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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총 2개의 글중 두번째 글


가수 박상철 이혼 루머가 왜 나왔는지,

그리고 박상철 부인(아내) 김점숙과의 결혼 생활은 어떤지 짚어봅니다.


# 목차

* 박상철 부인 김점숙과의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 박상철 가수가 되기 위하여

* 박상철 김점숙의 생각

* 박상철, 욕을 먹으면서도 홍보를 해서

* 박상철 이혼 루머에 대한 입장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박상철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2)

박상철 무조건 빵빵 노래모음과 과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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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철 부인 김점숙과의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박상철 부인 김점숙은 박상철보다 2살 연하입니다.

박상철이 삼척에 내려와 다른 가게에서 미용사로 일할 때 만나게 되었죠(후에, 박상철은 자신의 가게를 오픈함. 가수 박창철 부인 김점숙 직업).


1991년 당시 박상철은 25살, 김점숙은 23살의 어린 나이로 결혼식을 올립니다.

(가수 박상철 배우자(와이프)김점숙)

그리고 박상철은 '박상철 헤어아트'를 열고, 두 사람은 부지런하게 일해서 사업이 번창하게 됩니다.


참고로 박상철은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습니다.

(박상철 자녀(자식))(박상철 가족 관계)


그러다가 박상철은 1993년 삼척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하게 됩니다.

박상철 부인(아내)사진, 박상철 가족 사진

* 박상철 가수가 되기 위하여


박상철: "미용실을 하면서도 가수가 될 꿈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게 자꾸 세월만 가는 거예요. 그때(1993년) 전국노래자랑이 삼척에서 열렸어요. 제가 거기서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를 불러서 1등을 했죠."


박상철: "그 1등 상장을 가지고 전국노래자랑 PD 선생님을 만나서 가수를 시켜달라고 졸랐어요. PD 선생님이 "나는 가수를 시켜주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무척 난감해하셨는데도, 제가 떼를 막 썼죠."


박상철: "결국 제가 그 분을 놓아드리지 않자, 그 PD선생님이 작곡가 박현진씨에게 저를 소개시켜 주셨어요."


박현진은 바로 '신토불이'의 작곡가입니다.


박상철: "이튿날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박현진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1주일에 한번씩 삼척에서 서울로 올라가서 노래 수업을 받았죠."


그런데 1993년 가수가 될 기회를 집은 박상철은 2000년에야 비로서 '부메랑'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던 걸까요?

* 박상철 김점숙의 생각


박상철: "당시 박현진 선생님께서 저에게 여러번 권하셨는데, 제가 마다했어요. 당시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댄스 음악이 대세였기 때문에, 트로트가 설 자리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는 다시 발라드가 대세였고, 그 이후에 트로트의 시기가 오리라고 생각했어요."


박상철: "음악은 돌고 도는 거잖아요. 그래서 '발라드 다음은 트로트다'라고 생각하면서 본격적으로 데뷔를 준비했어요."


그렇다면 박상철이 가수가 되겠다는데에 아내 김점숙은 반대하지 않았을까요?


박상철: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이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절대로 막지 않겠다'라고 각서를 써뒀어요(웃음)."


김점숙: "사실 남편이 서울로 올라가지 전에 이혼도장부터 찍고 가라고 반대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결혼전에 남편과 한 약속도 있고, 또 남편의 평생 소원이라는데, 끝까지 반대할 수는 없었죠."


박상철은 2000년 데뷔 앨범 '부메랑'은 실패했지만, 2002년 '자옥아'는 어느 정도 호응을 얻게 됩니다.

이때 박상철의 행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네요.

* 박상철, 욕을 먹으면서도 홍보를 해서


박상철: "'자옥아'부터는 홍보를 적극적으로 했어요. 매일 혼자서 (매니저도 없이) 방송 3사 라디오국을 쉴틈없이 드나들면서 PD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노래를 홍보했죠."


박상철: "제가 너무 많이 찾아가서 그런지, 어떤 방송국 간부는 저에게 책을 던지기도 하더군요."


결국 박상철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라디오에서 '자옥아'가 조금씩 나오게 됩니다.


박상철: "제 얼굴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TV는 사랑을 싣고’ ‘솔로몬의 선택’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사랑과 전쟁’등의 재연 프로그램에 연기자로 출연하게 되었죠. 솔직히 TV에서 연기를 가장 못하는 사람이 아마 저일 겁니다."


박상철: "또, 문화센터 노래교실에 나가서 주부님들을 대상으로 노래도 가르쳤어요. 그리고 동대문의 두타, 밀리오레 등 행사장에 많이 출연했고요."

결국 박상철은 재연 프로그램으로 얼굴이 친숙하게 되었고, 또 노래교실을 통하여 인연을 맺은 주부들을 열광적인 팬으로 확보하게 됩니다.

나중에 박상철이 MBC 가요큰잔치에 힘들게 출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박상철의 주부팬클럽이 객석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고, 음악 PD들이 박상철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죠.


이렇게 해서 '자옥아'가 결국 히트를 치게 되었는데,

'하면 된다'라는 박상철의 정신이 정말 놀랍네요.


소속사의 자금력이나 홍보력이 없는 무명가수 박상철이, 본인의 노력과 '맨몸으로 부딪히는 정신'만으로 거대 기획사들의 조직력을 뛰어넘고 인기를 얻게 되었으니까요.

아마 위에서 언급했던, 박상철이 특전사에서 배운 정신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 박상철 이혼 루머에 대한 입장


박상철은 자옥아 이후에도, 무조건, 꽃바람, 황진이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박상철의 인생 역정이 2013년 영화 전국노래자랑으로 영화화되었죠.

(실제 전국노래자랑의 봉남이의 실제 모델이 박상철임)

어찌보면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영화보다, 박상철의 인생이 훨씬 더 영화같지 않나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되자, '박상철 이혼', '박상철 재혼'이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죠.

한마디로 돈과 인기를 얻고 나니까, 조강지처를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의 의혹이 루머로 퍼진 것이죠.


박상철: "제가 ‘자옥아’로 인기를 얻으니까, '박상철이 이혼했다'라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가 (아무 문제 없이 잘산다고 보여주려고) 아내와 함께 방송에도 나갔고요."

박상철: "그러니까, 이번에는 ‘방송에서 봤는데 박상철 부인 얼굴이 틀리다’라는 루머가 퍼지는 거예요. 말문이 다 막히더군요."


박상철: "하지만 제가 와이프 복은 좀 있어요."


확실히 박상철은 1993년부터 가수가 되기 위하여 삼척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했고, 2002년에야 비로서 '자옥아'로 빛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생활은 박상철 부인 김점숙이 꾸려나갔죠.


이런 조강지처는 절대 버려서는 안 될 것 같네요.


(박상철 김용임)

김용임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김용임 이혼 사유,김용임 전남편과 이혼후에 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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