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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탤런트 박해미 재혼 남편 황민과의 결혼 생활을 짚어보면서, 과연 동거가 한국 여자들에게 불리한가, 라는 문제도 함께 짚어봅니다.


(이전 글 참조) 박해미 전남편 임모의 데이트강간과 도청 사건


사실 동거란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는 반면에, 사회적으로 성적 문란함을 부추기는 안 좋은 제도이기도 하죠.


그리고 박해미 남편 황민에게는 백인 여자친구와 사귀 경험이 많았는데, 결국 박해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죠.


아무튼 박해미는 임성한 덕분에 인기 탤런트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박해미의 재혼 남편 황민과의 첫만남과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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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유라준)

박해미 친정 집안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는데, 사실 황민 역시 당시를 기준으로 15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재캐나다 교포였습니다.


게다가 박해미가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3년 동안 외국 공연을 한 다음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각시 품바' 공연에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되었죠.


박해미: "각시 품바 공연때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객석에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굉장히 섹시했어요. 마치 강렬한 헤드라이트처럼 나를 뚫어버릴 것 같았죠."


박해미: "원래 각시품바 공연은 혼자서 '허벌나게 오방난장'을 치는 작품인데, 마지막에 관객중에 한명을 데리고 나와서 결혼식을 하는 구성이었어요."


황민: "원래 부모님이 자식 교육을 위하여 캐나다 이민을 결정하셨어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가 15년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기 위하여 한국으로 왔어요."

(참고로 박해미 재혼 남편 황민 영어 이름은 샘 황이고, 당시 나이는 23살, 박해미는 31살로, 박해미가 8살 연상이었음) (박해미 나이차이)


(참고고 박해미 남편 황민 학력 및 경력)

미국 UCLA에서 의대를 다니다가 캐나다에서 화공학을 전공



황민: "한국에서는 함께 놀 친구도 없어서 심심했는데 누군가 품바 공연이 재미있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품바를 보러 갔는데, 여자가 품바로 나오는 걸 보고 희안하다고 생각했어요."


황민: "그런데 공연 중에 박해미씨가 객석에서 한 사람을 무대 위로 데리고 갔는데, 그 사람이 박해미씨의 장난에 마구 구겨지는 거였어요."


황민: "그리고 공연 마지막때쯤에, 여자 품바 (박해미)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는 거에요. 난 절대 나가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 품바가 제 손을 잡고는 무대위로 끌고 갔어요."


황민: "결국 얼떨결에 무대 위에서 여자 품바와 결혼을 하게 되었죠."


결국 공연이 끝난 다음에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황민의 집과 캐나다로 이민간 박해미의 친정 집안이 캐나다 벤쿠버에서 불과 5불럭밖에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황민은 처음에 시작된 호감으로 박해미의 연락처를 얻었고, 1주일 후에 박해미에게 전화를 겁니다.


박해미: "지금 공연이 끝난 다음에 여자 5명이서 양평에서 쫑파티를 하고 있으니까, 오고 싶어면 와요."


황민: "전 당시 양평이 어딘지도 몰랐기에, 차를 몰고 물어물어 결국 찾아갔어요. 그리고 이틀동안 다섯명의 여자들의 심부름도 하고 운전 기사 노릇을 했죠."


황민: "둘째날 에버랜드에 갔어요. 음악이 나오는데 갑자기 아내가 춤을 추기 시작하는 거에요. 일행들은 창피하다고 말리는데, 아내는 스스로의 홍에 겨워서, 자신의 춤에 푹 빠져 있더군요."


황민: "그런 아내의 모습이 참 좋았어요. 사실 그 전까지 백인 여자친구만 사귀었어요. 한국 여자들은 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내의 즉석 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한 눈에 반하게 되었죠."


황민: "사실 한국여자의 고리타분한 모습이 싫었어요. 너무나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도 부담스러웠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한국 여자들의 모습도 너무 남자를 간섭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동안 백인 여자친구들만 있었고, 한국 여자는 한번도 사귀어 보지 않았어요."


결국 황민이 박해미에 대한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박해미는 황민의 나이를 알게 되고서는 오히려 소극적으로 변합니다. 8살이라는 나이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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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미: "사실 그때까지 난 어린애는 남자로 안 봤어요. 나이 든 사람을 좋아했거든요."


박해미: "남편으로부터 느낌이 왔는데, 알고 보니 너무 어리더라고요. 그때 내 나이가 31살이었고, 남편 나이가 23살이었으니, 한창 풋풋할 때였어요."


박해미: "결국 남편을 데리고 KBS 방송국의 엄앵란쇼에 갔어요. 남편을 방청석에 앉혀놓고, 전 게스트로 출연해서 제 과거 이혼 이야기를 했어요."


황민: "그때 아내의 나이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결국 황민은 비자 문제로 다시 캐나다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불과 1주일만에 박해미를 보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박해미: "그가 캐나다로 돌아간 지 1주일 만에 짐을 싸들고 저를 찾아온 거예요. 과거에 한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었기에, 남편과의 만남이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내가 젊은 여자 후배들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죠."


박해미: "그래도 남편은 절 심하게 쫓아다니고 객기를 부리는 거에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해서 유치장에 넣기도 했어요."


박해미: "그런데 남편이 경찰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는지, 경찰로부터 전화가 와서는, “아줌마 웬만하면 데리고 가세요”라고 말하더군요. 하하."


결국 박해미는 황민과의 동거를 결심하게 됩니다.


박해미: "남편에게 불같이 끌려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러면서도 ‘이러다 끝나겠지. 이러다 끝나고 그는 다시 캐나다로 되돌아 가게 되어도, 별다른 혼란은 없을거야.' 라는 생각도 했어요."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었지만, 2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황민과의 사랑을 믿지 않은 박해미가 임신을 결사코 하지 않았다는 것, 두번째 황민의 집안에서 8살 연상이었던 박해미와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황민: "난 정식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었는데, 아내늘 절대 반대였어요. "난 배우다, 아직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라고 했어요."


아마 박해미가 이런 변명을 댄 것 같네요.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동거한지 5~6년만에 비로서 박해미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 때쯤 되어서는 황민을 믿는 마음이 많이 생긴 모양이네요. (박해미 재혼 남편 황민 직업 외국 맥주회사 직원)


황민: "2000년 초였어요. 제가 외국 맥주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갑자기 아내가 임신 소식을 알렸어요. ‘아, 나를 위해서 드디어 아기를 가져줬구나’라는 생각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하지만 정식 혼인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황민의 집안에서 이를 반대합니다.

8살 연상에 이혼녀와의 결혼이니, 대다수의 부모들이 반대할 것 같네요.


황민: "아내와 동거하는 동안, 한동안 캐나다의 부모와 의절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황민: "아들이 태어난 다음에 캐나다로 전화를 걸었어요.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지어주십시오."라고 했더니, 너무 놀라셨는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전화를 끊었어요."


황민: 그런데 두시간 후에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어요. "넌 이놈아! 의절을..." 라고 호통을 치시길래, 다시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전화는 끊어도 아이 이름은 성재라고 하고 영어 이름은 리차드라고 해라."라고 하셨어요. 결국 부모님께서 우리 부부를 받아들여 주신 것이죠."


이렇게 해서 박해미는 둘째 아들 황성재를 낳게 됩니다.

(뮤지컬배우 탤런트 박해미 자녀 자식) (박해미 가족 관계)


사실 황민과의 재혼 후에도 박해미는 한동안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황민 직업도 변변찮았고, 박해미가 임신 때문에 한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황민: "처음에 캐나다에서 가져온 돈이 바닥난 다음에는 등학교 동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주류유통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황민: "2000년 초였어요. 제가 외국 맥주회사에 다닐 때였죠..."


황민: "아내가 임신 6개월때 민, 형사 사건이 연달아 터졌을 때는, 전 삼촌 회사 일을 도와주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어요."


황민이 무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임신한 아내를 위하여 최선을 다했네요.


박해미: "2000년대 초반에 남편이 회사에서 해고된 후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었다. 그때 남편이 자기 신장을 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나에게 전화해서는 울면서 ‘하긴 해야겠는데 무섭다’라고 하더라."


나중에 황민이 아내와 함께 뮤지컬 제작자 겸 배우로도 활동을 하게 되는데, 순전히 박해미의 힘이 크게 작용합니다.


박해미: "사람들은 제가 많은 상대와 쉽게 키스할 수 있을 것처럼 생겼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 동안 입 맞추는 신에서 한 번도 제대로 맞춘 적이 없어요. 피치 못할 때는 살짝 피해 입술 옆이나 볼에다가 했죠."


그런데 2010년 무대에서는 제작진의 배려로 황민이 박해미의 옛연인 역할로 출연했고, 두 사람은 무대위에서 격렬한 키스를 나누게 됩니다.


참고로 박해미가 둘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 발생한 민, 형사 사건이란 무엇일까요?


박해미: "2000년대 초반에 나름대로 뮤지컬 제작도 하고 기획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못되었다. 생각 외로 돈이 많이 들어갔고, 능력 부족으로 몇 억 빚만 지고 망해버렸다."


박해미: "게다가 저희 연극 스태프 중 한 사람이 사기를 쳐서, 내가 법정 구속을 당할 위기에 몰렸다."


박해미: "창작뮤지컬에 많은 돈을 들였는데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잘 안됐다. 그래도 열심히 한 스태프들 돈은 챙겨줘야 하지 않나. 끝나고 나니 나한테 남은 것은 마이너스 5억원이었다."


결국 박해미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검찰청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게 됩니다. 나중에 무혐의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가난했던 두 사람에게는 업친 데 덮친 격이었죠.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황민은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찾아서 일을 하려고 했고, 박해미 역시 개인 레슨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게 됩니다.


그러다가 박해미가 맘마미아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임성한의 하늘이시여에 출연하면서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8살 연하남과 사는 박해미에게 동거란 무엇일까요?


사실 한국 사회에서 동거란 여자에게 불리하다는 고정관념이 있죠.

박해미의 생각은 어떨까요?


"전 동거가 여자에게 불리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 헤어지는 것보다는 동거를 해보고 결혼하는 것이 더 좋아요."


박해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성적 궁합까지도 다 맞춰볼 수 있으니까 더 좋죠. 하지만 아이 문제만은 확실히 해야 해요.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피임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좋죠."


동거 유경험자로써의 좋은 충고가 아닌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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