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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김소향 결혼, 김소향 남편 등은 없습니다.

과거 김소향이 (수정), 미국 브로드웨이 도전을 성공적으로 치뤄냈었죠.


김소향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2)

뮤지컬배우 김소향 성형전 과거 폭로된


# 목차

* 김소향 브로드웨이 도전 이유

* 김소향 뮤지컬 미스 사이공 진출 결과

* 뮤지컬배우 김소향 남편 없음

* 김소향 한국 컴백 이유

* 김소향의 깨달음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김소향 브로드웨이 도전 이유


이후 김소향은 미국 무대에 도전합니다.


김소향: "(성형수술 전에) 한국에서 많은 작품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공연하다 보니까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또한 마침 언니가 뉴욕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2년에 한 번 언니와 공연을 보러 뉴욕에 왔었다."


김소향: "그리고 2010년 뉴욕에 왔을 때 뉴욕필름스쿨 광고 보고 한국으로 귀국한 다음에 반신반의하면서 지원했다. 다행히 많은 장학금을 받고 2011년 뉴욕에 공부하러 오게 되었다."


김소향: "(공부를 하면서) 미국의 뮤지컬 시장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내가 미국에 남는다고 하자 다들 미쳤다고 하더라. 한국에서 (10년동안) 쌓아놓은 것을 놔두고 왜 미국으로 가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소향은 이미 지난 깨달음을 통하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바로 미국 무대에 도전을 하게 되었죠.


김소향: "저는 (성격상) 집시의 경향이 강해서 유명한 것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택한 것이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뮤지컬배우 김소향 사진

* 김소향 뮤지컬 미스 사이공 진출 결과


하지만 김소향은 원래 미국의 액터스 에쿼티(Actors’ Equity, 미국 배우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비조합원이었습니다.

미국은 배우조합 조합원과 비조합원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하죠.

(혹은 배우조합 조합원들의 권리가 잘 보호되고 있죠.)


김소향: "제가 비조합원이었을 때는 매일 새벽 오디션 장소에 가서 저녁 6시까지 기다렸어요. 그리고는 "오늘 비조합원 오디션은 없다"라고 하면, 울면서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김소향: "하지만 조합원이 되니까, 정해진 오디션 날짜에 몇시에 오디션을 보겠다고 통보하면 되었죠."

김소향: "(조합원이 되기 전에) 미국 뮤지컬 ‘왕과 나’, ‘올리버’ 등에 출연했는데, 그때는 3달 공연을 출연료가 40만원 정도였어요. 하지만 조합원이 되면, 최소 출연료만으로도 10배 가까이는 되죠."


확실히 대우가 천양지차네요.

그렇다면 김소향은 어떻게 미국 배우조합원이 될 수 있었을까요?


김소향: "전 일종의 도박을 했어요. 처음에 ‘미스 사이공’의 ‘지지’ 역할을 제안받고 비행기나 호텔 등의 편의도 다 필요없으니, 그냥 미국 액터스 에쿼티에 가입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김소향: "다행히 절 좋게 봐는지, 제 조건이 수락이 되었어요. 운이 좋았던 셈이죠."


결국 김소향은 미스 사이공의 '지지' 역할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고, 또 한국 배우로 최초로 미국 배우 조합에 가입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성형수술 이후의 공백기를 미국 도전으로 풀었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 뮤지컬배우 김소향 남편 없음


참고로 김소향은 이렇게 미국 생활을 하다가 (수정)

(뮤지컬 배우 김소향 배우자(신랑)은 없음)


사실 김소향의 영어 발음이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원어민들과는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수정)


김소향: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출연할 당시에) 미국에 온 지 2년이 됐지만, 아직도 언어가 엄청 안 된다. 사실 30년 넘게 한국어 썼잖나."


김소향: "물론 한국에서 영어로 된 노래를 많이 불렀기에, 특유의 한인 액센트가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큰 관건은 영어다. (수정)"


미스사이공 출연 이후 김소향은 다시 한국으로 컴백하게 됩니다.

자신의 꿈이라는 미국 진출을 어렵게 했는데,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걸까요?

* 김소향 한국 컴백 이유


김소향: "원래 제 꿈은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미국에서 3년동안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니, ‘내 나라말처럼 좋은 게 없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김소향: "(모국어이기에) 내 입에 맞게 개사를 할 수 있고, 대사를 고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죠. 실제로 미국에서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원어민의 영어 실력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김소향: "또한 제가 동양인이라는 한계도 있었어요. 한국인같은 아시아계는 동양인 역할만 출연할 수 있어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아이다’도 할 수 있고, ‘페임’도 할 수 있잖아요."


결국 귀국 이후 김소향은 국내 무대 위주로 활동하게 됩니다.

비록 자신의 꿈이었던 브로드웨이 무대에 대한 환상은 깨졌지만,

그래도 자신의 꿈을 위하여 노력하고, 도전하고, 성취했던 열정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네요.


처음부터 큰 꿈이 없는 사람과, 큰꿈을 이루고 허와 실을 파악한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죠.

* 김소향의 깨달음


김소향: "제가 20대일 때는 독기서린 시절도 있었어요. ‘난 꼭 성공할거야, 반드시 저 배우를 누르고, 내 더 잘해내야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 보다는 ‘저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지’에 더 신경썼던 시절이었죠."


김소향: "하지만 미국을 다녀오고 나서, 그런 행동이 얼마나 바보같고, 또 스스로를 죽이는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김소향: "과거에는 그런 마음가짐때무넹 저 스스로가 먼저 지쳤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라이벌들을) 도와줘요. 그들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이 내가 더 좋은 배우가 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김소향 차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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