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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부인은 변중석 여사인데, 정주영 고향의 옆마을 출신이죠.


당시 정주영은 경성에서 쌀가게 점원으로 일을 하던 때였고, 둘의 중매는 정주영의 삼촌이 주도합니다. (정주영 회장 넷째 숙부가 당시 이웃마을이었던 변중석 여사와 같은 마을에 살았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주영 집안은 무척 가난했고, 정주영 아내 변중석 집안은 그나마 좀 사는 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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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결혼 당시 정주영 나이는 25살, 변중석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변중석: "아버지께서 윗마을 총각이 서울서 선을 보러 내려왔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방에서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떨고 있었죠."


변중석: "숨을 죽인 채 바깥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총각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확 열렸어요."


이때 변중석은 놀라서 머리를 숙였고, 정주영은 아내가 될 사람의 머리만 잠깐 쳐다봅니다.

그리고 한달 보름 뒤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어른들의 결정을 젊은이들이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죠.


변중석: "첫날밤, 무슨 사람이 이렇게 크고 무섭게 생겼나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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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을 치룬 정주영은 바로 경성의 쌀가게로 일하러 떠났고, 아내에게 "3개월만 시부모님 모시고 살아라. 곧 서울로 데려가겠다."란 말만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정주영은 쌀가게 주인으로부터 쌀가게를 인수한 다음에 부인 변중석을 서울로 데리고 왔죠.


변중석: "당시에는 교통 수단이 적절하지 않아서 강원도 통천에서 서울까지 걸어갔어요."


변중석: "회장님 (참고로 변중석 여사는 남편을 회장님이라고 부름)따라 처음 간 곳이 동숭동 뒷산 ‘낙산’이라는 산동네였어요. 시골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작은 초가집에서는 살았는데... (산동네 판잣집을 보고는 ) 어찌나 서글프던지, (남편 정주영에게) 이런 곳에서 어찌 사느냐, 시골로 되돌아가겠다고 했어요."


변중석: "그러니까 회장님이 ‘서울에선 다들 이렇게 산다, 조금만 참으면 우리도 남들처럼 잘살 수 있다’고 절 달래셨어요. 그래서 결국 눌러앉기로 했는데, 솔직히 생활이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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