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8 썸네일형 리스트형 사카모토 료마 일본 해군의 초석을 다지며 흥선대원군은 과연 서양 군사 문물의 놀라운 위력을 몰랐을까요? 그 역시 바보가 아니고, 그 점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를 비롯한 지배층이 쇄국을 선택한 것은, '국가의 발전'보다는 '자신들의 지배 체제 공고화'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개항을 통한 사회적인 변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이 점이 훗날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극단적으로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폰서 링크) . . 아무튼 짧은 에도 유학을 마친 료마는 고향 도사 번으로 되돌아간 다음에 도사 근왕당 (도사 출신의 하급 무사 중심의 존왕파)에 가입을 하게 됩니다.(당시 도사 번의 중진들은 막부파였음) 이후 료마는 탈번 (번의 허락없이 번을 떠남)해서 에도로 향하게 됩니다. (당시 탈번은 사형에 처해지는 중죄였는데, 료..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