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6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주영 가계도와 동생 정인영 정세영 정신영 하지만 이 사업 역시 오래가지를 못합니다. 1942년 일제는 '기업정리령'을 발동했고, 결국 정주영은 공장을 빼앗기게 된 거죠. 이후 정주영은 홀동광산에서 광석을 운반하는 사업을 하면서 3년동안 근근히 버티게 됩니다. 그러다가 광복 후에는 건설사업까지 진출을 했는데, 한동안 잘 나가던 정주영도 다시 6.25로 모든 것을 잃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스폰서 링크) . . 당시 정주영은 모든 것이 막막한 상황이었는데, 마침 정주영의 동생 정인영이 미군사령부의 통역장교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미8군의 발주 공사를 맡게 됩니다. 여기서 정주영 동생들의 학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네요.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난한 집안 형편상 정주영은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 되었습니다...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