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신구 하진숙 러브스토리

우리 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2001년 이후 1.30명 밑으로 내려간 이후 계속 '초저출산국'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죠.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또 결혼한 후에도 아기를 낳지 않는 현상이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탤런트 중에서도 이미 40년 전에 비슷한 문제를 겪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원로배우 신구죠.

신구가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그리고 그의 환경이 오늘날과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네요.

 

신구 하진숙 결혼 사진

 

신구(본명 신순기)1936813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79살이죠.

(신구 학력 학벌)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중퇴)

(신구 프로필 및 경력) 1962년 연극 ''에 아버지 역할로 출연(데뷔작)

이후 연극 파우스트 등을 하다가 1969KBS 특채가 됨


허생전, 개국, 여명의 그날, 태조 왕건, 해뜨는 집, 미안하다 사랑한다, 허생전, 신들의 만찬, 백년의 유산 등의 드라마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간큰 가족, 모던 보이 등의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특이 사항으로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4주 후에 뵙겠습니다.'2002년 롯데리아 광고 '니들이 게맛을 알아?' 등의 유행어를 남긴 바가 있고, 현재는 이순재, 박근형, 백일섭, 이서진 등과 함께 예능 꽃보다 할배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명인 신구는 연극계의 대부 동랑 유치진이 지어준 것으로 유명합니다(본명 신순기).

 

 

신구의 젊은 시절 외모는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다소 수더분한 외모에 데뷔 초기부터 아버지 역할을 많이 맡게 되죠. 연극 데뷔작인 '소'부터 그랬으니, 말 다했죠.

게다가 연기력 역시 그리 좋지 않았기에, 신구는 남들보다 몇배의 노력을 하게 됩니다.

 

신구: "무대 위에는 결결이 내 땀방울이 떨어졌지요. 텔레비전은 무대와 메커니즘이 달라서 다른 노력을 해야 했어요. 녹화 당일 카메라 리허설 후 점심 먹고 슈팅 들어가는데, 점심때 스튜디오가 텅 비면 나는 밥을 먹지 않고 혼자 대본 리딩 연습을 했어요. 시간을 아껴 쓴 것이지요."

 

신구: "초기엔 주로 부정적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불만 없이 열심히 했어요. KBS 반공드라마 야간비행을 찍을 때 처음엔 비중 있는 역할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내가 밥도 안 먹고 열심히 하니까 작가인 김동현씨가 비중을 자꾸 늘려서 나중엔 전체 극의 가운데에 선 적이 있어요."


신구 젊었을때 과거 사진


 

작가가 분량을 늘려줄 정도로 신구는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신구의 열성과 노력은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연기에 목숨걸던 신구는 후배의 소개로 현재의 아내 하진숙(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신구: "연극 공부를 하다 후배 소개로 지금 아내를 만났다.

그런데 돈을 못 벌어 결혼을 빨리 못했다."

 

신구: "6년 연애에도 결혼 약속이 없어 아내가 미국으로 떠났다. 계속 편지를 보내 아내의 마음을 돌렸다. 연애하며 정이 들었는데 결혼 얘기가 없자 아내가 서운했나보더라. 미국에 있는 언니에게로 훌쩍 떠나버렸다."

 

당시 하진숙은 경남여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이화여대) 생물학과를 나왔으며, 미국에서 1년간 디자인 공부를 하기도 한 재원이었습니다(직업).

마음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네요. 결혼하기 전에 영영 결별부터 할뻔 했네요.


 

결국 신구가 쓴 편지에 마음을 돌린 하진숙은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급했는지, 신구와 하진숙은 결혼 2달만에 아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요즘 말로 속도위반(혼전임신)인데, 당시(1974) 신구의 나이가 워낙 많은 39살이었기에 그리 큰 흠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 늦은 나이이기에 이혼과 재혼이라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지만, 초혼이 맞습니다.)

 

신구: "마음이 급해 결혼도 서둘러 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나올 지경이 됐는데 계속 결혼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큰 흉이라 생각은 안 한다. 넉넉지 않았던 시절 함께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

 

 

당시 신구는 굉장히 늦은 나이였는데도 6년간 연애를 하고, 또 결혼을 미적거리다가 부인이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신구의 말대로 '돈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신구는 1972년에 처음으로 드라마에 얼굴을 내밀었고, 그후 80년대부터 안정적인 출연을 하게 되니까요.

  

 

그외에도 신구는 스스로를 자신의 동기들과 비교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신구는 1950년대 명문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왔고, 그의 동기로는 고건(전 국무총리), 이종찬(전 국가정보원장), 김우중(전 대우 회장), 이준용(대림산업 명예회장) 등이 있었습니다.

(동창이 아니라 같은 해에 공부를 했던 동기들임. 선후배들중에는 쟁쟁한 인물들이 더 많음.)

 

대부분의 고등학교 동기들이 정치, 경제, 관계 등에서 잘 나가던 시절이었기에, 신구는 더욱더 움츠려 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신구는 이미 좌절을 맛본 상태였습니다.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간 것도 서울대학교 상대에서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등록만 해둔 상태였거든요(당시 성균관대는 후기 대학이었음). 다음해에 재수를 해서 다시 서울대 상대에 지원했지만, 떨어져서 결국 군대를 가게 되었고, 서울대의 꿈은 영영 포기하게 됩니다.

 

이런 신구였기에, 이미 6년간 연애를 한 여자친구가 옆에 있지만, 조금더 성공한 다음에 배우자에게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고, 또 오늘날 청년들이 생각하고 있는 마음이기도 하죠.

 

사실 꽃보다 할배(꽃할배)에서 신구는 유독 명언과 어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말들이었죠. 신구 역시 젊었을 때 이렇게 좌절을 맛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이제 황혼을 바라보는 신구인데, 자신의 젊은 날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신구: "아내는 아내가 손해봤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가 손해를 봤다. 내가 특별히 잘해준 건 아니지만 특별히 죄진 것도 없다. 서로 돕고 사는 거다."

 

신구: "넉넉지 않았던 시절 함께 해준 아내가 고맙다."

 

신구와 부인 하진숙이 평소에도 서로 손해를 봤다고 티격태격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제 3자가 뭐라고 할 수가 없죠.

(노인분들이 그러는 모습이 재미있기는 하네요.)

 

다만, 신구의 말중에서 '서로 돕고 사는 거다.''넉넉지 않았던 시절 함께 해준 아내가 고맙다.'는 말은 깊이 새겨들을 만합니다.

남과 비교하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없는 살림을 남편과 아내가 같이 키워나가는 것이 진정한 결혼 생활의 재미가 아닐까 하네요.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