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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가

항왜 사야카 김충선 장군 후손 및 일본교과서의 평가 사실 임진왜란은 명분없는 전쟁이었습니다.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정벌'을 기치로 전쟁을 벌였지만, 사실 그 실상은 일본의 전국시대 이후에 팽창된 군사력을 소비하기 위한 전쟁이었죠. 따라서 병사들은 물론이고 다이묘와 사무라이중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임진왜란때의 항왜는 대략 1만명에 다다를 정도로 숫자가 많았음) 사야카 김충선 장군에 대한 글이 1편에서 이어집니다.김충선 장군의 업적과 이순신과의 서신 (스폰서 링크) 결국 도요토미는 전쟁전부터 나고야성에 전국 다이묘의 아내들을 인질로 잡아놓습니다.그러자 상당수의 다이묘와 사무라이들이 어쩔 수 없이 조선으로 침략하게 되었죠. 그리고 일본측 기록에는 없는데, 당시 프로이스라는 선교사가 로마에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남아 있습니다.. 더보기
사야가 김충선 장군의 업적과 투항, 이순신과의 서신 항왜란 임진왜란때 조선 측에 항복한 일본군을 지칭하는 말입니다.이런 항왜중에 여여문이나 김성인 등이 있는데, 사야카(한국명 김충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의 하나입니다. 사야카(일본명 혹은 별명인지도 불확실함, 전체 일본 이름이 전해내려오지 않음)는 굉장히 특이한 인물입니다(사야카 沙也可(さやか)). 그에 대하여 정확하게 기록된 사항은 '가토 가요마사의 좌선봉장(혹은 우선봉장이었다고도 함)'이었다는 점과 조총에 대하여 능숙했고 조총 부대를 이끌었다는 점, 그리고 한문에 대단히 능했다는 점입니다.관련이 있는 글서애 류성룡이 이순신을 모함했나? (스폰서 링크) 이 3가지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아래의 글이 이해됩니다.먼저 그동안 사야카에 대하여 잘못 알려진 사실 2가지를 먼저 정리합니다. 첫번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