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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이덕화 아내(부인)김보옥 헌신적인 사랑과 딸 이지현

이덕화와 아내 김보옥의 사랑과 결혼이야기를 보면 정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힘이란 정말 한계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이덕화는 인생에서 여러차례 고비를 겪게 되지만, 그때마다 부인의 도움으로 잘 넘깁니다. 한평생을 함께 살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이덕화 부부를 보면, 아주 흐뭇하네요.

 

이덕화 김보옥 젊었을때 사진

 

이덕화는 195258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63살이죠.

아버지가 유명한 영화배우 이예춘이었습니다. 이덕화가 2세 연기자인 셈이죠.(이덕화 종교 불교)

(이덕화 학력)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이덕화 프로필) 1973TBC 1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처음에는 드라마에서 활동을 했지만, 청춘 스타가 된 이후에는 주로 영화계에서 활동합니다. 공포의 이중인간(영화 데뷔작), 성춘향전, 진짜진짜 미안해, 맨발의 청춘 77, 대학 얄개 등의 영화를 비롯하여, 결혼행진곡, 사랑과 야망, 한명회, 무인시대, 5공화국, 대조영, 자이언트 등으로 큰 인기를 끕니다.

 

 

그런데 이덕화는 이런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 못지 않게, 진행자(MC)로서의 명성 또한 굉장히 높았습니다. 2000 뿐만 아니라 MBC 대학가요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에서 명MC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기자의 사회자의 범주를 본격적으로 허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잘나가는 이덕화이지만, 그의 인생에도 위기가 두번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바로 오토바이 사고였고, 두번째는 국회의원을 출마했다가 낙선했을 때였습니다.

둘 다 부인이 있었기에 이덕화는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죠.

 

 

이덕화 배우자 김보옥의 나이는 이덕화와 동갑입니다.

4살때부터 무용을 시작했고, 무용가의 재능이 있었기에 중학교 다닐 때는 무형문화재로부터 사사 받기도 하는 등, 전도유망한 소녀였습니다.

 

(김보옥 학력) 서라벌대학교 무용과

1962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남편 이덕화보다 10년 이상 데뷔가 빨랐네요. 11살의 어린 나이로 무대위에 섰던 거죠(김보옥 직업).

 

그후 이덕화와 김보옥은 중학교 3학년때 서로 알게 됩니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김보옥의 집안 역시 연예계쪽입니다. 바로 원로배우 김보애가 김보옥의 친언니이고, 김보애의 딸 김진아, 아들 김진근이 김보옥의 조카들이죠.

(김보애는 1939년생으로 김보옥보다 13살이나 위네요. 좀 나이 차이가 나는 자매지간이죠.)

 

 

어릴 적부터 알고 자란 이덕화와 김보옥은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이덕화가 종종 "딴데 시집가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죠.

 

그러다가 이덕화의 교통 사고로 둘의 관계는 달라지게 됩니다.

1977년 무렵, 당시 이덕화는 좀 철이 없던 청년이었습니다.

 

이덕화: "젊은시절 400킬로의 영화 속 오토바이 타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어느 날 10톤 버스아래 깔리는 대형 사고를 당해 70미터 이상 끌려가고 청바지와 벨트만 남고 재킷은 목 부분만 남은 상태였다."

 

이덕화: "당시 나는 14일간 의식불명이었으며 친구들도 내가 살아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방송 중에 묵념을 했고 심지어 조의금까지 걷었다."

 

왼쪽은 김보옥 처녀때 사진, 오른쪽은 이덕화 김보옥 결혼식 사진(웨딩)

(결혼식은 아들이 태어난 후에 올림)

 

시속 400킬로미터라니, 정말 자살하려고 작정을 했던 모양이네요.

아무튼 이런 대형 사고를 당한 이덕화는 누가 보더라도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식도 올리지 않았던 여자친구 김보옥이 자신의 남자친구인 이덕화를 위하여 헌신하기 시작합니다.

 

이덕화는 그 후로도 거의 3년간이나 병원신세를 져야 했는데, 김보옥만은 항상 남편의 곁을 지켰습니다.

 

이덕화: "그때 아내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정성껏 간호를 해줬어요. 결혼 전이었는데도 말이죠.

당시 처형들이 몇 번이나 병원으로 찾아와 아내를 끌고 가려 했지만 끝까지 제 곁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아마 장래의 처가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던 모양입니다. 하긴 큰 사고였으니까요.

결국 병상에서 일어난 이덕화는 김보옥과 함께 동거에 들어갑니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상태였죠. 그 흔한 프러포즈도 없었지만, 김보옥은 만족했던 거 같습니다.

   

이덕화: "아내가 3년 내내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 자며 간호해준 걸 잘 알기 때문에 지금은 아내한테 꽉 붙잡혀 삽니다."

 

실제로 이덕화가 카리스마가 있지만, 공처가라고 불려도 별로 기분나빠하지 않습니다. 아마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을 잘 알고, 아내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덕화 김보옥 부부 사이의 자녀로는 아들 이태희와 딸 이지현이 있습니다. 아들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고, 딸은 현재 아빠의 뒤를 이어서 배우의 길을 걷고 있죠(3대째 연기자 집안이네요).

 

이덕화 가족 사진

 

이덕화와 딸 이지현 사진

 

그러다가 이덕화는 1996년 총선에 출마하게 됩니다.

바로 김영상의 장녀였던 김혜영이 이덕화와 초등학교 6학년때 단짝이었습니다. 이덕화는 어릴 적 친구의 아버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결국은 낙선하고 맙니다.

 

이때문에 이덕화는 큰 빚을 지고, 대인기피증에 걸려서 무인도에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이덕화: "오랜 시간 술에 빠져 지내면서 원망도 많이 하고 후회도 했지만, 결국 다 제가 자초한 일이더라고요. 그 후에라도 다시 받아준 시청자와 방송 관계자들께 고마운 마음이죠. 요즘도 가끔 정치할 생각 없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마음 접은 지 이미 오래예요."

 

"또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4년 동안 국회의원 하고 돌아오면 그때는 환갑, 진갑 다 됐을 텐데 누가 받아주겠냐. 한 번은 용서되지만 두 번은 안 된다. 4년 동안 국회의원 배지 다는 맛에 정치할래, 아니면 반평생 함께해온 사람들이랑 죽을 때까지 연기할래하고요. 지인의 그 말 한마디에 다시는 정치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연기자 역시 정치를 할 수 있지만, 이덕화처럼 사사로운 정으로 정치를 시작하면 안될 거 같습니다. 어쨌든 본인 스스로가 두번 다시 정치를 하지 않을 생각이네요.

그런데 이때 생긴 대인기피증은 나중에 가발 CF 등으로 복귀하면서 자연스럽게 치유했는데, 이때에도 집안을 건사하는 것은 아내 김보옥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덕화가 이 사실을 가장 잘 알죠.

 

이덕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늘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무조건 아내에게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

 

물론 경제권도 아내에게 넘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용돈을 타 쓴다. 낚시 갈 때면 밑밥 값 좀 달라고 아내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카리스마 넘치는 이덕화가 아내에게 꽉 잡혀사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웃음이 나오네요. 어쨌든 이덕화는 스스로 그런 모습에 만족하는 거 같습니다.

 

(세월이 비켜갈 정도로 곱게 늙었네요. 젊었을 때의 미모를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김보옥은 남편의 후원을 받으며 무용을 다시 시작합니다. 2006년 국립국악단에서 공연을 하면서 무용가의 삶을 재기했죠.

또한 2010년에는 남편 이덕화가 맡은 이덕화쇼를 위하여 살풀이춤을 공연하기도 합니다.

 

이덕화는 본인의 말대로 젊었을 때 건방지고 철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큰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되살아난 다음에, 성숙해지고 철이 든 거 같네요. 요즘 조그마한 문제로도 이혼하는 부부들에게는 좋은 귀감이 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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