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조규영 러브스토리와 인생이야기
70년대 여배우 정윤희의 특징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은막의 스타로 화려한 생활을 영위했다는 점과, 두번째는 간통 사건을 일으키고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은퇴했다는 점이죠.
당시 간통 사건으로 정윤희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지만,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연예계를 은퇴한 정윤희는 다시 복귀하지 않았는데, 아마 이때문에 전설로 남을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정윤희 남편 사진
영화배우 정윤희는 1954년 6월 4일 경상남도 충무에서 태어납니다(후에 충무가 통영시로 개편됨)(정윤희 고향). 올해 61살이죠(정윤희 나이).
(정윤희 학력 학벌) 부산 당감초등학교, 혜화여중, 혜화여고
(정윤희 프로필 및 경력) 1975년 영화 '욕망'로 데뷔
이후 영화 청춘극장, 고교 얄개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나는 77번 아가씨, 꽃순이를 아시나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등으로 큰 인기를 끕니다.
장미희, 유지인과 더불어 70년대 여배우 신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중의 한명이죠.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별명이 '대한민국이 사랑한 여배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미모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고, 영화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대만을 방문했을때 중화권 언론 기자들에 의해서 공항이 마비가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한류라고 아이돌때문에 공항 마비 사태가 가끔씩 나오는데, 당시 정윤희는 기자들로 인해서 공항이 마비가 될 정도였죠.)
정윤희 젊은 시절 과거 사진
정윤희 젊었을때 리즈 시절 사진
또한 한국에서 상당기간 거주하면서 영화 촬영을 했던 성룡은 스스로 정윤희의 열렬한 팬을 자청했고, 자신의 이상형으로 정윤희를 꼽습니다. 이런 성룡의 행동으로 두 사람 사이에 스캔들이 나기도 했죠.
사실 데뷔 초창기에 정윤희의 연기력은 형편 없었습니다. 그냥 '예쁜 미모'와 '높은 인기'때문에 감독들이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1980년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에서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정윤희는 빨치산 대장의 딸로 기구한 인생을 사는 여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기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임권택 감독과 '만다라'를 찍으면서 안성기와 더불어 좋은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렇게 연기자로 점점 성장하는 정윤희였는데, 사실 그녀 주위에는 루머가 많았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가 있다는 것과 술집 작부 출신이라는 소문이었죠.
이것은 정윤희가 호스티스 영화(한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영화 장르, 주로 술집 풍속도를 그린 영화. 소설가 최인호의 74년 소설 '별들의 고향'이 이장호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한 후 술집 여자들의 행태를 세밀하게 그린 영화가 유행을 했음)에 자주 나와서, 술집 작부처럼 그럴듯하게 연기를 한 이후에 루머가 더욱더 커졌죠.
(정윤희 대표작들 중에'나는 77번 아가씨',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이 이런 호스티스 영화에 속함)(정윤희 루머 스캔들)
그러다가 1984년 정윤희는 정말로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킵니다. 바로 조규영과의 간통 사건이었죠(당시 조규영(이름)은 중앙산업개발 전무 이사)(조규영 나이는 정윤희보다 8살 연상).
당시 조규영은 유부남이었습니다(1982년에 부인과 결혼했고, 박모씨와의 사이에서 두살된 딸과 4개월된 아들이 있었음).
그런데 1984년 8월 18일 새벽 3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정윤희의 집)에서 두 사람이 잠을 자다가 조규영 부인 박모씨와 처가 식구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경찰에 의해서 현장에서 연행되었고, 구속됩니다.
그런데 당시 조규영은 아내 박모씨와 별거를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의 불화때문에 이혼을 고려하고 있었죠.
조규영: "윤희와는 최근에 알게 된 사이다. 아내와의 이혼에 윤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박씨: "지난해(1983년) 4월부터 둘이 관계를 맺어왔다. 일본 동경과 괌 등을 함께 여행했으며, 귀국해서도 관계를 맺었다. 그에 따른 사진 등의 증거 자료가 있다."
유치장에 수감된 정윤희와 조규영 사진
박모씨는 이런 내용으로 고소장을 작성해서 제출합니다. 즉, 자기 결혼의 결정적인 파탄은 '정윤희'와 '바람핀 남편'때문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조규영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조규영: "지난해(1983년) 10월 부인과의 불화로 집을 나와 친구집과 호텔에서 전전하다 지난해 12월 친지의 소개로 정윤희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오가던 상황이었는데, 당시 대중들은 정윤희가 가정을 파괴했다는 불륜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당시 이들의 구속 여부를 묻거나, 이들에게 욕을 하기 위한 사람들의 전화로, 경찰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죠.
조규영: "윤희와의 관계때문에 가정불화가 생긴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이혼 얘기가 나오는 등 가정문제가 복잡하던 중 윤희를 만나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이다. 당초 그 사람(전처)는 고소하기 전에 7억원의 위자료를 요구했다가 합의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고소한 것이다."
그리고 조규영의 설명처럼, 절대 합의를 하지 않겠다던 박모씨는 곧바로 합의를 하고, 고소를 취하합니다(정윤희 조규영은 5일만에 유치장을 나오게 됨).
정윤희 남편 조규영 중앙건설회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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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합의 조건: 박모씨(조규영 전처 전부인)가 두살난 딸과 4개월 된 아들등 두 자녀를 맡아기르는 조건으로 양육비와 위자료조로 1억원을 6개월내에 3회분할로 받기로 합의하고, 이중 3천만원을 우선 23일 저녁에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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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박모씨의 주장이 사실이고 또 그에 따른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면, 위자료를 더 받을 수 있었지 않았나 합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정윤희는 방송국으로부터 출연금지 조치를 받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이런 조치를 취했죠.
이에 정윤희를 높이 평가했던 일본 영화계가 정윤희에게 러브콜을 보내는데, 정윤희는 이를 잠깐 검토하다가 일본으로의 진출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1984년 12월 24일 조규영과 결혼식을 올려 그의 두번째 아내가 되면서, 연예계를 영원히 은퇴합니다.(정윤희 초혼, 조규영 재혼)(정윤희 남편 직업 중앙산업개발 전무 이사였다가 후에 중앙건설 대표이사 겸 CEO가 됨)(정윤희 배우자 조규영 중앙건설 회장)
후에 정윤희의 컴백 소문이 번지기도 했지만, 남편과 시댁의 반대로 끝내 무산되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정윤희는 자신의 생활에 그런대로 만족하면서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정윤희 결혼 사진
조규영 슬하에는 원래 1남 1녀가 있었고, 정윤희와 재혼한 이후에 아들 한명을 두게 됩니다(정윤희 딸은 없고, 아들만 한명 있었음, 정윤희 친자)(정윤희 자녀 자식).
그런데 정윤희 아들이 미국 유학중에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맙니다.
(2011년 11월)(정윤희가 1989년에 낳은 아들로, 사망 당시 2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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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발췌)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1월 22일(현지 시각)로, 조군(정윤희 아들)은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급성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한인 타운 근처 할리우드장로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조군이 급성폐렴으로 입원했으나, 당일 밤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국에서는 사인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병원 측으로부터 조군의 시신을 넘겨받아 부검을 실시했고, 1차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이 약물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발표에 따르면 조군은 약물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 증세가 나타난 것이며, 타살이나 자살의 흔적은 전혀 없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소 측은 이 약물이 어떤 종류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추가로 독극물 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검사 결과가 도출되기까지는 4주에서 6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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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나 타살은 아니었고, 약물에 의한 사망이었음이 나중에 밝혀 집니다.
은퇴 이후에 약 30년을 평범하게 살았고, 삶의 굴곡이 거의 없었던 드문 여배우 중의 한명인데, 말년에 이렇게 큰 불행이 그녀에게 닥치네요.
사십대 초반의 정윤희 사진
정윤희 근황 사진(정윤희 최근 모습 사진)
한때 정윤희가 재벌에게 시집을 갔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조규영은 재벌 2세가 아니라 그저 중견 건설업체 오너 집안의 아들이었죠(정윤희 남편 재력 재산).
정윤희는 남편의 회사인 중앙건설에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 지분 구조는 조규영(12.95%), 조승규(5.66%, 조규영의 동생), 정윤희(4.29%), 조연주(0.19%, 조규영 형의 자식) 등입니다(정윤희 현재 근황).
정윤희가 얼굴 마담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조규영 집안의 안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최근의 건설 경기 침체로 중앙건설이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원래 중앙건설은 전라북도 전주 지역 건설사로 출발했습니다(1946년 개업). 1980년대 초 '중앙하이츠' 등의 브랜드 아파트를 처음 도입해서 한때 잘 나가기도 했지만, 지방의 악성 미분양 등으로 경영 부진에 빠지게 됩니다.
현재는 자산 총계가 1380억원이지만, 부채총계 역시 3959억원이고, 2014년 1사 분기에 매출액 52억원, 영업손실 19억원, 당기순손실 35억원을 기록합니다.
결국 중앙건설에서 회생 절차를 신청했죠.
중앙건설 공시: "지난 2월 6일 법원에 재산보전처분신청 및 포괄적금지명령신청을 접수했다."
정윤희는 연예계를 은퇴한 뒤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당시 정윤희가 이혼을 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30년 이상 조용한 삶을 즐겼는데, 말년에 이런 커다란 불행이 연달아 오네요. 아들을 잃은 것도 그렇고, 회사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도 그렇고...
이래서 인생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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