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상 러브스토리 및 인생이야기
배우 안내상을 보면 무척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를 꿈꾸는 신학도였다가, 유물론자가 되어서 미국 문화원을 폭파시키려고 했으며, 가난한 연극배우로 후배에게 자리 청탁을 하기도 했죠.
그런 안내상이었지만, 현재는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그의 곁에 아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안내상 가족 사진(왼쪽부터 조카 안인경, 안내상, 안내상의 형 안외상)
영화배우 겸 탤런트 안내상은 196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구에서 태어납니다(안내상 고향). 올해 51살이죠(안내상 나이).
(안내상 학력 학벌) 연세대학교 신학과
(안내상 프로필 및 경력) 1994년 단편영화 '백색인'로 데뷔
원래 십년동안 연극무대에 섰던 연극배우 출신입니다. 춘풍의 처, 라이어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영화 오아이스, 황산벌, 아홉살 인생, 극락도 살인사건 등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한성별곡, 신데렐라맨 등에 출연합니다. 그의 이름을 크게 알린 것은 바로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이었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 역할을 맡았는데, 그의 코믹한 연기가 한원수(당시 배역 이름)를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로 그렸기 때문이죠.
안내상이란 이름이 특이합니다. 안내상의 아버지가 이름을 지었는데, 안내상의 형은 외가에서 낳았다고 안외상으로, 안내상은 친가에서 낳았다고 안내상으로 지은 것이죠.
안내상: "‘안내상’이란 이름은 본명이에요. 뭔가 거창한 뜻은 전혀 없어요. 우리 집안이 ‘상’ 자 돌림인데, 제가 집 안에서 태어났다고 아버지가 ‘안 내(內)’ 자 써서 ‘안내상’이라 지었대요. 우리 형은 집 밖에서 낳았다고 ‘안외상’이에요. 저보다 우리 형이 더 수모를 많이 겪었죠. 정말 우리 아버지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에요."
안내상: "형이 고등학교 때 가출을 했었는데, 어머니가 “분명 이름 때문에 가출했을 거다”라고 하셨죠. 그러다가 제가 연극할 무렵에 ‘안태건’이란 이름을 쓴 적이 있었어요. 결혼해서 애를 낳았는데, 장모님이 아이 이름을 지으러 갔다가 ‘안내상’이란 이름을 쓰면 애가 얼마 못 산다는 거예요. 남들은 출세 좀 해보겠다고 이름을 바꾸는데, 난 정말 살기 위해서 이름 바꿨죠. 그래도 난 여전히 ‘안내상’이란 이름이 좋습니다."
안내상은 어릴 적부터 무척 치열하게 삶을 살았습니다.
안내상: "아버지가 대구에서 사업을 하시다 완전히 망해서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판자촌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했어요. 아침에 학교를 가는 길에 보면 할머니들이 쥐를 구워먹었죠."
안내상: "전혀 교육도 받지 못했어요. 선생님이란 단어 자체를 몰라 '아지매요, 육성회비 가져왔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죠. 어려웠던 시절 때문에 자꾸 엇나갔어요. 안 좋은 친구들을 만나 나쁜 짓도 많이 했고요. 한마디로 깡패였죠. 게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배를 피웠어요."
안내상: "그러다가 아이스크림 준다는 말에 교회에 갔는데, 처음으로 관심이란 걸 받았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교회에 나갔죠."
즉, 어린 안내상이 나쁜 짓을 했던 것은 바로 '관심 부족'이었던 겁니다. 혹시 아이가 나쁜 짓을 하면, 야단을 치기보다 먼저 제대로 관심을 주었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시작된 안내상의 종교 생활은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안내상: "어린 시절 연극 보는 걸 좋아했지만 단순히 취미생활의 일부였죠. 제 가슴속에는 이미 목사라는 꿈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이 불같이 일어나더라고요. 집안에 성직자가 있냐 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에요. 가족 중 유일하게 혼자 신앙에 꽂혀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회에서 살았어요."(안내상 종교 기독교)
안내상: "그래서 신학과를 가게 되었죠. 근데 막상 대학 가니까 선배들이 사회과학책을 던져주던군요. 처음에는 “우리 하나님을 내가 변호하겠다”고 맘먹었죠. 그런데 내가 점점 빠져들더군요. 결국 유물론자가 되었어요."
안내상: "그렇게 하나님 버리고 마르크스를 섬기게 됐어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술, 담배도 그때 입에 댔죠. 이른바 언더서클에서 운동하면서 나중에 미 대사관 점거 사건으로 8개월 정도 복역하기도 했고요."(안내상 운동권 출신)
아마 젊은 시절 안내상의 치열하게 삶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삶을 그냥 낭비하는 사람들보다는 비록 방황을 하더라도 이렇게 여러가지로 노력하고 시도를 해보는 사람들이 훨씬 인생을 잘 산다고 할 수 있죠.
그렇게 유물론자가 된 안내상은 1988년 2월 26일 광주 미국 문화원내 도서관 진열장에 사제 시한폭탄을 설치하게 되고, 8개월 동안 수감됩니다.
안내상: "다행히 폭탄이 터지진 않았지만 교도소에 가게 됐어요. 나도 그 사건으로 신문 1면에 나올지 몰랐는데 아버지께서 자식이 신문에 나오고 방송도 탔다고 좋아하시더군요."
그 후 안내상은 대학을 졸업하고 평소의 신념대로 노동 현장에 뛰어듭니다.
안내상: "대학 졸업하고 나서 노동현장에 갈 생각으로 돈을 모았어요. 지방에 가면 방값은 있어야 하니까요. 처음에 한 건 당구장이었죠. 당시 외대 앞에 400만원에 매물로 나온 게 있었는데 집에서 받은 돈으로 그걸 인수했어요. 근데 6개월 지나니까 2400만원에 팔 수 있는 상황이 되더군요. 그런 거 보면 내가 수단이나 운이 좋았던 듯 싶어요."
안내상: "그리고 부산의 한 공장에서 3개월 정도 있었는데 이 길이 아닌 것 같더군요. 머물면서 그 사람들하고 섞이지 못하고 벽이 있었어요. 그들의 삶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달랐죠. 그러면서 사실상 운동을 접었어요. 그러고나서 1년 정도 술로 지내다가 연기를 만났죠."
결국 안내상은 노동운동 역시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또다시 술로 방황하다가 연극을 만나게 됩니다.
안내상: "방황하던 시절 지인으로부터 연기를 해보란 말을 듣고, ‘연기? 그거 재밌겠는데?’ 싶더라고요. 어디를 가면 배울 수 있을까 하고 교육기관을 찾던 중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교육생을 뽑는 걸 알았어요. 원서 접수 마지막 날 공고를 발견했는데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굉장히 기뻤죠. 곧장 지원했고 운 좋게 연기를 배우며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그때가 딱 서른이었죠."(1993년)
서른살이면 일반적으로 늦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삶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죠.
이때 안내상은 연극계 동료들인 우현, 조련, 그리고 현재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안내상은 동료였던 아내와 199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안내상이 아내의 이름과 사진은 공개하지 않음).
안내상: "아내는 대학로에서 같이 연기하면서 만났기 때문에 이해를 잘 해줘요. 배고픈 직업을 선택한 저를 믿고 묵묵히 지켜봐준 아내 덕분에 여기까지 왔죠."(안내상 아내 직업)
참고로 안내상의 여동생이 설경구와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설경구는 송윤아와 재혼하게 됩니다.
안내상과 부인 사이에는 딸이 한명 있습니다(안내상 자녀 자식, 안내상 배우자)(안내상 가족관계).
안내상과 진지희, 영화 속의 한 장면
안내상: "연극배우가 배고픈 직업이에요. 사실 처음에는 부업을 해서 그런대로 살았죠. 같이 연극했던 친구들이 내가 쏘나타Ⅱ 몰고 다녀서 처음엔 재벌집 아들인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연극하면서 대학로에서 호프집도 하고 인사동에서 카페도 하고 그랬어요. 처음 5년은 잘됐는데 나중에 다 까먹고 빚만 남더군요."
결국 안내상은 후배인 봉준호 감독에게 배역 청탁도 합니다.
안내상: "대학 후배인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단편영화 '백색인'에 잠깐 출연했어요. 당시 봉 감독이 먼저 출연을 요청해 하게 됐죠."
안내상: "이후 봉 감독이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난 당시에 연극배우로 활동했는데 살기가 너무 힘들어 봉 감독에게 전화를 해 '나 할 거 없느냐?'고 물었죠. 봉 감독이 난처해하더니 '정말 없다'고 했어요."
안내상: "그 전화를 하려고 망설였는데 끊고 나서 민망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어요."(안내상 생활고 고백)
확실히 후배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기가 쉽지가 않죠.
안내상: "살기 힘들어서 후배에게 청탁을 한 거죠. 나중에 봉 감독이 찾아와 '플란다스의 개' 대본을 보여주는데 내게 어울리는 역할이 없더군요. 후배에게 청탁을 하고 거부당한 것에 대해 비참한 생각이 들었고 봉 감독은 내가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계기를 준 존재가 됐죠."
플란다스의 개는 2000년 작입니다. 안내상이 1999년 결혼 전후로 많이 쪼들렸던 모양이네요.
이런 가난을 안내상과 아내가 같이 이겨냈기 때문인지, 아내에 대한 안내상의 믿음은 굳건합니다.
안내상: "배고픈 연극배우를 믿고 묵묵히 지켜봐준 와이프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안내상도 없었을 거에요."
안내상; "어떤 결정을 할 때 아내 의견을 많이 따르는 편이에요. 그만큼 아내가 바른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죠. 교육만 해도 그래요. 제 아내는 억지로 뭔가를 시키기보다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둬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죠. 특목고 가고 좋은 대학 가는 게 인생의 목표가 아니잖아요. 하루하루 즐겁게 살다 보면 그게 쌓여서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지. 아이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웬만해서는 말리지 않는 편이에요."
실제로 안내상 가족은 서울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일산에서 파주로 이사를 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서 서울로 몰리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네요.
안내상이 아내의 의견을 많이 따른다는 점에서, 안내상을 애처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부인이 그만큼 남편에게 믿음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죠.
안내상: "딸이 저희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필요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더라고요. 그림 그리기가 좋다고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하고 검도도 배우고요. 성격 밝고, 사람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건 다 어른들의 욕심이죠."
안내상은 어렸을 때부터 무척 가난한 생활을 해봤고, 종교에도 빠져봤으며, 사상을 위하여 테러를 계획하고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다양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서인지, 그의 연기력에는 깊은 맛이 있습니다.
사실 경험이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내상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내상이 매순간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현재도 배우와 남편, 아빠로서 치열하게 살고 있죠.
아마 내일은 더 나은 배우, 남편, 아빠가 될 것 같네요.
반대로, 현재 치열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은 내일도 치열한 삶을 살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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