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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이인자 러브스토리와 인생 이야기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난과 역경이 있습니다.
옛날의 왕에게는 외적이 쳐들어 오지 않는지,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지가 걱정거리였다면, 민초들은 내일 먹을 식량이 걱정거리였죠.

 

이렇게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그 고난에 대응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가수 이상우의 가족에게 닥쳤던 불행과 그들의 마음 자세를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하네요.

 

가수 이상우 가족 사진, 아내와 두 아들들

 

가수이상우는 1963년 8월 25일 부산에서 태어납니다(이상우 고향).
올해 52살이죠(이상우 나이).
(이상우 학력 학벌) 성동초등학교, 수영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 동아대학교 경영대학
(이상우 프로필 및 경력)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슬픈 그림같은 사랑'으로 금상을 수상함

 

1989년 1집을 발표했고, 1990년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 크게 히트를 합니다. 그외에 대표곡으로 하룻밤의 꿈, 비창 등이 있습니다.

이상우는 가수로도 유명하지만, 연예기획자로도 유명합니다. 골든벨에 나왔던 전교 5등인 한가인을 발굴해서 연예계로 이끌었고, 장나라를 키우기도 했죠.

 

 

이상우 노래모음 2곡, 대표곡

아름다운 콘서트 : Lee Sang-woo - Met Her 100m Away 이상우 -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Beautiful Concert

 

[MV] 이상우 - 비창 (1997) 뮤비(뮤직비디오)

 

그런데 원래 이상우는 사업에 소질이 있었습니다.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본인 역시 어릴 적부터 사업가를 꿈꾸었고, 대학교를 경영과에 갔으며, 심지어 가수 역시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 데뷔했었죠.(이상우 집안 사업가)

 

이상우: "사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연예인 생활을 한 것도 얼굴이 알려지면 사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어요."

 

이상우: "연예인이 사업을 하면 여러모로 유리한 게 많아요. 처음 본격적인 사업을 계획하고 창업투자회사를 방문해 투자 설명회를 가졌는데 마침 그 회사 사장이 제 팬이었어요. 덕분에 열흘 만에 투자를 받을 수 있었죠."


실제로 이상우는 사업쪽으로 단기간에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커피숍이었습니다. 1995년 초, 방배동에 3억 5천만원을 투자한 30여평 규모의 커피숍은 각 테이블에 전화기를 놓아두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상당한 화제거리가 되면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당시에 유행했던 삐삐와 결부되어서 손님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죠.

 


이상우는 1년만에 1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커피숍을 매각합니다.

이 커피숍 사업을 시작으로 아이들의 교육놀이 시설, 부동산 투자,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 패션업체(청바지 사업) 등의 성공으로 단기간에 36억원을 모으게 됩니다.

 

이상우는 그런 사업외에 연애 사업에도 성공합니다.
1990년대 초 이상우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출연하면서, 당시 방송 작가로 일하던 4살 연하의 이인자를 만나게 됩니다.(이상우 이인자 나이차이)(이상우 아내 이인자 직업, 이상우 부인 배우자)


하지만 초반 대시는 여의치가 않았죠.

이상우: "방송국 사람들이 어려워서 대시하지 못했다. 괜히 대시했다가 딱지 맞으면 민망할 것 같았다."
당시 이상우는 인기 스타였지만, 의외로 자신감이 없었던 모양이네요.
그러다가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상우: "작가들이 회식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함께 어울리게 됐다. 그날 함께 놀고 아내를 가장 늦게 데려다 주면서 둘만의 시간을 처음 가졌다. 그 이후 계속 만나게 됐다."

 

 

결국 1992년부터 연인관계가 된 둘은 1993년 10월 9일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곧 큰아들 이승훈(이름)이 태어나는데, 안타깝게도 발달장애를 안고 있는 아이였습니다(이상우 자녀 자식).

 

이상우: "발달장애아는 발달 속도가 보통 아이들보다 많이 느린 아이들을 말해요. 신발 신는 걸 익히는 데만 2개월이 걸리고, 윗도리를 입는 데 6개월, 대소변을 가리는 데 1년이 걸리기도 하죠. 발달장애아들끼리도 워낙 차이가 커서 치료법을 찾는 것도, 치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에요. 승훈이는 언어가 늦어서 전반적으로 모든 발달이 늦어진 경우예요."

 

이상우: "생후 30개월이 지나도록 말문을 열지 않는 승훈이를 병원에 데려갔어요. 장애 판정을 받는 순간 병원 문을 열고 뛰쳐나갔죠.
그때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운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이상우 아들 병명 자폐증)

 

결국 이상우는 약 3년 정도 거의 폐인처럼 술만 마십니다. 반면에 이상우의 아내 이인자는 달랐습니다. 그냥 자기 자식이 발달장애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이를 위해서 헌신한 것이죠.

이상우: "그런데 아내는 태연했어요. 발달장애가 100% 완치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인자는 진실을 알고 난 후에도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알게 되었더래도, 그녀의 행동은 똑같았을 것 같네요.
역시 이래서 모정은 위대한가 봅니다.

 

이상우 아내 이인자와 큰아들 이승훈 사진


이런 상황에서 이상우는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재혼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내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이상우: "승훈이를 중심으로 가족이 똘똘 뭉치게 됐어요. 그걸 생각하면 감사하죠. 승훈이를 통해 ‘감사’의 의미를 깨달은 거예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감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아이를 버리거나 부부가 이혼하게 되죠."(이상우 아들 자폐)

 

결국 그때부터 이상우는 아내를 도와서 아들을 돌보게 됩니다.

이상우: "승훈이는 말이 늦어 전반적으로 모든 발달이 느려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박수를 치지 못했는데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아내가 ‘승훈아, 아빠 오셨다. 준비해’ 하는 거예요. 그러자 아이가 침대 위에 올라가더니 힘겹게 두 손을 부딪치며 ‘반짝 반짝 작은별~’ 하고 노래를 부르더군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렀죠. 아이가 또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는 기쁨과 함께 박수 하나 가르치기 위해 오랜 시간 아이와 씨름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상우: "승훈이가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저희 부부가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 매일 아이와 씨름하다 보니 아내는 등이 딱딱하게 굳었고 저는 목 디스크에 걸렸어요."

 

주중에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이상우는, 주말에도 쉬지 못합니다. 주중에 아이 뒷바라지를 하던 아내가 조금이라도 편히 쉬기를 바라기 때문에, 주말에는 자신이 아이를 돌봅니다.

이상우: "주말 동안만이라도 아내가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다고 아내를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고,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거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곤 해요. 그 시간만이라도 아내가 편하게 잠 좀 자라고요."

 

 

이상우 이인자 부부는 큰아들을 낳은 뒤 약 10년 후에 둘째 아들 이도훈(이름)을 낳습니다.(이상우 둘째아들 이도훈)

 

이상우: "늦둥이 도훈이를 낳은 것도 형 때문이에요. 나중에 도훈이가 형을 많이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린 도훈이 일찍부터 도움이 되는 일을 합니다.
이도훈: "어느 날 놀이터에 갔는데 어떤 형들이 우리 형을 놀렸어요. 너무 속상해서 아빠한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했죠."

 

이상우; "둘째 아이가 그렇게 달려와서 장소에 가보니 큰 애보다는 조금 어린 학생들이 놀리고 있더군요. 정말 놀라서 막 뛰어갔었죠."

 

이런 아이를 놀리는 어린애라면 따끔하게 혼을 내주고 싶네요.
아니, 그 전에 먼저 잘 알아듣게 타이르는 것이 우선이겠죠.

 


그리고 이상우는 사회 사업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이전까지 커피숍이나 부동산, 연예 매니지먼트 등으로 떼돈을 벌던 사업가에서 자신의 아들과 같은 약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이 된 것이죠.

 

이상우: "돈이라도 많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승훈이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에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이를 진정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잖아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러는 동안 정말 중요한 걸 잃어버리고 살게 되더라고요."

 

이상우: "현재 집 한 칸만 남겨놓고 전 재산을 복지사업에 쏟아부었어요. 앞으로 벌 돈도 그럴 거고요. 사실 처음에는 저희 부부가 죽고 난 뒤 승훈이를 마음 놓고 맡길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복지사업을 구상했는데, 이제는 승훈이뿐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장애아를 위해 반드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어요."


문득, 장애 딸을 가진 어떤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나네요.
"부디 제 딸보다 제가 하루만 더 오래 살게 해주소서!"

아마 이상우와 이 어머니의 마음은 똑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상우 가족은 큰아들 이승훈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가족이죠.

그런데 이러다보니 둘째 아들에 대해서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상우는 종편의 '그렇게 아빠가 된다'에 출연을 결심하게 됩니다. 아빠어디가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따라하고, 또 종편에서 그것을 따라하기에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지만, 발달장애가 있는 첫째 중심의 생활이기에 늘 미안한 둘째와 2박 3일간 여행이라도 같이 가기 위해서죠.(가수 이상우 근황, 이상우 그아빠 출연)

 


거의 이십년동안 발달장애 아들을 키운 이상우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상우: "어느 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왜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인생이 힘들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는 마음까지 괴로운 걸까’ 하는 자문을 했죠. 그러고 승훈이를 봤는데 삶에 지쳐 힘든 엄마아빠와 달리 아이는 무척 행복해보였어요."

 

이상우: "그때 깨달았어요.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행복해지는 건데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들이라는걸요. 승훈이가 비장애 아이들과 조금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니까 저나 아내가 더 이상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죠.”

 

  

이상우: "장애아는 말 그대로 장애가 있는 아이일 뿐이에요. 보통 아이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났다고 해서 그들을 ‘비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장애아들도 엄연히 ‘정상’임을 기억해주세요. 소아마비로 태어난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불행할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그 아이는 단지 불편할 뿐이거든요."

 

이상우: "승훈이가 없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제가 아들을 키운 게 아니라 아들이 저를 키운 거죠. 그래서 저희 부부는 승훈이를 보고 ‘스승 같은 아들’이라고 해요."

 

사실 이상우는 사업가로 화려하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단기간에 36억원을 벌었던 그의 사업적인 재능은 매우 출중했죠.
하지만 큰아들 승훈이 덕분에 그는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상우 부부가 승훈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운 것처럼, 저 역시 이상우 부부를 통해서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부디 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바뀌고, 또 그런 가족이 조금이라도 기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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