봉주: "아내를 닮아서 다행이다."


이봉주 아들 사진



이봉주 가족 사진


사실 이봉주의 성격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겸손한 대답을 하네요.

이봉주는 한때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파트너가 최수정이었죠(이봉주 최수정).


최수정: "선생님(이봉주)의 이미지가 그동안 코믹했잖아요. 이상한 눈에 어리바리한 그런 거. 그런데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잘 생기셨어요! 코나 입술이나 턱선을 보면 되게 잘 생기셨고요. 꾸준히 운동해 오셨던 분이라 웨이트를 따로 안 해도 춤추는 분들이 반할 정도로 몸의 근육이 진짜 예뻐요. 팔다리도 길고 비율도 좋고요. 또 강조하고 싶은 건, 얼굴이 정말 작아요. 아기 머리만 해요."



사실 이봉주가 눈이 작고 피부가 검어서 별로 미남이라는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눈이 작은 것은 별개이지만, 피부는 그가 늘 뙤약볕 밑에서 훈련을 했기 때문에 생긴 '자랑스러운 흔적'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그는 늘 웃는 눈을 가지고 있는데, 항상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겸손하기에 그런 눈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 것 같네요.



이봉주의 생애에 올림픽 금메달은 없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는 없지만, 그 못지 않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산증인같네요.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