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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 이봉조 러브스토리 및 인생이야기

현미 남편 이봉조와의 결혼 이야기는 일반인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사실 현미는 이봉조의 본부인이 아니었고, 이봉조에게는 조강지처와 자식들이 따로 있었죠.


다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대개 그들의 결혼 생활을 굉장히 평면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남녀의 입장과 더불어 제 3자의 증언 역시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미 남편 사진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는 1938년 1월 21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납니다(가수 현미 고향). 올해 77살입니다(가수 현미 나이).

(가수 현미 종교) 개신교

(가수 현미 학력 학벌) 덕성여자대학교 가정학과 명예 졸업

(가수 현미 프로필 및 경력) 1957년 미8군 무용수로 데뷔해서 활동합니다.


그리고 1962년 밤안개로 정식 가수로 데뷔했고, 이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무작정 좋았어요, 몽땅 내사랑 등의 대표곡을 남깁니다.


(가수 현미 가족관계) 노사연(조카딸), 이무송(조카사위), 한상진(조카), 박정은(조카며느리), 아일리(조카딸)

큰아들 이영곤(고니로 가수 활동), 둘째아들 이영준 (둘째 며느리 원준희(가수)) 등으로 연예인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미 가족 사진


그동안 현미의 남편은 작곡가 이봉조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둘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고, 이봉조에게는 본부인인 노전숙(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현미는 방송에서 결혼과 이혼, 남편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현미: "결혼 전에 남편에게 아이가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이가 두 명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돼 충격을 받고 집을 나왔다."


현미: "하지만 (작곡가인) 남편 때문에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여전히 존경한다."



사실 현미가 오늘날에도 이름을 남기는 유명한 가수이지만, 한때 이봉조는 그보다 더 유명한 스타 작곡가였습니다. 그의 손에 의해 키워진 가수가 현미를 비롯해서 최희준, 윤복희, 정훈희 등이 있었으며, 이봉조 TBS 악단 및 KBS 악단 단장을 역임하면서 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고, 1972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기도 합니다.

(이봉조 1931년 5월 1일생, 현미보다 7살 연상)


정훈희 사진


이봉조는 노전숙을 1951년에 만나 연애를 했고, 1956년 정식 결혼식을 올립니다(이봉조 아내, 이봉조 부인).

(원래 노전숙은 이화여고를 졸업했고, 이화여대를 진학하지만 6.25때문에 졸업하지는 못합니다.)

(이봉조와 노전숙이 이혼을 하지 않았기에, 이봉조 전처(전부인) 등의 말은 사실상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봉조 노전숙 부부는 1957년과 58년 연년생으로 딸을 낳습니다(이봉조 자녀 자식)(이봉조 딸 이름은 이영숙, 이영미).

(이봉조 노전숙 사이의 자녀는 아들과 딸이 한명 더 있는데, 이부분은 밑에서 언급)


이런 상황에서 노전숙은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노전숙: "둘째딸을 낳았을때 사람들이 심상찮은 상황을 귀뜸해 주었어요.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고... 물어물어 사무실로 찾아가서 현미씨를 만나서 사정을 했어요. 처자가 있는 분이니 제발 관계를 청산해 달라고요."


노전숙: "그랬더니 "딸만 둘 있으시대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러더니 현미씨가 휙 나가버려요."


그후로도 노전숙은 여러번 현미를 찾아가서 애원과 호소를 했지만 별무소용이었습니다.


이봉조 부인 노전숙 사진(네명의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 사진)


현미는 이봉조와 더불어 사실혼 관계(실질적인 부부생활)를 유지하면서 아들을 낳습니다(현미 배우자, 현미 남편). 

바로 1962년에 고니(큰아들 이영곤의 가수 예명)와 둘째 아들 이영준을 낳죠(현미 자녀 자식)

그런데 현미의 말은 노전숙과 좀 다릅니다


현미: "21세에 처음 그분을 만나 3년 동안 진하게 연애를 했다. 당연히 총각이라 생각했고 이봉조가 아이 둘 딸린 유부남이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


현미: "그러다 임신 7개월이 됐을 때 이봉조의 본처가 찾아와 자신의 남편이 유부남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때 그분에게(이봉조의 본처) '저는 몰라요. 결혼하자고 해서 청혼을 받았고, 지금 임신 7개월째에요. 결혼하자고 하면 할꺼에요'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을 너무 가슴 아프게 한거 같아 후회가 된다."



현미와 노전숙의 말이 서로 다릅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기에, 이런 미묘한 차이점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은 하나죠.


현미 젊은 시절 과거 사진


현미 미 8군 무용수 시절(위 우측)

현재는 많이 늙었지만, 현미 리즈 시절 매우 뛰어난 외모와 몸매로 이름을 날립니다.

당시 미 8군 무용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죠.



현미가 큰아들 이영곤을 1962년에 낳을 때, 본처 노전숙도 아들 이영대를 1962년에 낳습니다(같은 해이지만, 이영대의 생일이 12월 15일이기에 거의 1년 정도 차이가 남).

그리고 현미가 둘째 아들 이영준을 낳고, 후에 노전숙이 막내딸 이지수를 낳게 되죠.


즉, 이봉조는 동시에 두집 살림을 했고, 본처인 노전숙은 남편에게 첩이 있다는 사실을, 현미 역시 (만약에 그녀의 말대로 첫째 임신 7개월까지 이봉조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봉조에게 본부인과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동거 생활을 했다는 뜻이죠.



그렇게 세남녀의 두집 살림이 계속되다가, 1974년 현미와 이봉조는 이혼(?)을 하게 됩니다. (사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별거라고 해야겠죠).


그런데 그 원인이 좀 웃깁니다. 현미가 남편을 본부인에게 돌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봉조가 바람이 났기 때문입니다.

(후에 현미가 남편을 본부인에게 돌려보내기 위해서라고 인터뷰를 하는데,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당시 이봉조는 가수 김추자와 함께 일본 여행을 떠났다가 현미로부터 결별 선언을 듣게 된 거죠. 이때 언론에 발표된 것으로, 두 사람은 완전한 이혼이 아니라 별거로 공식 발표를 합니다.



현미: "남편과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럴 바엔 여기서 죽자’며 칼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러는데 어떻게 집문서를 가지고 나오겠냐. 어떡하면 도망갈 수 있을지만 고민했을 정도로 무서운 위협을 당했다. 아파트 정문에서 숨어있기도 했다."


현미: "부부사이를 청산하는데 따라 자식들에게 미칠 부작용을 생각해 냉각기를 갖는 것으로 결정을 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이봉조의 본부인이 현미로 알고 있었습니다. 노전숙이 전혀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좀더 보충하면, 이봉조의 여자관계는 현미외에도 복잡했습니다.

현미: "질투도 많이 했다. 어린 나이에 싸움도 많이 하고 울었다. 그래도 엄앵란 씨하고 항상 우리가 잘난 사람하고 사니까 50%로만 차지하면서 감사할 줄 알자라는 말을 하곤 했다."


현미: "새벽에 전화가 오곤 했다. 호텔에 이봉조씨와 어떤 여자가 들어갔다고. 그러면 나는 내 남편은 내가 관리하니까 이런 전화 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는 내 남편이고 내 스승이니까 내가 보호했다. 그래서 기자들도 나를 열녀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다가 이봉조는 1987년 심장마비로 급사하게 됩니다(이봉조 사망원인, 이봉조 사망이유).


현미: "별거에 들어가면서 남편에게 본처에 들어가 살라고 했지만 들어가지 않고 13년간 홀로 살았다. 남편을 찾아갔을 때는 당뇨로 수척해져 이후 남편에게 반찬도 해주고 방문했다."


현미: "이후 다시 재결합(재혼)을 하기로 약속했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헤어지지 말고 더 이해하면서 살았으면 좋았을걸...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현미와 이봉조, 노전숙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당사자들의 증언에도 거짓말(혹은 모호한 기억)이 섞여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기란 매우 힘듭니다.

하지만 현미와 노전숙간에 일치하는 증언이 있죠.



노전숙: "아이들 아빠께서도 제가 뭐라 그러면(두집 살림이나 다른 여자 문제), 묵묵부답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계셔요. 그땐 저도 젊었으니 누차 만류하면서 화도 냈지요. 소용이 없는 것 같더군요."


현미: "두 집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왜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당시 남편이 나를 놓칠까봐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또한 제3자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신성일: "당시 상황은 이랬다. 60년대 이봉조가 유부남인지 모르고 사랑에 빠진 현미는 이봉조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키웠다. 하지만 어느 날 이봉조의 본처가 늦둥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날아들었고 현미는 그길로 짐을 싸 초등학교 6학년·4학년인 두 아이와 함께 아내(엄앵란)의 집으로 찾아왔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빈털터리가 된 현미를 안쓰럽게 여긴 아내(엄앵란)가 은행에서 자신의 신용으로 대출을 받아 현미에게 같은 단지 내 아파트를 마련해줬다."


1974년, 75년 무렵의 일입니다. 현미가 아이들과 함께 가방 하나만 들고 나타났다니, 이봉조가 칼을 들 정도로 급박했다는 현미의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네요. 또한 신성일은 이봉조의 우유부단함을 탓합니다.


신성일: "나는 평소 이봉조가 진주 출신의 ‘사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미와 자식들을 못 본 채 하는 그의 처신은 사나이답지 못했다. 자신의 말대로 본처와 헤어지던가, 아니면 현미와 아이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다. 아무리 형이라고 불렀지만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어느 모임에서 이봉조와 마주쳤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이봉조를 노려봤다. “형, 왜 그렇게 책임을 못져? 동생한테 맞아봐야 정신차리겠어!” 그가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신성일 역시 이봉조로부터 '본처와 헤어진다는' 말을 들은 것 같네요.


신성일: "이봉조는 그 사건 후 나만 보면 피해 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인 87년 8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나 역시 현미에게 애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남자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얼마나 고생을 심했을까. 지금도 가방 하나와 두 아이를 데리고 온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후에 이렇게 신성일과 같은 연예계 동료나 기자들에게도 이런 내막이 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봉조의 본처 노전숙과 아이들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봉조가 죽은 이후에 노전숙이 전격적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현미가 첩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죠.


노전숙 가족이 인터뷰를 하게 된 원인은 이렇습니다.

이영숙(이봉조의 큰딸): "영대(이봉조 노전숙의 아들, 서울대 법대 재학중 사법시험에 차석 합격함)가 고시에 합격한 후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는데, 동료 한 사람이 그러더래요. 너희 엄마 가수지?"


워낙 이봉조와 현미 커플이 유명했기에, 사회 생활을 하는 이영대가 자칫하다가는 자신의 어머니가 바뀔 위기에 처해집니다. 결국 이들 가족이 어쩔 수 없이 나서서 내막을 밝힌 것이죠.

이봉조 아들 이영대 변호사 사진


이제 사건을 정리해 보면, 여기의 가장 큰 책임자는 이봉조였습니다.

본처와 자식들이 있는데도 거짓말로 속이면서 당시 처녀였던 현미와 동거 생활을 합니다. 본인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노전숙과 현미, 그리고 자식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봉조, 현미, 노전숙에게는 잘못이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봉조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죠.


노전숙: "남편의 부고장에 현미에게서 낳아진 두 아들의 이름도 다 넣었다. 그러나 호적에는 네 자녀뿐이다. 이봉조가 그쪽 두 아들의 입적 문제를 거론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미의 두 아들은 호적때문에 상당 기간 고통을 받게 됩니다.

남녀간에 실수를 해서도 안되지만, 실수를 한 뒤에는 뒷수습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봉조는 완전히 못본 척을 해버렸네요. 



두번째는 현미의 잘못 역시 큽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현미는 중요한 말을 합니다.

현미: "(이봉조가 바람을 피워서) 부부사이를 청산하는데 따라 자식들에게 미칠 부작용을 생각해 냉각기를 갖는 것으로 결정을 지었다."


자기 자식이 중요하면, 남의 자식 역시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현미는 왜 몰랐을까요?

또한 자신이 이봉조의 바람기때문에 시달리면서, 왜 노전숙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을까요?


단순히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만 생각하면 되는 '간단한 사실'을, 대부분의 인간들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전숙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혹자는 남편이 불륜(외도)를 저지르는 와중에도 4명의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다고 칭송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노전숙은 굳이 남편과 현미를 간통죄 등으로 고소하지 않습니다. 아마 간통죄를 처벌을 하면, 실질적으로 이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노전숙 역시 배운 여성인데,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은 많이 아쉬운 것 같네요. (물론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면, 본인은 어머니란 이름으로 너무 큰 희생을 치룬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이봉조와 현미가 헤어진 후에 이봉조가 혼자 살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이봉조의 마음은 노전숙으로부터 훨씬 전에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부부의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정도였다면 아무리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보내줄 필요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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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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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이윤주 재수없는할망구
    나이먹어서도창피한줄모르고
    이젠며느리까지팁나와지랄방구세
    창피하지도않으신가봐
    손자.손녀가다보고있는데
    2014.08.11 00:34
  • 프로필사진 데오도라 며느리는가수라는데노래도못하고 성괴에다 푼수떼기.모지리. 2014.11.23 16:36
  • 프로필사진 멋진나라 더군다나 이봉조님의 본처 노전숙님의 아들이신 이영대변호사님 젊었을때 사진보니까 1980년대사진임에도 너무 꽃미남이시더라구요? 정준호랑 많이 닮았구요! 2014.11.15 23:24
  • 프로필사진 엄앵란씨랑 두분이서 잘난남편들을 만나 50프로만 차지하고 감사하고살자라고 하셨다니...^^ 너무 잘난 남자들이랑 결혼하면 바람은 각오해야할듯요.신성일씨는 당대최고미남이셨고 이봉조씨 또한 촉촉하고 우수에 찬 사슴눈에 정말 미남이시던데 그런남자들이 아무리 유부남이래도 수많은 여자들이 가만안두니 원... 2014.11.27 16:35
  • 프로필사진 ㅋㅋ 그당시 여성들이 이혼이라는 것을 매우 두려워 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마지막에 왜 이혼을 과감하게 못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신성일씨도 알기로는 많이 바람 폈지만 그때마다 엄앵란씨가 이혼하지 않고 간통죄도 묻지 않았지요...(지금 좋든 싫든 같이 살고는 있지요..)

    이혼녀라는 딱지 매우 힘든거 같네요.ㅋㅋ 오히려 배우신 분이라 감래한거지요.
    (배우신 분이 과감히 이혼 못했느냐는 참 말이 안됩니다. - 한국 현실에서...)
    2014.11.29 15:11
  • 프로필사진 jds 사실 요새 방송을 보면서 제일 보기싫은 사람중의 한사람이지요. 원래 첩들이란 즘 싸가지가 없다고 사람들이 곁눈질하면서 보고 수근 거리곤 한다네요 그러니까 더 오기가 생기고 뻔순이가 되는거 아닐까요.부인있는 남자를 끓어 안는건 뻔한거 아닙니까.
    어렸을때 우리 이웃집에도 첩이 있었는데 애들 호적은 큰마누라한테 올려놓고 살림은 첩하고 하는데 명절때 오면은 지가 더 설치고 다니더군요.큰 마누라도 만만치 안았는데 깨갱.그런데 이번에 아주 더 얄미운 사건이 터졌죠,한경 12/20일자에 체납사건이죠. 유지비가 한 6억 든다면서 건강보험료를 55개월간 2345만원 체납자라내요.이젠 방송 하차해야되나요. 암튼들 너무 뻔순이들 아닌가요ㅡ??패널이 그렇게 없나ㅡㅡ 방송들도 참.ㅡ
    2015.03.08 06:06
  • 프로필사진 ㅎㅎ 이봉조 가 나쁜놈이네 2015.04.04 13:23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15.07.24 15:36
  • 프로필사진 보리 전형적인 드라마에서 못된첩으로 나오는악역..ㅋㅋㅋ그렇게 모질게 뺏었으면 잘살것이지.. 대려 칼들고협박이나 받자고 그런길을 택하셧나.. 하긴 아직도 존경한다하니.. 진짜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지금이라도 해야하는거 아닌가..한참 흘러간 세월인데 지금머리숙여 진심으로 사과한들 본처가 거기다 침뱉을까.. 정말 얼굴도진짜 못되보이는데 관상따라 나자존심 강하오 이렇게 보이네 증말ㅋㅋ본인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 안보이나.. 우물쭈물 어설프게 숨기지 말고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한후 사죄하는게 더낫다고 본다 .. 2016.02.03 03:00
  • 프로필사진 유기농 본처가 무슨잘못ᆞ한번더 해피엔딩인가하는 프로보니 현미는 아들 둘낳고 열살될때까지 본처는 전혀 몰랐다고 말바꾸어 인터뷰하는데요
    이봉조 호적이 아니면 아들이 이씨성을가진건 현미도 이씨인가? 여하튼 첩이 본처인냥 나대는게 싫음
    2016.04.16 08:00
  • 프로필사진 유람선 현미씨 아들이 병이 있어, 말년에 어미를 눈물짓게 하는게 다 인과응보가 아닐런지...
    본처 소생은 그 어머니의 희생과 곧은 지조를 보고자라 잘 살게 되겠지요.
    2016.05.18 08:58
  • 프로필사진 윤진희 유부남인거 몰랐다는 거 거짓이겠죠 자신이 본부인 행세하고 다녔으니까요 이봉조씨 막내딸과 중고 동창인데 지금 4남매 다 잘 살아요 모두들 서울대 이대 명문대 출신 결혼도 잘 하고요 이봉조씨 부인은 화병이겠죠 오랜 시간 병 투병 후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심성이 부처님 참고 참고 또 참았답니다.그래서 자녀들이 다 잘된 거 같아서 그나마 다행 2016.06.08 12:32
  • 프로필사진 윤진희 그리고 동창이기도 하지만 친구의 친한 친구라 잘 아는데 이봉조씨가 소풍 때 같이 올 정도로 막내딸에게는 지극정성이었어요
    자녀들과의 사이는 좋았지요 그래서 부인이 이혼을 안 하고 참고 견딘 듯 해요
    이봉조씨 막내딸 아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니고 학창 시절 선생님 아이들 대학 때는 남자들에게도 엄청 인기가 많았던
    얼굴도 마음도 예뻤던 가만 있어도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사람 이봉조씨 막내 딸이에요 언니들과 오빠도 그럴거예요 어머니가 자녀들을 참 잘 길렀지요 가수 현씨 아들들도 이봉조씨 호적에 올린 걸로 알고 있는데 현모씨인데 이것도 거짓으로 이모씨라고 하는건지 모든게 거짓
    2016.06.08 12:44
  • 프로필사진 애니 내 국민학교 동창생 이영미가 이봉조 딸 2016.06.18 07:23
  • 프로필사진 애니 어렸을때 내 친구 이름이 이영미라 기억 합니다. 후암 유치원과 삼광 국민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라 기억이 나네요.
    그 시대 배우 이경희 딸도 동창이었고, 국회의원 야당 대변인 딸인 향이도 우리 다 같은 반이였죠. 유명한 집 애들이 많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영미집을 방문 했을때 피아노위에 이봉조씨 사진이 있어 어! 했더니 울 아빠야. 라더군요 (속으로 현미 남편인데 어떻게 된거지 어린 맘에 궁금했지만 영미에게 상처를 줄까봐 무서워 못 질문 했던 걸로 기억 합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영미 엄마는 매우 아름답고, 우와하고, 인격있어 보이는 교양이 있고 엘리건트한 분이였죠. 영미 형제가 한 4명 정도라 기억 합니다
    영미 엄마가 잘 놀다 가라고 과일을 깍아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어린 맘에도 그 분에게 외로움? 슬픔? 을 느꼈던 거 같아요.
    영미랑 향 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배우 이경희 딸 이름은 기억이 희미해 졸업 사진을 봐야 할 것 같네요 ^^
    집에 와서 울 엄마에게 이봉조 사진을 영미집에서 보았다고 얘기를 했더니... 현미가 부인있는 남자랑 바람피곤(빼앗곤?) 도리어 더 너무 당당하게 대결했다고 천한 딴따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그때 학부형끼리 친구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린시절 미국 이민와 그 옛날 친구들과는 완전 연락이 끈긴 상태고요.
    내 동창생들 다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기억하는 동창생이 있으면 연락하길 바랍니다.
    나의 한국이름은 김경애이고요. 이메일은 annie7k@iCloud.com
    아참! 영미랑 친했던 이유가 혹시 울 집에 있었던 서울대 학생 가정교사 (신방우 선생? - 기억이 희밋 함)와 함께 울 친구들과 같이 과외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팀에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우리가 방구선생이라고 놀렸었지요.
    다른 가정교사 한분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매우 멋있는 남자였고 내가 크면 이런 남자에게 시집가야지라 생각한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울 집에 가정교사로 있어 가난한 집안 사람인줄 알었는데 그 선생님의 집에 초대받고 가서 너무 놀란 적이 있지요. 우리보다 몇배나 잘 살고 인격있는 집안 이었습니다. 상을 차려 밥을 먹다가 맛 없다고 뱃트니까 선생님이 다시 입으로 집어넣으라고 해서 울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어린애에게 그러느냐라 하면서 인자하게 안 먹어도 된다하니 선생님이 너무 버릇없이 애들 키우면 안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우리 집이 아마도 그랬나봐요) 그러곤 내 입밖에 나온 음식을 자기가 먹어 너무 황송하고 고개가 숙여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멋있는 남자도 잘 살겠지요^^ 이분이 군대가면서 또 다른 서울대 학생 친구인 신방우(?)을 가정교사로 소개 시켜주고 떠났다고 기억 합니다
    .
    아~ 현미씨도 여자로서 맘 고생이 있었으리라 내 나이가 되니 이해가 가는군요. 상대를 잘 못 고르고 사랑을 잘못한 죄?
    아무튼 영미가족 모두 행복하길 바랍니다 ^^
    한국말 잘 못써 죄송 합니다 ^^
    2016.06.18 07:24
  • 프로필사진 지나다가 남편 바람피는 얘기하는 토크쇼에서 현미씨가 자기 남편 이봉조씨가 이러 저러한 사람들과 바람 폈다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현미씨 자신이 이봉조가 본 부인 있는 상태에서 바람피는 여자가 되었음에도
    남편의 바람 운운하는 것은 어이 없는 일이네요.

    자기의 선택으로 본 부인 피눈물 나게 만들며 첩으로 살았으면 노래만 열심히 부르며 살았어야지
    토크하는데 굳이 대중적으로 나서서 남편 운운 얘기하는 것은 자중해야할터인데 당당한 태도는 문제가 큽니다.

    젊어서부터 대중들에게 당당히 남편 운운하며 수많은 얘기들을 해왔으니
    죽기 전에라도 본부인에게 참회하는 고해성사라도 하면 좋을텐데요.

    현미씨처럼, 엄연한 기혼자임을 알고 난 후에도 사랑한다는 이유로 함께 살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보석을 탐이 나서 훔체서라도 내 것으로 해서 갖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2016.09.01 21:49
  • 프로필사진 멋진나라 암튼 첩이 첩꼴을 못본다는거 안됐네요? ㅡㅡ;;;;;; 2016.11.29 13:17
  • 프로필사진 한민구 원준희와 원유철은 별개인데 똑같이 보지 마슈.
    현미님은 호남신학교가 광주신학교 25년간의 주현철목사(영국 사돈이 있는 중국계 한인)를 알래스카 선교사로 보낼때 쯤 잠깐 6개월간 시카고 한인회에 ㄹ렸다 가셨을때에 주목사의 조카 주짐수씨를 양산중학교에 심어주고 주목사 . 조카 현미씨를 일본에서 모셔왔 고. 주현미씨를 역시 일본에서 모셔왔었죠. 그건 호남신학교가
    주선했습죠. 호남신학교 는 전국의 복지관 의 전 이름인 고아원을 한국세금으로 지어주고 키워달라고 청원웠었습죠. 2ㅔ14년. 광주 학동 전남대병원 앞에 양림동 호남신학교 광고 판이 크게 걸리게 했습죠.
    그리고 그 고아원들의 설립 유래가 아래와 같이 전해지고 있습죠. 한마디로 병주고 약주고 하는 거죠.
    그럼.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에서
    두동강난 한반도의 삼팔선은 멕아더(영국해군출신) 가 그었습죠
    1950년 6.25 때 일으킨 전쟁중에 미국계 친일파인 이승만과 짜고 중국 내의 영국인 (장개석 포함)이 북한으로 이미 잠입해 서 있었죠. 그 후속조치로 크린을 합니다. 그게 고아원 이었죠.
    일제때 중국에서 한국에 모셔져서 살던 현미의 부모님. 보육원출신 현미였던 거죠. 현미님.
    뿐 아니라 연예인 거의다가 보육원출신이고. 보육원 즉 고라원의 후신인 복지관 장애인공단 과 적십자 봉사자 출신들이 모두 다국적인이라서 그들 나라에 가면 귀한 대접을 받은데. 한국은 이미 신입사원에도 계급화가 진행되고 있어 이런 터무니없는 기사로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복지문화정치에 첨단을 걷는 다문화인들이 한국인 세금으로 만든. 문화체육부에 항의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2017.10.13 10:16
  • 프로필사진 2345 옛날엔 저런 첩 스토리 많았음.여자들이 지금처럼 능동적이지 못해서 남자에 목 매달고 살아서 그런듯 2018.03.30 23:36
  • 프로필사진 시바 왜전부현미씨를욕하시나
    본처도현미도잘못없다
    남자가나쁜놈인거지
    현미도피해자다
    2018.04.14 16:48
  • 프로필사진 유수미 헐..그 시대상을 생각하면 본부인 욕 못한다
    노전숙씨
    정말 대단하신거다
    2018.12.2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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