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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나이는 56살입니다. 1962년 1월 30일 출생이죠. (황교익 나이)

그리고 황교익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입니다. 방송에서는 황교익이 경상도 사투리와 서울 표준말의 짬봉으로 나오는데, 어릴 때의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 영향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죠.


일부에서는 황교익이 일부러 사투리를 사용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사실 사투리는 황교익의 젊은 시절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황교익은 대학에서 배우가 되고 싶어했지만, 결국 사투리때문에 그 꿈이 좌절되었으니까요.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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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어울리지 않겠지만 무대에 서고 싶어 배우를 지망했다. 하지만 경상도 사투리에 잘 생기지도 못한 외모와 무대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해 연극연출로 방향을 틀었다."


황교익: "(그렇게 대학 시절에) 연극하고 공연 보러 다니고 술 마시고. 연극은 내 학교생활의 숨통이자 전부였다."


사실 황교익의 대학 생활보다, 더 어린 시절의 일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일부에서 황교익이 일뽕, 일빠라고 비난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황교익은 일본 영향을 무척 어릴 때부터 많이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까요.


(황교익 학력 학교)

마산 중앙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사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프로필 경력)

농민신문 입사 (농민신문에서 13년동안 근무)

향토지적재산본부 연구위원실 연구위원



그리고 맛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여러 방송 (트루맛쇼, 수요미식회, 김어준의 뉴스공장,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등)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지게 됩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요식업계 등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죠.


참고로 이전에 황교익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백종원과 이영돈, 강레오 비판글이나, 천일염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주장 등은 이전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전 글 참조)  황교익 백종원 비판과 황교익 강레오 이영돈 저격의 차이점

 황교익 천일염 비위생적 진실, 황교익의 이명박 저격



현재는 맛칼럼니스트로 유명한 황교익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황교익: "외할머니가 일본 교토에서 반찬가게를 했는데, 그런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황교익: "그래서 자라면서 먹었던 우리 집 음식은 일본 음식과 우리나라 음식이 섞여 있는 묘한 맛이었다. 어렸을 때 학교 소풍날이면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던 유부초밥을 싸갈 정도였으니까."


황교익: "나중에 대학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서울 음식을 먹으면서 (황교익이 서울의 중앙대에 입학하면서, 서울에서 유학 생활을 하게 됨) 이게 음식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황교익: "그때서야 우리 외할머니, 어머니 솜씨가 매우 좋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황교익: "(어렸을 때 마산에 살때) 외식을 하면 일반 사람들의 맛과 우리 집의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외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밑반찬 이것저것을 집어먹으며 음식품평회를 했다."


황교익: "(외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반찬이 근처 식당 다른 반찬 맛과 같은데 어디서 대량으로 구입해온 것 아니냐, 반찬의 기본인 김치가 제대로 담가진 맛이 아닌 것 같다 등등 (맛 평가에) 유별났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황교익이 자랐는데, 이런 부분들이 나중에 그의 미식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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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대학 시절 황교익의 장래 꿈은 신문 기자였습니다.

황교익: "어차피 내 꿈은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기사에 자유가 보장되고 또 시나 소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내가 쓴 기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다면, 기자로도 좋았다.)"


결국 대학 졸업 후 황교익은 농민신문에 취직하게 됩니다.

원래는 여러 언론사에 입사 시험을 쳤지만, 결국 다 낙방하고 농민신문에 가게 되었죠.


황교익: "재학 중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고, 또한 연극 연출을 열정적으로 했기 때문에, 졸업 시즌이 돼서 본 언론사 시험들은 전부 미역국을 먹었다.(떨어지게 되었다)."


황교익: "결국 가게 된 곳이 농민신문이었는데, 사실 난 몇 년 다니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황교익: "그런데 90년대 초 회사에서 보내준 일본 연수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시까지만해도 농산물과 관련하여 생산자 (농민) 입장에서 글을 썼는데, 소비자 (먹는 사람) 입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황교익: "그런데 당시 일본은 미국과 유럽 등을 앞서는 경제 대국이었다. 그리고 당시 (90년대 초) 일본에서는 음식 문화가 굉장히 발달하던 시기였다. 텔레비전을 키면 현재의 먹방 (먹는 프로그램)만 나왔고, 서점에도 음식 관련 책들이 쫘악 깔렸던 시절이었다."


황교익: "그걸 보고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우리나라도 이렇게 음식에 주목하는 시기가 올 것이란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이때부터 황교익은 본격적으로 맛 칼럼니스트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황교익이 결혼을 한 모양이네요.

황교익의 아내는, 남편의 '음식 전문 기자'가 되는 것에 굉장히 반대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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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 황교익 부인 아내의 반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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