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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깨달음과 함께 하는

홍석천 게이 커밍아웃 후에 홍석천 레스토랑을 하면서

탤런트 홍석천은 게이로 유명한데, 사실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한 다음에 먹고 살기 위해서 사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홍석천 레스토랑이 크게 성공을 했는데, 사실 홍석천은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고난과 역경을 헤쳐온 사람이었죠.


(홍석천 이의정 새창보기)

이의정 뇌종양 파산 사건의 진실과 친자 확인 검사


(스폰서 링크)


# 목차

* 홍석천 성폭행 사건

* 홍석천 군대 사건

* 홍석천 커밍아웃을 한 후에

* 홍석천 마약과 자살까지 생각한 아픔

* 홍석천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하며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탤런트 겸 영화배우 홍석천은 1971년 2월 3일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납니다(홍석천 고향). 올해 45살이죠(홍석천 나이).

(홍석천 키 몸무게 혈액형) 176cm, 58kg, B형

(홍석천 종교) 개신교(기독교)

(홍석천 학력 학벌) 청양중학교, 남대전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홍석천 프로필 및 경력) 1995년 KBS 대학개그제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 뽀뽀뽀, 우리 결혼했어요, 마녀사냥, 냉장고를 부탁해, 마이 리트 텔레비전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홍석천은 사업가로도 유명합니다.

서울 용산(이태원)에 홍석천 레스토랑을 8개, 경기도 구리에도 레스토랑을 1개 운영하고 있고, 현재 10번째 레스토랑(한식 전문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홍석천 사진


* 홍석천 성폭행 사건


홍석천의 인생을 살펴보면, 어려움과 굴곡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난관들을 다 극복할 수 있었는지, 정말 놀랍네요.


홍석천: "제 고향이 시골이어서 학생 수도 적은데, 그중에서도 제가 특히 예쁘장하게 생겼어요. 글짓기도 잘했고,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공부도 잘해서 그 작은 동네에서 제가 많이 돋보였죠."


홍석천: "사실 아버지는 시골분인데도 얼굴이 굉장히 예쁘세요. 전 아빠를 닮고 싶었는데 엄마를 닮아서 얼굴이 좀 큰 편이죠."



홍석천: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저보다 한 살 많은 형한테 미묘한 감정을 느꼈어요. 교회를 같이 다녔는데, 그 형과 묘하게 많이 엮이더라고요. 하지만 어릴 때라 잘 모르고 그냥 마음으로만 좋아했죠."


홍석천: "중학교 다닐 때는 밤에 힘 꽤나 쓰는 친구들 세 명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당시 제가 목소리랑 몸매도 야리야리하고 예쁘니까, 성적으로 한창 폭발하던 시기였던 그 친구들이 저를 대상으로 그걸 푼 거죠. 전 그 사건을 남들에게 이야기도 못하고 몇년동안 혼자서 고민했어요."


홍석천: "나중에 그 친구들을 용서해줬어요. 사실 그렇게 과거를 용서하지 않으면, 제가 못 살 것 같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홍석천에게 아픔이 컸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을 용서해주었다는 홍석천의 아량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 홍석천 군대 사건


홍석천: "대학 진학할 때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제가 법대를 가기를 원하셨지만, 전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고 싶었거든요. 결국 아버지와 밤새 얘기해서 허락을 받았어요."


이후 홍석천은 군대를 가게 됩니다.


홍석천: "군대는 방위로 근무했어요.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했는데, 이등병 때부터 약하고 여리고 귀여운 콘셉트로 갔어요. 결국 선임들로부터 한대도 맞지 않을 수 있었죠."


홍석천: "군대에서 사실 수양록에 대대장 뒷담화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수양록이 발각이 되었다. 결국 싸늘한 표정의 상사에게 무릎을 꿇고 오열을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절하게 매달려 다행히 그 사건은 넘어갈 수 있었다."


사실 군대에서 수양록은 '공개'된 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상부의 검열에 대비해서 언제나 공개될 수 있다는 마음하에 '가식'적으로 써야 하는 거죠.



* 홍석천 커밍아웃을 한 후에


그런데 홍석천은 처음부터 연기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홍석천: "과거에 연기자 시험을 무척 많이 봤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그래서 개그 쪽으로 방향을 바꿨죠. 그런데 저는 개그맨 세계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디어를 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게 스트레스였고요."


홍석천: "결국 개그맨을 그만 두고 다른 방송국의 개그작가로 들어갔는데, 그것도 맞지 않아서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어요. 그때부터는 주로 한양대 최형인 교수님의 작품에 출연했어요."


홍석천: "당시에 돈이 없어서 굉장히 고생했어요. 사실 지인들에게 빈대 붙어서 버틴 거죠."



이후 홍석천은 자기 나름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방송인으로 꽤 성공하게 됩니다. 연기자로 여러 드라마나 시트콤에 출연하게 되었고, 또 친근한 이미지로 뽀뽀뽀에도 출연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2000년에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하게 됩니다.

(홍석천이 아웃팅을 당했다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 홍석천 스스로 커밍아웃을 한 것임)


홍석천: "2000년대로 넘어가는 첫 해였였어요. 당시 Y2K 문제, 종말론, 사재기도 벌어질 정도로 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 저도 기대가 됐던 것 같아요. 후진 구시대는 갔다는 생각에..."


홍석천: "사실 내가 그때까지 30년 세월 동안 내 정체성을 알아가면서 남들 눈치 보는 데 허비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른 이후에는 내 주관적인 삶을 살고 싶었죠."


홍석천: "또한 우리나라에는 저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이런 성소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죠. 그래서 제가 대표로 이 문제를 건드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난 젊으니까 다 잃어도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 홍석천 마약과 자살까지 생각한 아픔


결국 홍석천은 커밍아웃을 한 연예인 1호로 기록되었고,

세간의 엄청난 관심과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출연하던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모두 하차하게 됩니다.었죠.


홍석천: "마약같은 나쁜 것에 대한 유혹도 있었어요. 워낙 많은 분들이 욕을 하시니까 제가 집밖으로 한 달 동안 못나간 적도 있었죠."


홍석천: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마약에 대한 유혹을 극복하기가 힘들었어요. 결국 담배를 엄청 피웠죠. 또한 자살 충동까지 느꼈고요. 당시 우리 집에서 한강이 보이는데, 그 당시에 한강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더라고요."


홍석천: "하지만 전 부모님과 가족들, 연인, 친구들 덕분에 그런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제 옆에서 아무 조건 없이 항상 제 편이 되어 줬던 그분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껴요."

(참고로 홍석천의 연인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설명)



홍석천: "또한 나의 위기를 극복시켜준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책이죠. 동성애자 정치인이었던 하비 밀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밀크'가 나에게 큰 영감을 줬고, 또 '고래바위'라는 책으로 큰 용기를 얻었어요."


세상에 기댈 것이 없는 홍석천에게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큰 힘이 되었고, 또한 좋은 영화와 책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것 같네요.


홍석천 과거 사진


* 홍석천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하며


결국 방송 출연이 막힌 홍석천은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홍석천: "2000년 커밍아웃을 한 후에 생계가 막막해졌어요. 모든 방송 출연이 전부다 스톱이 되었으니까요. 사실 1년 반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휴식이 3년을 넘어가니까, 점점 조급해졌어요. 모아 둔 돈도 떨어져 갔기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결국 2002년에 홍석천은 이태원(서울 용산)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열게 됩니다.

(홍석천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현재는 마이엑스로 상호 변경))


홍석천: "당시 아워플레이스를 건물의 6~7층에 열었어요. 당시만해도 식당은 1층이나 2층에 열었기 때문에, 제 주변에서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전 왜 복잡한 1층에서 부대껴야 하나 싶었어요."



홍석천 레스토랑 위치 지도

(홍석천 레스토랑과 식당들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150여미터 떨어져 있는 이태원 중심 상권에 몰려 있음)


홍석천: "그러다가 외국인들 사이에서 ‘적은 인원이 재미있고 알차게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내국인들은 제 가게를 처음 찾아서 저를 보고는 '게이바 아냐?'라고 하면서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죠."


홍석천의 가게가 성공하는데 홍석천 본인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보통 연예인들은 '연예인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는데, 홍석천은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 같네요.


결국 홍석천은 맛과 분위기로 손님들을 만족시키기 시작했고, 그의 레스토랑 사업은 성공하게 됩니다.


홍석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홍석천 남자친구 경험담 고백- 300명 이상과 성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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