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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남궁원 부인 양춘자, 남궁원 아내 직업과 첫만남

탤런트 겸 영화배우 남궁원 부인 양춘자 직업과 첫만남, 러브스토리가 흥미롭네요.

남궁원의 어린 시절과 더불어 당시 극히 드문 엘리트였던 남궁원 아내 양춘자가 서로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남궁원 신상옥)

신상옥 최은희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신상옥 최은희 오수미 삼각관계아 박정희


(스폰서 링크)


# 목차

* 영화배우 남궁원에 대한 평가

* 남궁원 어린시절에

* 남궁원 크게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 남궁원 부인 양춘자 첫만남

* 남궁원 양춘자 결혼 사연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영화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은 1934년 8월 1일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납니다(남궁원 고향 경기도 양평). 올해 82살이죠(영화배우 남궁원 나이).

(남궁원 키 몸무게 혈액형) 180cm, 84kg, O형

(남궁원 학력 학벌) 서울 중앙중학교, 서울 한양공업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

(남궁원 프로필 및 경력) 1955년 연극배우로 데뷔


1958년 영화 '그 밤이 다시 오면'의 단역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1959년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영화 원한의 일월도, 빨간 마후라, 순교자, 국제금괴사건, 최후전선 백팔십리, 모정의 비밀, 해변의 정사, 국제암살단, 독수리 전선, 맨발의 청춘, 연산군, 소녀경, 싸울아비 등 근 50년동안 약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합니다.


또한 2011년 최초로 TV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남궁원 부인 양춘자 사진


* 영화배우 남궁원에 대한 평가


남궁원은 '시대를 앞서간 미남 배우'로 유명했습니다.

큰 체격에 잘 생긴 얼굴을 가졌지만, 그와 어울리는 작품을 만나지 못한 불행한 연기자였죠.


신상옥(당시 유명 감독): "남궁원은 국제적으로 통할 배위다. 남궁원이 지금 이 시대에 나온 게 참 안됐다. 한 10년이나 15년 뒤에만 나왔어도..."


즉, 당시 열악했던 한국 영화계의 사정상 남궁원에게 어울릴만한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죠.


남궁원 젊은시절 사진(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시절)


남궁원 과거 사진(남궁원 젊었을때 사진)


* 남궁원 어린시절에


어린 시절 남궁원은 우연하게 영화배우로 활동하게 됩니다.


남궁원: "어머니께서 저에 대한 기대가 컸어요. 그래서 날 의사 공부를 시키려고 했는데 나한텐 벅차고 생리에 맞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한양공대에 입학해서 미국 유학 준비를 했어요."


남궁원: "미국 대학에 지원을 하니까 콜로라도주립대학에서 풀스칼라십(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통지가 왔어요. 그걸 받고 유학 떠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어머가 자궁암 3기 선고를 받으셨어요. 의사 선생님이 "지금 수술해도 가망이 없다"라고 하셨고요."


결국 남궁원은 동창의 아버지인 이재명(아세아영화사 대표)에게 영화 출연을 약속하고 돈을 빌려서 어머니의 병원비를 댑니다. 하지만 남궁원 어머니는 불과 3개월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남궁원 젊은시절 사진


남궁원 리즈시절 사진


남궁원: "(초상을 치를 때) 내가 엄마를 끼고 드러누웠어요. (초상치를 때) 병풍뒤에 들어가서 엄마를 끌어 안고 놓지 않았죠. 사람들이 떼어놓으려고 해도, 제가 3일 동안 먹지도 않고 엄마를 놓지 않았어요. 결국 친척들이 "쟤 죽는다.", "쟤 엄마가 아들을 데려가려고 저라나 보다."이렇게 포기를 하더군요."


남궁원: "너무 밤을 새우니까 귀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영화사에서 촬영 날짜가 잡혔으니까 나오라는 연락이 왔어요. 나도 참, 먼저 돈을 받았고 약속을 했으니 어이는 없지만, 그 약속을 안 지킬 수도 없고... 아버지와 상의를 하니까 "딴따라는 애비 에미가 죽어도 무대에서 그걸 못 멈춘다"고 하셨어요. 결국 약속을 지키려 영화 촬영장에 나갔어요."


결국 어머니의 병환이 남궁원을 영화배우로 이끌었네요.

이 와중에도 남궁원의 책임감이 대단한 것, 약속을 무척 중시여기는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남궁원 크게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이후 남궁원은 영화배우로 본격적으로 활동하지만, 처음에 이슈가 되었던 '잘 생긴 배우'에 비해서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합니다.


남궁원: "신성일한테 질투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어요. 성일이가 영화배우 되기 전엔 처음 서울 와서 고생도 많이 했고, 또한 우리 집에서 자기도 하고 정말 형제같이 지냈어요."


남궁원: "사실 나는 성일(영화배우 신성일)이 같이 한번에 확 올라가고 이런 건 없고 천천히 (인기가) 올라갔어요. 남궁원(南宮遠)이란 이름이 '남쪽에 있는 먼 궁궐'처럼 그래서 그런가 봐요."


이후 남궁원은 007시리즈에 힘을 얻은 첩보 아류작들이 만들어지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당시 남궁원만큼 잘생긴 첩보원을 잘 연기하는 배우가 없었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이 시리즈는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합니다.

007 본작들에 비하여 세련됨이 떨어졌기 때문이죠.



* 남궁원 부인 양춘자 첫만남


아무튼 이 시기에 남궁원은 해외 촬영을 비번하게 나가면서 부인 양춘자를 만나게됩니다.

당시 남궁원 아내 양춘자 직업은 스튜어디스였죠.

(남궁원 아내 양춘자 학력 학벌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노드웨스트 항공사 스튜어디스로 근무)

나이는 남궁원보다 7살 연하(남궁원 나이차이)


(참고로 양춘자는 당시 드문 엘리트였고, 영어 실력도 대단했음. 남궁원 아들 홍정욱이 미국 유학을 하는 동안에 뉴욕에 머물면서 직접 영어 번역을 도와주기도 했을 정도로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



남궁원: "1966년에 영화 '하얀 까마귀'를 촬영하다가 소품이었던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얼굴을 40바늘 가까이 꿰맸어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에서 합작 영화 촬영을 위하여 홍콩으로 가게 되었죠."


남궁원: "아내(양춘자)가 당시 미국 항공기(노스웨스트 항공사)에서 유일한 한국인 승무원이었어요. 첫눈에 보고 반해서 전화번호를 물어봤죠. 그리고 항공기가 경유한 일본 동경에서 만나서 데이트를 했어요."


양춘자: "당시에는 비행기를 타는 한국인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분들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저절로 돕게 되죠. (또한, 남편이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도 몰랐어요."


양춘자: "그런데 남편(남궁원)이 일행이랑 있었는데, 카메라가 아직 도착을 안 했다는 거예요. 그 일을 도와주려고 도와주려고 그냥 전화번호를 준 거에요."


양춘자: "남편이 나중에 제 있는 숙소에 찾아왔어요. 그때가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파일럿 할아버지가 마티니 두 잔을 우리한테 보냈어요. 한국에서 제 애인이 찾아왔는 걸로 생각을 하신 거죠. 그게 인연이 됐어요."


남궁원 아내 양춘자 사진




(남궁원 가족 사진 홍정욱 홍성아)


* 남궁원 양춘자 결혼 사연


이후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에 남궁원의 해외 로케가 많았기에, 두 사람은 비행기와 해외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죠.


그러다가 둘은 1967년 9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남궁원 배우자 와이프 양춘자)




한때 '남궁원 이혼', '남궁원 재혼' 등의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남궁원은 거의 50년에 가까운 결혼 생활동안 별탈없이 결혼생활을 잘 유지합니다.


이후 남궁원은 아들 홍정욱, 딸 홍성아, 홍나리 등을 낳게 됩니다.

(남궁원 자녀(자식) 1남 2녀)(남궁원 가족관계)


남궁원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남궁원 아들 딸 홍정욱 이야기, 남궁원 투병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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