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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송승환 난타 동영상,송승한 성공 이유와 쓴소리

영화배우 겸 탤런트 송승환이 난타로 유명한데, 과연 난타의 성공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송승환이 우리 교육에 대하여 쓴소리를 하는데,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송승환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송승환 부인 박찬실과 이혼 루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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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송승환 아이(자녀) 문제에 덤덤한 이유

* 송승환 난타를 제작하면서

* 송승환 난타 동영상

* 어려웠던 난타의 역사

* 송승환의 성공 이유

* 송승환 근황

* 송승환의 쓴소리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송승환 아이(자녀) 문제에 덤덤한 이유


송승환: "아내와 동갑내기예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내와 모든 일을 함께하죠. 여행도 자주 가고요. 우리 부부 사이에 아이가 있다가 없으면 허전할 텐데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송승환: "처음에는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그냥 우리 부부끼리 살기로 했어요. 지금은 저나 집사람이나 아이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죠. 그래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하는 것 같아요."


사실 송승환 부부에게 불임이라는 루머가 떠돌기도 하는데, 인생에서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 덕분에 이 부부 사이에는 별다른 불화가 없는 것 같네요.


탤런트 송승환 사진


* 송승환 난타를 제작하면서


송승환은 1988년 귀국해서 다시 연기자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1996년 (주)PMC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1997년에 그 유명한 '난타'를 제작하게 됩니다.


송승환: "사실 '난타'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든 작품이에요. 국내 연극 공연 시장이 너무 좁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었기 때문에, 언어를 쓰지 않는 '비언어 연극'을 기획했고, 여기에 우리나라 사물놀이를 어떻게 입힐까 고민하다가 만든 작품이 바로 '난타'였어요."


송승환: "난타가 성공한 이유는 한국적인 사물놀이 속에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녹아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송승환의 기획대로 난타는 큰 성공을 거두어서 2014년 말 천만 관객을 돌파하게 됩니다(현재 전세계적으로 9개팀이 공연을 하고 있음).



* 송승환 난타 동영상


난타 동영상 2011서울드럼페스티벌(난타)  

난타 ..( COOKIN )

 


컵을 이용한 난타, 컵난타, 컵타


[K-culture 신한류 3.0] 제 1회, 난타 신화 송승환 강의



* 어려웠던 난타의 역사


송승환: "난타 초연 당시에는 극장 대관조차 잘 되지 않았어요. 알려진 대본도,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공연도 아니었던 데다가, 비언어극이라는 최초의 장르였기에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죠. 결국 관계자를 저희 연습실로 모셔다가 연습 과정을 보여주면서 겨우 대관을 했어요."


송승환: "해외 마케팅 역시 결코 쉽지 않았고요. 초연 때 일본 도쿄로 가서 현지 여행사를 찾아다니며 난타를 소개했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의 2박 3일 여행 일정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상품이 때밀이 목욕이랑 동대문 의류 상가 야간 쇼핑이었거든요."


송승환: "그렇게 어렵게 일본 여행사들을 설득해서 '난타'를 일정에 넣었어요. 나중에 일본 관광객들의 '가장 인상 깊었던 일정' 1위로 난타가 뽑혔어요.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일본 관광객들이 많아 찾아왔죠."


송승환: 그리고 난타의 첫 해외 공연은 1999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열렸어요. 당시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터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현지 매스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어요. 결국 에든버러에서 맺은 공연 계약금으로 그동안 여러 군데서 진 빚을 갚을 수 있었죠.


다른 사람의 성공한 길을 뒤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송승환처럼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는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송승환의 성공 이유


송승환: "3만원짜리 공연을 1000만 관객이 봤으니 제가 3000억원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지만 그건 매출이고 수익은 아니죠. 그리고 '난타'로 많이 번 만큼 또 많이 썼거든요. 해외 마케팅하고, 전용 공연장을 만들었고, 또한 그동안 연과 뮤지컬 40여 편을 만들면서 손해를 많이 보다보니, 제 개인적으로 만질 수 있는 돈은 크지 않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송승환이 난타로 성공했으니까, "더 이상 무리할 필요가 없다.", "연극과 뮤지컬 40여편을 제작한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송승환에게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난타와 같은 성공 역시 거둘 수가 없었죠.


대학 2학년때 인생의 진로를 고민했던 치열함,

대학을 중퇴하고 연기자로 돌아왔던 과감함,

인기를 뒤로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던 '문화에 대한 갈망',

세계 최초로 난타를 만들었던 '도전정신'이


오늘날의 송승환을 만든 것 같습니다.


송승환: "남들은 저보고 성공했다고 하는데, 저는 성공이라는 의미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단지 제가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을 뿐이죠.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고, 나이 먹어서는 제작을 한 거에요. 모든 것이 제가 하는 일의 과정이죠. 그리고 이것이 성공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확실히 송승환의 마인드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네요.



* 송승환 근황


송승환은 평소에 무척 바쁘게 살아갑니다.


송승환: "저는 하루를 3일로 생각해요. 그래서 아침, 오후, 밤으로 나누어서 일을 하죠. 아침에는 방송에 중점을 두고, 오후에는 회사일을 하고, 밤에는 공연장이나 연습장을 돌아요. 그리고 짬이 나면 운동하러 골프를 치러가죠. 남들은 일주일이 7일이지만, 저에게는 21일이나 되니까 살만해요."


송승환: "제가 바빠서 집에서 밥 먹는 일이 한 달에 고작 한두 번에 불과해요. 그러다보니 아내도 스케줄을 만들어 움직여요. 아침에 운동하고, 그리고 교회 봉사 활동도 하고, 집안도 구석구석 친환경적으로 꾸미고요."


송승환: "사실 아내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주어진 상황을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 송승환의 쓴소리


아무튼 창의성의 대명사라고 불릴만한 송승환이 오늘날의 교육제도를 비판합니다.

(참고로 송승환은 배우, 공연 제작자, 예술 총감독, 프로듀서, 사회자(MC),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교 학장(송승환이 교수로 직접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함)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승환: "내가 만약에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제도에 순응했다면, 과연 '현재의 나'가 있을까? 아마 문화예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것 같다.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스필버그와 스티브 잡스, 송승환의 공통점은 대학을 중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송승환이) 대학의 교수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송승환: "현재는 더 창의적인 인재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인터넷이나 SNS도 없었고, 정보도 많이 부족했다. 아니 귀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집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송승환: "하지만 우리 세대에 비하여 요즘 아이들은 입시 스트레스가 더 많아진 것 같다. 또한 우리가 느꼈던 문화적인 경험이나 습득과정이 적어 (아이들의) 창의성이 떨어질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입시라는 큰 제도의 틀 안에서 창의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길을 홀로 개척한 송승환이기이에,

그의 교육에 대한 비판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송승환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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