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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경 김광철 러브스토리 및 인생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나중에 성장해서 자신의 어릴 적 상황에 그대로 놓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계모의 밑에서 자랐던 사람이 나중에 자신이 계모가 되기도 하죠.


그런데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천사같은 계모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정과 사랑을 주기도 하고, 오히려 자신이 미워했던 계모의 모습이 되어서 아이들을 미워하고 구박하기도 하죠.


탤런트 양희경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네요.


양희경 남편 김광철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양희경은 1954년 12월 3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양희경 고향). 올해 61살이죠(양희경 나이).

(양희경 종교 개신교)

(양희경 학력 학벌)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양희경 프로필 및 경력) 1975년 연극 몰리에르의 <결혼>으로 데뷔


연극 작품을 하고, 언니 양희은 대신에 틈틈이 라디오 DJ를 맡기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하던 양희경은 결혼과 동시에 은퇴합니다. 그리고 1985년에야 비로서 연극 '한씨연대기'로 정식으로 데뷔합니다.


이후 사랑이 뭐길래, 딸부잣집,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탐나는도다, 인연만들기, 넝쿨째 굴러온 당신, 무자식 상팔자, 세번 결혼하는 여자, 마녀의 연애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연극과 뮤지컬 작품에 출연합니다.


양희은 양희경 자매 사진


양희경의 삶은 어릴 적부터 다사다난했습니다.

집안은 유복했는데,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계모를 맞아들여야 했죠.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 서북청년사건때 진남포에서 단신남하한 양정길(이름)입니다. 육사 4기 포병장교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고, 어머니 윤순모는 서울예대 성악과 출신의 디자이너였죠.


그런데 아버지가 외도를 하고 새엄마가 들어오게 되면서 양희경은 계모의 핍박을 받으며 자라게 됩니다.

양희경: "계모밑에서 구박을 받아 늘 소화불량으로 고생했죠. 그때 언니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어요."


양희경은 가수 양희은의 동생입니다. 둘의 나이차이는 2살이었는데, 그 나이차이 이상으로 양희경은 언니에게 의지를 하게 되죠.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아버지가 사망하고, 양희경 자매는 다시 친어머니 품으로 돌아갑니다. 1964년, 양희경이 불과 11살때의 일이었죠.


(양희은에 대한 이야기)

2014/02/28 - 양희은 남편 조중문- 서로의 불치병을 이겨낸 사랑

양희경 가족 사진(어머니와 언니)


친모와 함께 살게된 양희경 자매는 행복해질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의상 디자이너가 된 어머니 윤순모(이름)에게 돈버는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죠.


여동생 양희경: "엄마가 빚보증을 서 준 친구가 야반도주하면서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양장점에 불까지 났다."


언니 양희은: "엄마는 너무 우아해서 '경영 마인드'랄까, '보증 서면 안 된다'랄까, 그런 게 없었다. 우아하게, 도장을, 찍었겠지. 덕분에 나의 20대가 날아갔지."


결국 언니 양희은이 대신 돈을 벌게 됩니다. 통기타 하나 들고 나가서 노래를 부른 것이죠.

양희은: "엄마가 보증 섰다 망해 그 빚을 갚아야 했던 것에 대해서는 아직 (엄마와) 화해하지 않았다. 화해가 될 것 같아? 그게?"


그리고 동생 양희경은 어머니 대신에 집안 살림을 하게 됩니다.

양희경: "졸지에 언니가 아버지가 됐다. 그게 힘들었다. 언니는 돈을 벌고 나는 살림을 했다. 밥하고 빨래하고 몇 년 하다 시집갔다. 언니로부터 도망가려고. 언니가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간섭했다."



결국 어릴 적에 기댔던 언니였지만, 삶에 지친 나머지 양희경은 언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결국 세모녀가 나중에는 화해를 하게 되었지만, 이런 삶의 굴레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기도 했었네요.)



양희경의 고백처럼 양희경은 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1977년 2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 모씨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전도 유망한 연극배우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절박했던 것이죠.


이후 양희경은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게 됩니다.

(양희경 자녀 자식, 이름은 한원균, 한승현)


양희경 아들 사진


그런데 여우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된 것일까요?

이제는 시집살이가 양희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양희경: "결혼할 당시 50kg이었는데 1년 만에 60kg이 됐다. 시집살이를 하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한 달에 1kg씩 쪘다. 만삭 때는 83kg까지 쪘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양희경: "시집살이로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의 시월드는 시월드도 아니다."


양희경은 평소에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얼마나 당시에 받았던 핍박이 컸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양희경은 남편과의 사이에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양희경: "1997년 9월, 전 남편과 이혼을 했어요. 그 전부터 별거생활은 이미 했었구요. 단순히 성격차이라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두 사내아이 때문에 이혼은 안 하고 살려고 그랬죠.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문제에 얽혀 있는 남편은 식구들까지 괴롭히고 있었으니까요."(양희경 이혼사유, 양희경 이혼이유, 양희경 전남편)



그후 양희경은 혼자 아이들을 키우다가, 언니 양희은의 충고를 받아들입니다.

양희은: "좋은 사람 있으면 사귀고 그래야지! 이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니까."


양희경은 김광철(이름)과 재혼하게 되는데, 바로 언니 양희은의 소개로 만나게 되죠(2000년).

(양희경 배우자 김광철 직업은 수입 가구상, 나이는 양희경과 동갑, 김광철은 전처와 사별하고, 슬하에는 아들과 딸이 한명 있음)


양희경 김광철 부부 사진


양희경: "예의바르고 투박한 그의 첫인상이 처음부터 매력있어 보이진 않았어요. 하지만 연예인이던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 사람을 보고 오히려 의아해했죠. 그저 손님대하듯 가구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던 그에게 호기심마저 들기 시작했어요."


양희경: "연예인이라고 하면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전혀 저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눈치였어요. 나중엔  제 입으로 ‘그 유명한 가수 양희은씨 있잖아요. 그 분이 제 언니거든요’라고 직접 이야기했다니까요."


양희경: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그 사람의 딸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어. 물론 저도 자신이 없었구요. 제 뱃속으로 낳은 아이가 아닌데 그 아이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 수 있겠어요. 아빠에게 듣는 것도 한계가 있구요. 자신이 없었다는 표현이 오히려 더 솔직할 겁니다."



아마 양희경 본인이 계모로부터 당한 기억이 있기에, 오히려 더 선뜻 다가서지 못했을 겁니다. 양희경과 김광철이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에, 비보가 날아듭니다. 김광철의 딸이 불치병에 걸린 것이죠(골육종암).


양희경: "(김광철의 딸을) 이렇게 그냥 보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홉 살에 엄마 잃고 이제 열다섯 살 한창 뛰어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불공평했으니까요."


그런데 평소에 그런 양희경의 착한 마음씨를 알았던 걸까요?

김광철의 딸은 특이하게 자신의 집을 놔두고 양희경의 집에서 치료받기를 원합니다. 양희경 역시 죽어가는 환자의 소원을 저버릴 수가 없었고, 김광철은 딸과 아들을 데리고 양희경의 집으로 더부살이를 시작합니다.



양희경이 환자를 돌보던 어느날, 아이가 말합니다.

"아줌마! 우리 아빠랑 결혼하면 안 될까요. 난 아줌마가 내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엄마란 말 해본 지 너무 오래 되서 해보고 싶구요.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아이들이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법입니다.

아이를 때려 죽인 칠곡 계모 사건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볼 수 있네요.


양희경; "곧 하늘나라로 떠날 한 소녀의 소원 때문에 결혼을 선택한거라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저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주고, 남은 식구들에게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그 이상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재혼을 결심한 양희경과 김광철은 2002년 8월 4일, 언니인 양희은의 집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립니다. 식사를 하고 사진 한장 찍고, 혼인신고를 한 것이 다였죠. 그리고 아이는 양희경의 딸이 되었고, 10월 6일 세상을 떠납니다.



김광철: "성이 다른 형제지만(양희경의 아들들을 지칭) 동생의 가는 모습을 같이 지켜봐서인지 친형제와 다름없는 사이가 됐답니다. 전 정말 저 친구(양희경을 지칭)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너무 힘든 일을 겪게 했거든요.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운 건 단 한끼도 거르지 않고 딸에게 맛깔스런 반찬과 새 밥을 해주었다는 점입니다. 그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양희경: "자식이 부모 앞에서 임종을 보이면 평생 가슴에 묻고 산다잖아요. 우리 딸아이는 가는 날까지 효녀였어요."


양희경은 자신이 못된 계모로부터 나쁜 추억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계모가 된 다음에는 딸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게 됩니다.

사실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죠. 비록 김광철의 딸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특이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그 전에 양희경의 착한 마음씨를 알지 못했다면, 결코 치료받는 장소로 양희경의 집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국 양희경은 굴레를 벗어 던졌네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본의 아니게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걸 후대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의 결단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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