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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총 2개의 글중 첫번째 글



김동건 아나운서 가발 루머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김동건 가족사가 어떤 것인지 짚어봅니다.


사실 김동건이 노무현 정권때 탄압을 받았음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상당히 높이 평가할 만하죠.


(김동건 이미자)

이미자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이미자 남편 김창수와 딸 정재은- 전략적 행동


(스폰서 링크)


# 목차

* 김동건 가족사 어린 시절

* 김동건 아나운서 꿈을 꾸면서

* 김동건 아나운서 가발 루머의 진실

* 노무현 정권때의 김동건 퇴출 사건

* 김동건의 의연한 태도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MC 겸 아나운서 김동건(본명)은 1939년 11월 25일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납니다(김동건 아나운서 고향 이북 황해도). 올해 78살이죠(김동건 아나운서 나이).

(김동건 학력 학벌)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초등학교,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교육심리학과

((김동건 프로필 및 경력) 1963년 동아방송 아나운서 1기 공채로 데뷔


이후 가요무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한국 한국인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습니다.


김동건 아나운서 사진


* 김동건 가족사 어린 시절


김동건 아나운서에게 부모님은 각각 2분입니다.


김동건: "친어머니는 내가 3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고 들었다. 북한의 우리 고향에 묘가 있는데, 아직까지 찾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김동건: "결국 이모를 어머니로, 이모부를 아버지로 알고 자랐다. (두분이) 한 번도 친어머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어머니(실제로는 이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진 석 장을 주시면서 생모 이야기를 하셨다."


김동건이 아주 어렸을 때 불행을 당했지만, 그래도 이모와 이모부의 따뜻한 보살핌속에서 잘 자란 것 같네요.


김동건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에 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 김동건 아나운서 꿈을 꾸면서


김동건: "국민학교 시절에 어떤 라디오를 들었는데, 그 아나운서 목소리가 참 좋아서 '나도 장래에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김동건: "중학교때는 다들 어려워서 도시락을 보자기가 아니라 신문지에 싸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난 친구들 도시락의 신문지들을 펴서 뉴스를 아나운서처럼 읽고, 반친구들은 옆에서 아나운서와 똑같다고 하며 모여서 듣기도 했고요."


이후 김동건은 대학교 1학년때 KBS 아나운서 시험을 보게 되는데,

당시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합격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또한번 더 KBS 아나운서 공채에 지원했다가, 동일한 이유로 불합격이 된 다음에, 이번에는 새로 생기는 동아방송국 시험에 지원해서 마침내 합격하게 됩니다(1963년).


김동건: "그때 어머니가 아나운서는 춥고 배고픈 직업이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 오셔서, 내가 아나운서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께 3년만 해보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관두겠다고 말씀드리고, 시작했다."


김동건: "처음 뉴스를 진행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뉴스가 끝난 다음에 원고를 빌려서 집으로 가져 갔어요. 그릭 녹음기 앞에 놓고 매일 연습을 했어요."


김동건 아나운서 젊은시절 사진


* 김동건 아나운서 가발 루머의 진실


김동건: "그렇게 3시간쯤 하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데, 그래도 제가 녹음한 것을 다시 들어보면서 내가 못한 것은 어디이고, 잘한 것은 어디인가를 분석했어요. 이것을 매일 같이 반복하니, 어떤 뉴스라도 겁이 안나게 되었던 겁니다."


김동건: "처음에 동아방송은 재밌고 (사회와 정권에) 비판적이어서 대단히 인기가 높았어요. 종종 군인들이나 달러 장사치들이 방송 보도에 불만을 품고 방송국에 난입하는 바람에, 수시로 셔터를 내려야 할 정도였죠. 제가 동방송 출신이라는 사실에 늘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참고로 김동건 아나운서 가발 루머가 한동안 돌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입니다.

후배 아나운서들이 종종 방송에서 '가발 비뚤게 쓴 선배 아나운서'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바로 김동건이 주인공이죠.



아무튼 이렇게 시작한 김동건의 아나운서 생활이 벌써 50년이 넘게 이어졌네요.

그런데 이 50여년 동안 김동건에게도 수많은 위기들이 찾아왔습니다.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죠.



그중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무현 정권 초창기때 '코드 인사' 논란속에서 김동건이 가요무대에서 '퇴출'된 것입니다.



* 노무현 정권때의 김동건 퇴출 사건


김동건: "제 이름은 셋입니다. 하나는 김동건이고, 또 하나는 아나운서,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가요무대'입니다."


김동건이 스스로 이런 말을 할 정도로 가요무대는 그의 대표작이었고, 애착도 무척 컸습니다.

(김동건은 1985년에 가요무대를 맡아서 2003년 6월까지 약 18년동안 가요무대를 진행했고, 노무현 정권때 하차했다가 7년 후인 2010년에야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과연 당시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김동건 아나운서는 2003년 6월 16일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가요무대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무대에서도 그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죠.

마지막 녹화를 끝난 다음에 KBS 관계자로부터 일방적인 '하차' 통보를 받게 됩니다.


방송 관계자: "정권이 바뀌었다고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가 바뀌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건은 공식적으로 자신의 하차에 대하여 반발하지 않습니다.

무려 7년이 지난 다음에야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죠.



* 김동건의 의연한 태도


김동건: "다 지나간 이야기라 시시콜콜하게 거론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직 현직에 있는 후배들도 있고... 사실 사장(당시 정연주 사장)이 바뀌면 간판 프로그램의 진행자 교체는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동건: "내가 18년 동안이나 진행해온 프로그램인데 하루 아침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하차 통보를 받고 나니 참 당혹스럽더라. 그동안 18년이나 진행한 프로그램이니, 최소한 시청자들에게 인사할 기회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김동건: "(KBS의) 누구도 나의 하차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정권이 바뀌고 기존 사장이 교체된 후 그렇게 됐다. 하차 이후에 얼마 뒤에 누군가가 "우리 입장 좀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완곡한 요청을 받고는, 아나운서 후배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하여 아무런 내색을 않고 당시 (정연주) KBS 사장이 주는 감사패를 받았다."



정연주 사장이 한 일인지, 혹은 노무현 정권의 실세가 한 일인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철저한 사과와 더불어 재발 방지 약속을 했야할 것 같네요.


김동건은 이런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도, 엄청난 기록을 세웁니다.

바로 현역에서 활동중인 아나운서중에서 최초로 '데뷔 50년'을 현역에서 맞은 것이죠.


과연 김동건 아나운서의 성격이나 생활이 어땠기에, 이런 엄청난 기록을 세운 것인지 궁금하네요.


김동건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김동건 아나운서 부인 김영진과 아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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