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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야기/김우중

천재적인 사업가 기질은 어릴 때부터

김관중: "나중에 보니 어머니 손가락이 부어올라서 벌겋게 되었어요."


6.25 피란 무렵부터 김우중 일가는 대구에서 지내게 됩니다. 아버지 우당이 대구 사범학교 교장을 오래 역임했고, 김우중 등도 대구에서 태어나는 등, 대구를 잘 알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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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김우중의 형들인 김관중과 김덕중 등은 군대에 갔기 때문에, 김우중이 사실상의 소년 가장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1951년, 당시 김우중의 나이는 16살이었는데, 할 일이라고는 신문 배달밖에 없었습니다.

이 당시의 일화로 김우중의 기업가 체질 (혹은 장사꾼 자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우중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청년들의 우상이 되었지만...


우선, 김우중은 대구의 방천시장을 주요 판매시장으로 삼습니다. 집집마다 신문을 돌리거나, 혹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신문을 파는 것보다, 수요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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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요가 많은 만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당시 방천시장의 상인들은, 소년 신문판매원들에게 좋은 고객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김우중은 '빨리 달리기'를 선택했습니다.

신문사에서 신문을 받아서 4km 떨어진 대구의 방천시장에 제일 먼저 도착하면, '경쟁자없이 신문을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잠깐의 독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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