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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 자녀 잃은 슬픔

송해 아내(부인)석옥이/송해 출연료와 따끔한 충고

송해 석옥이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방송인 송해는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중에서 최고참입니다.

그리고 맡고 있는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의 특성상 우리나라 곳곳을 안 누벼본 곳이 없죠.

오래된 경륜과 경험을 통해서 송해가 우리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합니다.


그외에도 송해 아내 석옥이와의 결혼 생활, 출연료 등이 흥미롭네요.


MC 송해(본명 송복희)는 1925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납니다(송해 고향). 올해 90살이죠(송해 나이).

(송해 종교) 불교

(송해 학력 학벌) 해주예술학교 성악학과 졸업

(송해 프로필 및 경력) 1955년 '창공악극단'로 데뷔


하지만 그 이전부터 도립악단에 취업했고, 후에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합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 4개 이동 예술대에 편입돼 북한 전역을 돌면서 순회공연을 합니다.


6.25때 군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했으며, 제대 후에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합니다. 여러 무대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1988년 5월부터 kbs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27년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송해 과거 사진 젊은 시절


보통 프로그램은 1~2년을 버티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송해의 전국노래자랑은 거의 30년 가까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버티고 있네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송해: "다른 게 없어요. 우선 내가 편하게 비쳐져야죠. 사회자가 까불지 않으면 절대로 출연자가 마음 놓고 놀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녹화 전에 반드시 그 고장 시장을 찾아갑니다. 말하자면 서민들이 번잡하게 모여드는 시장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양말도 사고, 국밥도 사먹고 막걸리도 마시면서 미리 사람들에게 예고를 하지요. ‘몇시 어느 장소에서 전국 노래자랑이 있으니 그리로 오세요’하고요. 그리고 그런 곳에서 숨은 인재를 찾아내 무대에 끌어내기도 합니다."


송해: "현장 파악이 중요해요. 그 지역의 특성과 지역민들의 관심사를 알아야 하고, 무대 상황이나 출연자 특징도 알아야 관객들과 호흡을 할 수 있고 생동감 나는 방송이 되거든요. 소통이란 게 나 혼자 통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나누는 거잖아요. 언제나 방송 하루 전이나 아침 일찍 그 지역에 가서 우선 목욕탕부터 들르고 시장에 있는 해장국집이나 식당에서 밥을 먹어봐요. 동네 목욕탕에 앉아 피로도 풀고 발가벗고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해요."


송해: "요즘 뭐가 제일 걱정이냐, 이 마을 자랑거리는 뭐냐 등등 이야기를 나누면 정보도 얻고 금방 친해지죠. 방송이건 정치인이건 책임자는 현장에 가서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해요."



이렇게 송해는 자신이 까불거리면서 출연자들이 마음을 편하게 먹도록 합니다(현재는 나이가 많은 관계로 그런 모습을 자주 보기 힘들죠).

또한 젊었을 때부터 현장을 중시했고, '소통'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연예인들중에서 이렇게 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몰입을 했던 연예인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전국 각지를 돌며 각 고장의 일반인들이 출연하기 때문에 전국노래자랑에는 별별 사람들이 출연합니다.

별 이상한(?) 사람이 출연할 때 송해의 임기응변과 순발력이 더 빛이 나죠.


송해: "한번 나와서 떨어진 사람이 몰래 변장을 하고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감쪽같이 수염을 달고 모자를 쓰고 나오면 잘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통과한 사람도 있어요."


송해: "한번은 전라도 김치로 얼굴이 범벅이 된 적이 있어요. 전라도 김치에 고추가 좀 많이 들어갑니까. 금방 담갔다면서 여성 출연자가 먹여주는데 이건 먹이는 게 아니라 제 얼굴에 고추범벅을 하는 거예요. 입에서는 김치를 오물거리고 눈에서는 고춧물이 들어가 눈물이 쏟아지지만 그래도 맛이 있으니까 ‘앗 따가워!’ 하면서도 시원하게 먹었죠."


송해: "풀어주어야 마음대로 노는데 이렇다고 화를 내고, 저렇다고 시큰둥하면 참가자가 편안치 않죠. 출연자들이 지역 특산물을 갖고 나와서 억지로 먹일 때가 있습니다. 사실 먹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고, 여름철에 비브리오균이 득시글거리는데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다니는 생선을 날것으로 먹이는 경우도 있어요."


송해: "이것을 살짝 한 입 먹으라고 하면 될 것을 꾸역꾸역 한 마리를 통째로 입에 쑤셔박듯 넣기도 하고요. 그래도 참고 먹어야죠. 물론 정성을 들이지 않은 음식은 아니지만 출연하느라 정신이 없다보면 생선이 여기저기 방치돼 시들해지고, 그 사이 나쁜 균이 침투해 들어올 수가 있죠.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도리없이 먹어주는 겁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게 먹는 것으로 장난할 때는 이 사람들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그러나 싶어 솔직히 화가 납니다. 그래도 참아야죠."



송해: "한번은 어떤 노인이 ‘땡’ 하고 종을 울려도 무대에서 나가기를 거부하고 계속 저를 물고 늘어졌어요. 도리없이 한 번 더 시키게 됐죠. 그래도 노래의 함량이 떨어져 또 땡을 쳤어요. 노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한 번 더 시켜달라고 거듭 생떼를 부렸죠. 세번째 노래에도 결국은 땡이 되었는데, 노인장이 막무가내더군요. 결국 내가 세번 땡이니까 딩동댕 합격이 됐다고 위로를 해주고 나서야 노인은 무대에서 내려가더군요."


나이든 사람이 생떼를 부리면 어쩔 수가 없죠.

원래대로라면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너무 그럴 경우에는 '전국노래자랑'의 특유의 맛과 멋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자 송해의 임기응변이 좋았네요.


아마 송해 역시 처음부터 이런 임기응변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프로그램과 호흡을 함께 하면서 가지게 된 관록의 힘이겠죠.



거의 30년을 송해는 전국방방 곳곳을 떠돌면서 지역민들과 애환을 함께 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포함해서 그 어떤 사람도 이렇게 전국구로 다닌 적은 없을 것 같네요.


그런 경험을 가진 송해가 방송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터부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합니다.


송해: "전북 남원에서의 일이었어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왔죠. 며느리가 노래를 하자 시어머니가 춤을 추었는데, 이 광경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저 죽일 년” 하면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망신시켰다고 야단났어요. 또 보수적인 지방에선 방송을 보고 저를 비난하는 항의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어요."


송해: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그날 일은 미담으로 바뀌었어요. 한 무대에 이처럼 같이 나와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고부간의 틈이 메워지는 것을 보면서 방송을 더 좋아하게 된 거죠. 관점을 바꾸면 이렇게 비난하던 것도 아름답게 비치는 것입니다. 세태 변화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도 고루한 인식 속에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반성을 해야 해요. 이제는 고부가 같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출연자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런 걸로 보아 고부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나라는 너무 격식을 중시여깁니다.

예전에도 고부간에 쓸데없는 격식이 너무 많았죠.

그나마 송해가 방송을 통해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런 부분이 고부간의 격식을 메우는 작은 역할을 한 것 같네요.



송해: "몇 년 전 천하장사대회 때의 일로 기억합니다. 천하장사대회는 신정, 설이나 추석 명절 때 열죠. 그날은 새해 대회였는데 장님이 출연했어요. 63세 먹은 노인이었는데 모두들 정초부터 꺼림칙하다는 표정이에요. 하긴 아직도 택시기사들이 아침에 개를 안은 여자를 안태운다든지, 첫새벽부터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다든지 하는 못된 속설 때문에 여성은 이유 없이 차별받고, 이를 지키는 사람도 터무니없이 고민에 빠지는 일이 많은 세상이죠. 어쨌든 스태프들이나 대회 주최측도 꺼림칙하다는 거예요."


송해: "그런데 제가 이런 그릇된 고정관념을 깰 마음으로 억지로 출연시켰어요. 체육관 무대는 계단을 20개쯤 올라와야 하는데 딸의 부축을 받고 올라오더군요. 그날 장님 노인이 부른 노래는 ‘나그네 설움’이었어요. 그 노래가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군요. 장님 노인이 살아온 생애가 온통 이런 설움이었구나, 그 설움을 이 노래 속에 녹여놓았구나, 하는 마음에 객석도 감동했습니다."


송해: "노래를 잘해서 뿐만 아니라 잘못된 속설에 갇혀서 안그래도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는 자괴감이랄까, 안쓰러움이랄까, 그런 반성들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노인더러 노래 한 곡을 더 부르도록 했습니다. 두번째 노래가 끝나자 1만여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요. 저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요."


송해: "그후부터는 장애인이 스스럼없이 출연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휠체어를 탄 사람, 팔이 없는 장애인이 출연해 몸 성한 사람들과 당당히 겨루지요."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터부는 확실히 말도 되지 않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걸 진짜로 믿거나, 혹은 께름칙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송해가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더 젊은 것 같네요.



한 송해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합니다.


송해: "이 프로를 진행하면서 고치기 힘든 우리 국민의 습관 하나를 발견했어요. 바로 특정직업에 대한 경시풍조입니다. 그중에 강화도에서의 일이 기억나는군요. 한 출연자가 노래를 구수하게 잘하는데 노래가 끝나고도 무대를 내려가지 않아요. 할 말이 있다는 겁니다. 무슨 할 말이냐니까, 자기 장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장인은 3대가 대장간에서 일을 해온 이 시대 마지막 대장장이인데 마을의 젊은 애들까지 장인을 하대한다는 겁니다."


송해: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법에서도 평등주의를 내세운 게 벌써 한 세기가 다 되는데 70대 노인을 대장장이라고 반말로 무시한다는 거예요. 장인이 만든 삽과 호미를 강화도 사람이면 안 쓴 사람이 없는데, 그런 고마움은 모르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멸시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서 그 장인어르신 직업을 ‘농기구공장장’으로 이름 지어드렸어요. 아마도 제가 100번은 더 농기구공장장이라고 연호를 받아냈을 겁니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후에 그 사위 분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동네 사람들의 대접이 확 달라졌다는 거예요."



확실히 예전에 대장장이, 장돌뱅이 등이 천시를 받았다면, 현재는 엔지니어를 비롯하여 몸쓰는 일이 천시되고 있죠.


송해의 말처럼 이런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송해는 전국노래자랑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송해의 출연료는 얼마일까요?



2008년 기준으로 한때 진행자들의 출연료가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한나라당 구본철 의원과 이정현의원이 KBS와 MBC로 부터 제출받은 '2008년 연예 분야별 출연료 현황')


'해피투게더'의 유재석이 회당 900만

'해피선데이-1박2일'의 강호동이 회당 850만원

탁재훈과 신동엽이 각각 800만원

신정환이 650만원, 김제동이 600만원

남희석은 550만원


그리고 송해는 회당 300만원을 받습니다(송해 출연료).

(그 뒤를 이어서 윤도현이 200만원, 허참이 170만원)


방송계 최고참인데, 실제 돈을 얼마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네요.

사실 2008년 출연료가 이 정도이지, 그 전에는 이보다 더 적었죠.

(실제로 송해가 한때 생활고때문에 건강보조식품 8만원짜리를 28만원에 사도록 부추기는 역할도 함, 검찰 조사결과 불구속 기소됨. 1996년 12월)



어쨌든 송해는 받는 돈과 관련없이 자신의 프로그램에 최선을 다했고, 또 아직도 다하고 있습니다.

잠깐 송해의 건강비결을 살펴보죠.


송해: "내 장수비결은 BMW이다."

여기서 B는 버스(BUS), M(METRO)은 지하철, W는 워킹(Walking)의 줄임말이죠.

(송해 건강비결)


송해: "지하철을 타면 운동이 제법 되죠. 도곡동 집에서 종로 3가 사무실까지 지하철을 갈아타느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제법 운동이 돼요. 여의도에 있는 방송국에 갈 때도 지하철을 타요. 매니저도 없고 코디네이터도 없이 나 혼자 스케줄을 관리하고 옷도 협찬받지 않고 내가 사입어요. 휴대폰은 있는데 평소엔 꺼뒀다가 나중에 켜봐서 꼭 연락할 곳만 하니까 스트레스 받을 게 없지. 건강에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도 건강한 비결인 것 같아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공감해요. 아직은 별로 나이 들었다거나, 갑자기 노화 현상을 느끼진 않아요. 주량이 좀 줄긴 했지만 아직도 소주 2병은 거뜬히 먹거든."(송해 장수비결)


송해: "건강을 유지한다고 헬스클럽을 다니고 골프치는 사람들 마음을 모르겠어요. 나는 지하철을 8년 동안 타고 다니는데 지하철역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운동이 되는 것이 없어요. 이 좋은 운동기구를 내팽개치고 비싼 돈 들여서 운동을 하는 세태를 이해할 수 없다니까요. 그리고 음식을 잘 먹는 거예요. 나는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면 먼저 주방에 들러요. 주방에다 대고 왁자하게 인사하면 나오는 음식이 달라져요. 비싼 음식이 아니라도 맛있는 것이 나오죠. 이게 내 건강 비법이오."



보통 연예인들이 활동을 하다보면 인기가 떨어져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구설수(마약, 불륜이나 외도 등)에 올라서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송해는 그 오랜 세월동안 방송활동을 했지만, 구설수에 오른 적이 한번도 없었죠(예외적으로 위의 건강식품 사건 구설수가 있긴 했음).


송해의 자기 관리가 궁금해지네요.


송해: "노래방이나 술집에 가다보면 짓궂은 사람들도 만나는 경우도 있어요. 그중에는 정도가 지나친 경우가 있죠. 자기들 자리에 와서 한잔 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한잔 받아먹고 한바탕 즐기는데 또 술을 주는 거예요. 그들은 반갑다고 주지만 받아먹는 입장에서는 고역이죠. 나는 한 사람이지만 그들은 너댓 명이 돼서 각자 한잔씩 건네는 술을 마시다보면 소주 한 병이 거뜬히 비워져요. 그래서 사양을 하면 ‘언제부터 컸냐’는 식으로 나오죠."


송해: "그럴 때는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고 말죠. 나를 안다는 표현을 그렇게도 하는구나 생각하고 더 곰살맞게 굴고 말죠. 그렇게 해서 내 열렬한 팬을 하나 더 확보하는 것이지요. 순간적으로 화가 불쑥 치밀 때가 있지만 애써 참아요. ‘저런 분들 때문에 내가 컸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달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 송해는 혈기를 누르면서 항상 겸손하게 사람들을 대했던 것 같네요.



송해가 국민 MC로 장수할 수 있었던 마지막 비결입니다.

아무리 프로그램을 오래 맡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실력이 없으면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할 수가 없죠.


여기서 말하는 기본적인 실력은 위에서 언급한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아니라, 사회자에게 꼭 필요한 발음 문제입니다.


예전에 초당대학 국문학과 김창진 교수가 연예인들의 발음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대부분 낙제점이고 임성훈이 C등급, 임백천이 B등급인데, 송해가 A등급을 받았죠.


확실히 송해가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발음은 여전히 또렷또렷하고 시청자들에게 잘 들립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송해: "예전에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 전영우 아나운서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정확한 한글은 물론 장단음, 된소리 등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그런 노력을 한 덕분에 이 나이에도 마이크를 잡는 겁니다."


확실히 무엇을 하든지 기본이 중요한 것 같네요.



참고로 송해 아내(부인)은 석옥이(이름)입니다(송해 배우자 석옥이).

벌써 결혼 생활만 58년째죠.

(송해 이혼 후 재혼은 루머임.)


송해 석옥이 부부는 1남 2녀를 낳습니다(송해 자녀 자식)(송해 가족 관계).

하지만 송해 아들이 어린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송해: "아들이 대학교 2학년 학생일때(1987년), 평소 오토바이를 좋아하던 아들이 나 몰래 자기 엄마를 졸라서 오토바이를 샀어요.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한남대교를 지나던 중 빗길에 넘어져...(사망했죠). 아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아버지 살려줘'였어요. 아직도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미안한 마음이 커요)"


결국 송해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송해: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졌지만 바위 틈에 있는 소나무에 옷이 걸려 가까스로 다시 살아났어요. 마음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못한 탓에 아직도 한남대교를 지나다니지 않아요."



송해: "그때 내가 ‘가로수를 누비며’ 교통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저세상으로 가버렸어요. 그길로 ‘가로수를 누비며’를 중단했지요. 교통사고 줄이자고 그토록 호소했는데 아들이 교통사고의 희생자가 돼버리니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는 생각 등 만감이 교차해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송해: "한동안 집안에서도 웃음을 잃었지만 집사람과 두 딸이 먼저 슬픔을 딛고 일어서 저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요. 가족이 많이 고맙죠."(송해 딸)



송해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송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북한 전역을 돌며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젊어서 북한 전역을 돌며 공연하면서 사회 솜씨가 늘었고, 그것이 재산이 되어서 지금까지 이 일로 먹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결 부분에 도달한 만큼 고향땅을 돌면서 인생을 마무리해야지요. 그동안 거둔 성과들을 고향에 보고하고 한없이 우리 노래를 부르면서 생을 정리하는 것이 내 마지막 소망이고 꿈입니다. 그것이 또 나를 평생 밥 벌어먹게 한 고향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구초심이라고 했습니다.

부디 송해가 죽기 전에 북한땅 곳곳을 돌면서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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