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기범 안미애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세상에는 성격이 다른 부부가 참 많습니다.

대부분이 자기 부부만큼 성격 차이가 심한 부부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는 부부 갈등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여기 한기범 안미애 부부 역시 굉장히 성격이 다른 부부입니다.

그렇기에 부부 싸움 역시 굉장히 많이 했죠.

이 부부는 어떻게 부부 갈등을 잘 해결했는지 궁금하네요.


한기범 아내 사진


농구선수 출신 스포츠인 한기범은 1964년 6월 7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납니다(한기범 고향). 올해 51살이죠(한기범 나이).

(한기범 종교) 기독교

(한기범 학력 학벌) 명지고등학교, 중앙대학교,

(한기범 프로필 및 경력) 한때 우리나라 최장신 농구 선수로 유명했으며, 단순히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운동 신경과 농구 센스까지 갖춘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유택과 더불어 중앙대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후 기아자동차에 입단한뒤 1989-90 농구대잔치 MVP를 차지합니다.


역시 기아자동차의 동료였던 허재, 김유택 등과 함께 기아차 전성 시대를 열게 됩니다. 1996-97 농구대잔치를 마지막으로 은퇴합니다.



한기범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데, 사실 그에게는 지병이 있었습니다. 바로 희귀병인 '마르판 증후근(말판 증후군)'이었죠.


한기범: "유전병인 마르판증후군으로 인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마저 같은 이유로 잃게 된데다 자신 또한 유전병으로 위험한 상황이라는 검사 결과를 받게 됐다."


한기범: "마르판 증후군으로 2000년과 2008년 두 차례 심장수술을 받았다. 2008년에는 사업실패로 집이 넘어가는 등 아무 것도 없던 때였다. 그 때 한국 심장재단의 도움을 받아 두번째 심장 수술을 받았다."


한기범: "하지만 수술을 받은 후에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수술 1년 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나도 1년 후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몰래 울기도 했었다."



한기범 본인도 불안하겠지만, 그의 가족들 역시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죠

남편과 비슷한 시아버지와 시동생이 병마때문에 먼저 저 세상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본 안미애의 불안감은 다른 이들보다 몇배는 더 클 것 같습니다.


한기범 부인 사진


사실 안미애는 재일 교포 출신입니다.

1980년대 코카콜라 CF 등에 출연했지만, 배우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결혼 후에 영화 올드보이와 여고괴담3 등에 단역으로 출연함)


두 사람은 안미애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1990년 결혼식을 올리죠(안미애 나이는 한기범보다 3살 연하)(한기범 배우자 안미애).


두 사람 사이에는 한이세(이름), 한다온이 등 아들만 두명이 있습니다(한기범 자녀 자식)(한기범 가족 관계).



결혼 초부터 안미애는 고생을 시작합니다.

안미애: "결혼하자마자 3세대가 함께 생활해야 했던 한옥 집에서 시어머니, 시누이도 모자라 시할머니까지 3대를 보살펴야 했다."


안미애: "시할머니 봉양은 물론 시이모 병수발을 위해 해외원정까지 가야 했다. 내가 둘째 며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대소사가 모두 맡겨졌고, 헌신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돌아오던 건 시어머니의 싸늘한 태도였다."



안미애: "시집온 지 불과 두 달도 안 돼 시이모님의 간호를 위해 같이 필리핀으로 떠나야 했다. 임파선암에 효과가 좋다는 유칼리투스 나무의 즙을 얻기 위해서다. 시이모님에게 자식이 없었기에, 내가 가야 했다."


안미애: "필리핀에서 지낸 40일을 절대 잊지 못한다. 암 세포가 퍼진 자리엔 썩은 냄새가 풍긴다. 유칼리투스 나무를 밤새 끓여 즙을 낸 후 매일 상처 부위를 닦아내야 했다. 시트가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을 까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고통스러워하는 시이모님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임파선암의 증세가 좀 완화된 다음에 안미애는 시이모와 함께 귀국하게 됩니다. 시어머니가 시이모를 보기 위해 잠깐 외출했고, 안미애는 시할머니와 단둘이 있게 되었죠.


안미애: "시할머니가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문을 열지 않았다. 이상해서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순간 당황했다. 방안 가득 대변을 보신 시할머니는 이불을 덮어 감추느라 손과 발에 온통 대변이 묻어 있었다. 악취가 진동을 했다.  오전에 시작된 청소가 저녁 9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며칠 동안 식사도 할 수 없었다. 눈만 뜨면 그 장면이 생각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안미애는 갓 결혼한 새댁이지만, 여러 문제들을 훌륭하게 잘 감당한 것 같네요.

이런 시댁 문제외에도 남편의 건강으로 안미애는 불안해합니다.

덕분에 마르판 증후군에 대하여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게 되었죠.



안미애: "말판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대개 손가락과 발가락이 길고 얼굴 모양도 평범한 사람에 비해 무척 길어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납작한 느낌이 들지요."


안미애: "의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특히 딸에게 유전이 잘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통계를 내본 건 절대 아닙니다. 제 경험상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는 것뿐이지요."


안미애: "아들만 둘이라서 딸을 원했지만 오히려 다행인 것 같아요. 친척 중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여자 조카를 보고 조금 걱정스럽더라구요. 징후가 보이는 듯했거든요."



또한 여기에 남편의 사업 실패로 생활고까지 겪습니다.

한기범: "사업이 대박이 나서 돈을 많이 벌었다. 돈을 버니까 안 좋은 사람들이 꼬이더라. 이후 여러 사업을 했는데 잘 안됐다."


한기범: "처음 집을 살 때 대출을 받았다. 당시 대출 이자가 한 달에 50만 원 정도라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내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추가로 대출을 받았고 한 달에 이자만 100만 원 가까이 내야 되는 상황이 됐다. 부담스러웠다. 결국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안미애: "우리가 집을 살 때 2억 6천 5백만 원 정도였다.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갔는데 8개월 만에 집값이 5억이 넘었다. 지금은 6억이 넘는다. 정말 1년도 안 지나서 집값이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안미애로서는 분통이 터질만도 하네요.

경매로 넘어가기 전까지 조금만 더 버텼으면, 8개월만에 손쉽게 몇억원은 벌었을테니까요.


(한기범 아내 안미애 백발 이유-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병치레와 시월드, 그리고 경제적 고통 때문에 이른 나이에 머리가 하애짐)


한기범: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다. 집을 샀다가 경매로 넘어가는 경험을 몇 번이나 했다. 그것 때문에 나와 아내는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걸렸었다. 지금은 월세부터 시작해서 전세로 차츰 나아가고 있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한기범은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월세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안미애 역시 이 때문에 큰 고통을 겪게 되죠.


안미애: "가장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삶을 놓으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신랑이 밥을 맛있게 먹고 있으면 뒤통수를 때리고 싶고, 출근하는 엉덩이도 꼴 보기 싫었다."


안미애: "어느 순간 남편을 죽이고 싶기도 했다. 남편이 저런 성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경제적으로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내 얘기를 조금만 귀담아들었어도 내가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기범은 아내의 조언을 듣지 않고, 굳이 자신의 고집대로 합니다.

한기범: "나는 혼자 헤쳐나가고 혼자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사실 두 사람간의 성격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안미애: "결혼 전 큰 키 덕분에 전구를 갈아 끼우는 것은 걱정없겠다고 생각했지만, 결혼 후 못 하나 박는 것도 제대로 못하더라."




'나는 저 사람과 달라'라는 생각이 성격 차이와 갈등의 원인


액자를 선물받으면 벽에 못을 치는 것은 안미애의 몫이고, 세면기가 막혀도 한기범은 어쩔 줄을 모르고 안미애가 대신 나서서 집안 수리를 합니다.

안미애의 손재주가 뛰어면서, 성격 역시 적극적이죠.

이런 부부일수록 성격 차이에 의한 부부싸움을 많이 합니다.

거의 이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죠.



그런데 이들 부부는 어떻게 파경을 면했을까요?

안미애의 깨달음 속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안미애: "처음에는 화가 나는 부분이 많았지만 내가 남편보다 잘난 것도 없다는 걸 알고나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돌아보니 남편과 계속 살고 있더라."


즉, 언제부터인가 한기범이 사업을 하면 아내의 뜻을 우선해서 사업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안미애의 의견대로 해도 사업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죠.



사실 안미애의 최초 생각은, 자신의 의견대로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죠.


하지만 안미애는 사업이라는 것이 벽에 못을 치는 것이나 세면기를 수리하는 것과 다르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재능 역시 남편처럼 무척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남녀 구분없이 부부중에 사업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보통 부부중에 누군가 특출한 사업적 재능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이렇게 한기범 안미애 부부처럼 둘 다 평범한 경우가 많죠.

이럴 경우에는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우길 경우에는 격렬한 부부싸움과 이혼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안미애처럼 빨리 깨닫는 것이 현명하죠.


물론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겠죠. 만약 아내의 사업적인 재능이 좋다면, 이전에 몰랐던 사실이니 순순히 아내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 좋고, 만약 아내의 사업적인 재능이 자기처럼 평범하다면, 그때부터는 둘이서 합심해서 사업을 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죠.



이런 안미애의 깨달음외에 그들 부부가 유지된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안미애: "나는 소통을 안 하려고 했는데, 끊임없이 남편이 참아주고 내 만행을 지켜봐줘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나마 악조건속에서 한기범이 소통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들 부부가 잘 유지된 것 같습니다. 물론 안미애 역시 고된 시집살이, 남편의 병수발과 경제적인 고통을 잘 극복했고요.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기범이 사업 실패로 돈이 없을 때, 그는 공익 재단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받습니다.

결국 한기범은 자신이 받은 이상의 것을 사회에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


한기범: "그것이 마음의 빚이었다.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의정부시장님이 지원해줘 희망농구 자선경기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한기범은 자선농구를 펼치고, '한기범희망나눔' 등의 사회복지 기업을 출범시키는 등, 자신이 어려울 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기범: "후배들이 아직 기부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인기를 누리고 많은 연봉을 받으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같은 활동(자선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후배들을 선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운동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한기범은 후배들을 좋은 쪽으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하네요.


한기범: "많은 사람이 재능나눔을 했으면 좋겠다. '나눔은 특권이다'는 말을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 돈이 많든, 피아노를 칠 수 있든, 농구를 할 수 있든 그것을 가지고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만의 '특권'인 것이다."


확실히 한기범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재능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죠.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