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이보희 몸매 과거,이보희 전남편 이혼사유와 이장호 스캔들

(1/2) 총 2개의 글중 첫번째 글


영화배우 이보희 전남편 함윤식과 결혼을 했었죠.

이보희 이혼 사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과거에 이보희 이장호 감독 스캔들이 어땠는지가 궁금하네요.


(이보희 김혜선)

김혜선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김혜선 남편 이혼사유(최모 정찬혁)와7억 사기혐의


(스폰서 링크)


# 목차

* 이보희 탤런트 입문 계기

* 이보희 이장호 감독의 페로소나로

* 이보희 무릎과 무릎사이로

* 이보희 과거 이장호 스캔들

* 이보희 남편 함윤식 직업

* 이보희 결혼 후 은퇴

* 이보희 이혼 사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영하배우 겸 탤런트 이보희(본명 조영숙, 과거 다른 예명은 조진원)는 1959년 5월 25일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납니다(이보희 고향 전남 완도). 올해 58살이죠(이보희 나이)(이보희 몇년생).

(이보희 키 몸무게) 162cm, 45kg

(이보희 학력 학벌) 장훈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이보희 프로필 및 경력) 1979년 MBC 1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이후 영화 바보선언, 일송정 푸른 솔은,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이장호의 외인구단, 달빛 사냥꾼 등과 드라마 여인열전, 맨발의 청춘, 여인천하, 세잎 클로버, 하늘이시여, 아현동 마님, 착한여자 백일홍, 수상한 삼형제, 웃어라 동해야, 아이리스2, 왕가네 식구들, 압구정 백야, 위대한 조강지처, 내일도 승리 등에 출연합니다.


이보희 과거 사진


* 이보희 탤런트 입문 계기


이보희가 탤런트로 데뷔한 것은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친구 소개로 MBC 드라마 '안국동아씨'등에서 조연으로 일했고, 1979년 MBC 1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되었죠.


하지만 첫 몇년동안 TV드라마에서는 비중이 작은 조연 및 단역만을 맡았기에, 무명 배우였습니다. 그러다가 1982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어우동에 주연으로 캐스팅이 됩니다.


이보희: "캐스팅됐을 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이었어요. 제가 캐스팅이 되고 나서 처음에는 얼떨떨했죠. 이장호 감독님을 비롯, 제작진들이 절더러 '어우동'에 꼭 맞는 얼굴이라며 칭찬해 주셔요."(이보희 이장호 인연)


하지만 영화 어우동은 제작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보희 리즈 시절 사진(이보희 한복)


* 이보희 이장호 감독의 페로소나로


이보희: "오디션에 합격한 다음에 북과 장구, 승무 등을 다 배웠어요. 한 1년 넘게 연습했는데, 갑자기 제작사(현진영화사)가 영화 제작에서 손을 떼버렸어요. 아마 당시에 이장호 감독님이 속이 가장 많이 타셨을거에요."


이보희: "그래도 저를 캐스팅한 배우라고 책임지는 셈치고, 여기저기 다른 영화에 넣어 주셨어요. 그래서 영화 '일송정 푸른솔은'에 조연으로 출연했고, 그 영화 덕분에 다른 영화 관계자들이 알아주셔서 '무릎과 무릎 사이', '과부춤' 같은 작품을 연달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이장호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바보 선언(1983년)'에도 이보희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탤런트 이보희 젊은시절 사진(이보희 젊었을때 사진)


영화관계자: "1980년대는 정권의 사전 검열이 심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감독들이 에로영화처럼 '성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치중했다. 이장호 감독 역시 '바보선언'에서 자신의 영화감독으로서의 취향과 정서를 거의 대부분 포기하고 만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의 에로 영화들 사이에서 '바보선언'은 80년대의 대표 영화로 손꼽힐 수가 있었고, 이보희 역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보희 몸매 사진

* 이보희 무릎과 무릎사이로


이후 이보희는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로 센세이션한 인기를 얻게 되었고, 또한 1985년에 3년이 걸렸던 영화 '어우동'이 마침내 완성이 되면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게 되었죠.


이 영화들로 이보희는 완벽한 섹시 스타 이미지를 얻게 되었고,

이미숙, 원미경과 더불어 80년대 트로이카로 군림하게 됩니다.


결국 이보희는 이장호 감독의 영화 총 8편에 출연하게 되면서, 이장호의 페르소나라고 불리게 되었고, 또한 이장호 감독이 이보희에게 자신의 성을 딴 예명을 지어주기도 했죠.


이보희 무릎과 무릎사이 사진


* 이보희 과거 이장호 스캔들


그런데 이렇게 너무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보희 이장호 스캔들 루머가 터지기도 합니다(이보희 이장호 열애설).


이보희: "사실 과거에는 지금처럼 누가 연애한다고 해서 그렇게 관심이 많지도 않았다. 또한 스타에 대해서도 많이 민감하지 않은 때였다."


이보희: "당시에는 매체도 그리 많지가 않아서 일간지 몇 곳과 주부지 몇 곳이 전부였다. 그리고 열애설이 난다고 해도 모두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 이보희 남편 함윤식 직업


이후 이보희는 갑작스럽게 결혼을 발표하고 연예계에서 은퇴를 하게 됩니다.

1988년 9월 재미교포 함윤식과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하게 된 것이죠.

(이보희 전남편 함윤식 직업은 사업가 자동차 판매업)



이보희 지인: "지난해(1987년) 이보희가 미국 LA에서 열린 패션쇼에 참가했을 때 서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이보희의 친구가 두 사람을 소개시켜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국제전화 통화를 통하여 서로 사랑을 키웠다."


참고로 이보희 남편 함윤식의 나이는 이보희보다 3살 연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보희 함윤식은 1988년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보희 배우자 신랑 함윤식)


이후 이보희는 아들(함원준)을 한명 낳게 됩니다.

(이보희 자녀(자식))(이보희 가족관계)



* 이보희 결혼 후 은퇴


이보희: "(연예계 은퇴가) 아쉬운 걸 몰랐다. 당시에는 세대 차이인 것 같다. 지금은 내 일이 더 중요하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결혼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 시절에는 대부분의 여배우들이 다 그랬다(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은퇴했다)."


이보흐: "그런데 막상 활동을 그만두고 나니까 (영화가) 많이 그립더라. 정말 소중한 건 떠나봐야 알지, 있을 때는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 1년뒤부터 이보희 남편 사업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합니다. 5년뒤(1993년) 이보희가 다시 연기자로 컴백할 때 그 동안의 루머를 시인하게 됩니다.


이보희: "그동안 남편의 사업실패로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아이도 낳아 키웠어요. 그래서 과거보다 좀 더 내면적인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보희 이혼 사유


이보희의 정확한 이혼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복귀한 1993년에 이미 이혼을 한 상태였죠.


이보희: "(결혼 후) 활동을 쉴때도 영화 제안이 많이 왔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겁났다.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잘 안되더라."


이보희: "그러다 이혼하고 한국 나왔는데 제안이 와서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강수연과 곽지균 감독의 <장미의 나날(1994년 작품)>, 그리고 정보석과 김진해 감독의 <49일의 남자(1994년 작품)> 같은 작품도 했는데 크게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즉, 1994년에는 이미 이혼을 한 상태로 다시 한국으로 복귀를 한 것이죠.

(이보희 이혼사유 역시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보희가 결혼 이후 남편의 사업 실패로 곤란을 겪었던 것은 확실함)(이보희 이혼이유)


이보희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이보희 남편 재혼 생활,이보희 결혼 생활과 성격


(스폰서 링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