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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총 4개의 글중 네번째 글


엄홍길 실체와 여성 산악인 오은선 문제,

그리고 한국 산악계와 일본 산악계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왜 일본은 한국보다 14좌 등반, 16좌 등반에 뒤쳐졌음에도, 오히려 한국을 비웃을까요?


# 목차

* 엄홍길 16좌 성공에 대한 비판

* 여성산악인 오은선 사건

* 한국 산악계의 문제점

* 엄홍길 실체와 진실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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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 엄홍길 박무택 사망 진실, 엄홍길 휴먼원정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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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홍길 16좌 성공에 대한 비판


사실 세계 산악계나 일본 산악계에서는 더 이상 14좌 등반 성공, 16좌 등반 성공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등반을 했고, 앞선 선구자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안전한 루트가 많이 개발되었기 때문이죠.


원래 히말라야 등반이 칭송받는 이유는, 보통 사람들은 결코 성공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칭송을 받는 것인데, 마치 동네 앞산이나 뒷산을 오르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리면 더 이상 '오지 탐험'이나 '죽음을 무릎쓴 등반'이라는 수식어가 필요없게 되죠.


결국 등산 장비의 발전과 선구자들이 취득한 정보 등으로 히말라야 등반은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라, '동네 앞산을 등산하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려운 정도가 됩니다.


마이클 코더스(미국인 기자): "오늘날 에베레스트는 8000m급 높은 산봉우리중에서 가장 오르기 쉬운 산이 되었다. 사다리나 고정로프 등 등산 장비의 발전 덕분에, 매듭짓는 법조차 모르는 초심자도 체력만 있으면 등반이 가능하게 되었다."


마이클 코더스(미국인 기자): "이제 에베레스트는 돈 많고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고급 관광지가 되었을 뿐이다."


결국 일반인들이 너무나 쉽게 히말라야를 정복하자, '티롤 선언'이 나오면서 산악인의 책임을 강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2002년 9월에 있었을 정도로,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 산악계는 너무나 쉽게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외국의 분위기가 잘 전달되지 않았고,

일반인들은 엄홍길을 비롯한 전문 산악인들의 업적 달성을 칭송하기에 바빴습니다.

(물론 엄홍길을 비롯한 전문 산악인들이 아주 쉽게 히말라야를 등반했다는 뜻은 아님)(엄홍길 실체)

엄홍길 사진

* 여성산악인 오은선 사건


게다가 엄홍길을 비롯한 국내 산악인들은 '등반의 질'에 대한 지적도 받습니다.

'등반의 질'이란 '초등(최초로 오름)', 새로운 루트 개척, 겨울 등반,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 등을 높이 쳐줍니다.

당연히 불굴의 탐험 정신이 잘 반영된 지표들이죠.


하지만 엄홍길 박영선 한왕용등 이전에 14좌를 완등한 사람들은 이 등반의 '질'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죠.

세명 모두 초등이나 새로운 루트 개척은 없었고, 산소통에 의지한 등반도 엄홍길 3개, 박영석 5개, 한왕용 3개로 14좌 완등자 전체 19명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2010년 5월 기준)


사실 불굴의 탐험 정신은 그만큼 어려움을 돌파하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칭송을 받는 것인데,

이미 앞선 사람들의 길을 그대로 뒤따라가게 되면, 절대 높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죠.


또한, 오은선 사건도 터집니다.

(엄홍길 16좌 여성 산악인 오은선 14좌 여성 산악인)

오은선은 세계 최초로 여성의 몸으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오은선은 14좌 완등이 사실인가에 대한 논란은 별도로 하고,

이미 발전된 등반 장비와 선구자들이 개척해 놓은 루트와 정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이탈리아의 한스 카머란드(세계 최초 14좌 완등자 메스너의 등반 파트너): "오은선에게 어떤 축하도 해줄 수가 없다. 팀이 그녀를 정상에 데려다줬을 뿐이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산에 오르는 것을 이제 더 이상 등반이 아니다."


한스 카머란드: "이것은 이제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에 출전한 선수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과 같으니까."

오은선 박무택 사진

이것이 바로 세계 산악계의 분위기이고,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한국 산악계가 왜 이렇게 망가진 것일까요?


분명 엄홍길의 초심은 순수했습니다.

산을 사랑했고, 산에 미쳐서 산을 올랐을 뿐이죠.



* 한국 산악계의 문제점


그리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일부 기업들만이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산악인들을 지원했을 뿐이죠.


하지만 2000년대 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많이 달라집니다(사실은 90년대 중반부터 그런 조짐이 보임).

산악 장비 업체들이 업적과 실적을 강조하면서, 너도나도 경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국내 산악인들은 '업적주의', '성과 지상주의'에 빠져서 '세계 최초'란 타이틀만 염두에 두었을 뿐, 더 이상 '등반의 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죠.


즉, 일본은 능력이 부족해서 14좌 완등, 16좌 완등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런 분위기에 공감하고, 등반의 질에 대해서 고민했을 당시에,

세계적인 흐름에 어두웠던 한국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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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2000년 이후에 나타난 한국 산악계의 '업적주의'와는 별개로,

엄홍길의 초심, 그리고 산을 오르면서 맞닦뜨린 수많은 위험과 이를 극복한 지혜는 분명 존중받아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에베레스트 14좌란 말을 모를 때부터, 그는 산에 미쳐서 산을 온전히 오르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이니까요.



* 엄홍길 실체와 진실


마지막으로 엄홍길의 인생이 녹아 있는 명언 한마디입니다.

엄홍길: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눈앞에 아무리 안 좋은 상황이 닥쳐도, 그게 영원한 것이 아니더군요. 시간은 흘러가니까요."


엄홍길: "실패를 하게 되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지금의 이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앞으로 내가 더 큰 시련을 겪었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이 정도는 내가 감수할 수 있다고요."


엄홍길: "비록 실패를 하더라도, 더 잘되기 위하여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이라고, 의연하고 담담하게 (실패를) 받아들여 보세요."


엄홍길: "그리고 참고 이겨내야겠다는 자신감,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게 중요해요.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인데 마냥 푸념만 하고 있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으니까요."


실제로 엄홍길은 첫번째와 두번째 히말라에 도전에 실패하고, 세번째만에야 성공하게 됩니다.

만약 엄홍길이 실패가 두려워서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면, 훗날의 영광은 전혀 없는 것이 되겠죠.


엄홍길의 성공은, '실패를 했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던 도전정신' 덕분인 것 같습니다.

이것도 '불굴의 의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했더라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두번, 세번 도전한 것'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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